|
본질상 진노의 자녀(그릇)가 긍휼의 자녀(그릇)가 되려면 오직 하나님이시며 인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뿐이라고 선포한 바울이 다시 또 있을 법한 질문을 던지며 복음의 진보를 펼칩니다.
"롬 10:14 그런데 그들이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부르겠습니까? 듣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전하는 사람이 없이 어떻게 듣겠습니까?15:또 보냄을 받지 않았으면 어떻해 전하겠습니까?기록되기를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우리말성경
"롬10장16 :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8 :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 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바울이 믿지 않는 분을 어찌 부르겠느냐?며 던진 질문은 믿음은 무엇인가?에서 믿음은 누구신가?로 전환시켜 주십니다.
곧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라 하심이 그렇습니다. 이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말씀)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확실히 우린 예수 그리스도(말씀)를 들으면 들을수록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경험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믿고 부를 수 있도록 당신의 종들을 보내사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이스라엘의 온 땅에 편만하도록 전하게 하셔지만 듣지(순종치) 않았다 하십니다.
유대인의 순종치 않음의 정점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를 추구하느라 힘써 율법 행위로 하나님의 의를 대적한 것이 십자가 사건으로 온 천하에 폭로된 것입니다.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눅2:34~35
"롬10:19 :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개역개정
"롬10:19:내가 다시 묻습니다 이스라엘이 알지 못했습니까?먼저 모세가 말하기를 '내가 백성이 아닌 자로 너희를 시기하게 하고 내가 미련한 백성으로 너희를 분노하게 할 것이다 ' 라고 말했습니다"우리말성경
순종치 아니했다는 책망에 "네 잘못했습니다.이제라도 내 가던 길을 멈추고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겠습니다"가 아니고 "우리가 알지 못해서 그랬다"는 유대인의 반문을 예상한 바울은 신명기 말씀을 들려 주십니다.
"21:그들은 신이 아닌 것에 나로 하여금 질투하게 했고 그 쓸모 없는 우상들로 나를 진노하게 했다.나도 백성이 아닌 자들로 그들에게 질투를 일으키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에게 진노를 일으킬 것이다"신명기 32:21(우리말성경)
하나님께서는 아내에서 음녀가 되버린 이스라엘을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그 사랑의 풍성함만큼이나 사랑의 방식도 다양하시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느낄수 있는 질투의 감정을 일으키게 함으로서 당신이 얼마나 이스라엘을 사랑했는가를 생각할 기회를 주시겠다 하십니다.
오직 한 분 뿐이신 선하신 하나님의 인격보다 물질과 정욕과 세상을 음란히 섬겨 당신의 진노를 유발시킨 음녀 이스라엘에게 진노의 보복이 아닌 진노의 사랑을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사사시대와 왕정시대를 거쳐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유다의 바베론 포로기와 포로기 이후에서 헤롯 성전 시대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시대를 십자가에 피흘리심으로 열기까지, 과연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사랑은 여호와의 진노(투기)의 역사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이는 그만큼 그들이 우상을 섬겼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에 자기 백성이 아닌 자를 찾아가 당신을 믿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이 성취됨으로서 이방인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바울 당시 로마 교회의 이방인들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대로 자기 백성 아닌, 언약 밖에 있었던 로마인들을 먼저 찾아가 진리의 사랑으로 품으시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또한 바울이 전한 복음을 유대인들은 핍박하는데 이방인들은 그리스도를 들음으로서 믿음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뿌리를 내리게 된 것도 이스라엘로 하여금 기이한 눈으로 바라보며 시기 질투를 느끼면서라도 그리스도를 상고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건축자라고 자부하던 유대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내버린 그리스도를 머릿돌 삼아 날이면 날마다 지어져 가는 우주적인 새 성전은 어느만큼 건축되어졌을까요? 이미 묵시 세계에서는 완료된 하나님 나라를 지상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멈추지 않는 여호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님의 역사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가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이는 마치 "나 여기 있다! 나 여기 있다!"며 당신께로 돌아오라는 멧세지를 날마다 들려주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도 개종한 유대인 성도들은 이방인 성도들이 나사렛 예수를 메시야로 영접한 것에 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합니다. 왜냐면 본인들은 모세오경/시가/선지서를 잘 알아도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기 어려운데 이방인들은 너무 쉽게 깨달아 그리스도를 주 하나님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여호와께 순종치 않음으로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풍성한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하나님의 재앙과 징벌이 더 자주 나타난 것을 충분히 아는 자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초림 예수님께서 전해 주시는 복음을 듣고 그 구원의 의미와 불순종의 결과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불순종합니다.
한 고민하는 사람이,제게 말하길 자신은 이대로 가면 죽을 줄 알면서도 자아를 꺾지 않고 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와 함께 날마다 자아를 죽이며 살아가니 성령의 힘이 아니면 어찌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알면서도 순종치 않는 죄를 지은 자들은 더 많이 맞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걸 보면 복음이 어려운게 아니라 실로 깨닫게 되여 자아를 버리고 남은 생애를 십자가의 주와 함께 자기를 죽이며 사는게 싫어서 의지적으로 믿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때문에 바울이 내린 결론은 듣지 못해서도 아니고 알지 못해서도 아니고 믿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라 합니다. 사실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진실로 믿음으로 사노라면 막막할 때가 너무 많이 찾아 옵니다.
"20 :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21: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사65:1~3
우린 로마서를 통해 선민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그 때 당시만의 일이 아닌 모세 시대에도 그러했고 이사야 시대에도 그러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여호와께서는 그 민족을 진멸치 아니하시고 종일토록 손 벌리고 기다리시는 그들의 아버지시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더불어 아버지께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뿐만이 아니라 얼마든지 하시고자 하시면 하시는 절대적 권한으로 언약이 없이,소망 없이 살아가는 이방인에게도 아버지가 되어 주십니다.
선민이란 우월감에 젖은 이스라엘이 그토록 멸시 천대 배척하는 이방인들을 찾아가 이스라엘을 존귀하게 하셨듯이 저들이 고대하며 갈망하던 진리를 알게 하심으로서 자유와 평화의 그리스도의 나라(교회)를 이방 땅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로마교회 유대인 성도들이 바울의 편지를 읽으며 타고난 선민 사상으로 인해 갖고 있었던 이방인에 대한 부정적인 신입견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깨닫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백그라운드가 없었음에도 복음을 들을 때 깨닫고 믿어 예수를 주로 믿는 역사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만이 아닌 모든 육체에 당신의 영을 부어 주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지금껏 이루시고 계십니다.
이것을 보며 제가 느낀 점은 본디 이스라엘을 택하신 목적이 제사장 나라가 되어 열방을 위한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였는데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복의 근원이신 예수를 죽였어도 그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붙잡힌 바 되어 온갖 고난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의 복음을 전할 수 밖에 없는 자로 살아가는 바울이 그렇게 쓰임 받는 귀인이지 않습니까?
바울은 복음에 불순종한 대표였다고 해도 좋을만큼 복음을 핍박하여 스데반의 죽음을 합당하게 여긴 자였지만 바울은 그의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먹어 복음을 낳고 낳은 자가 됩니다.놀랍지 않습니까?
여기서도 믿음은 사람의 노력 여하에 달린게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이스라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고자 하시면 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권한의 힘이 바로 신적 믿음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그니깐 하나님의 절대 주권 없이는 우리의 믿음도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과 달리 내 자신의 자유행사로 아버지를 택하였다 할지라도 아버지께서 햇빛과 비를 주시지 않으면 인간의 믿음엔 이내 균열이 생기고 맙니다.
이 내부의 균열속에 말씀의 씨앗이 떨어져 싹이 돋고 순이 나와 줄기가 생기고 꽃피고 열매 맺어가는 과정속에 점점 뿌리가 내려져 깊이 박혀지는 것이 곧 아버지를 믿는 심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심지는 말씀의 운동력이 준 믿음이라 하겠습니다.100% 하나님의 선물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섰다 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온 우주에서 섰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사렛 예수님뿐입니다. 우린 그 튼튼하게 서계신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굳은 심지로 늘 거할 뿐입니다.
유대인의 불순종은 모든 시대에 걸쳐 있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요한5:37~38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친히 현현하시거나 당신의 종을 보내시어 메시야가 올 것을 아무 때에든지 이스라엘에게 들려 주셨습니다. 허나 그럴 때마다 그 음성을 듣지 못했다 합니다.
사람의 음성을 타고 들려 오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데 어찌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겠으며,또한 그 말씀과의 동거동락이 없는데 어찌 그 말씀의 형상인 하나님을 보겠느냐? 가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지금의 교회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말씀입니다. 각 교회들의 귀와 마음이 십자가의 할례 없이는 여전히 아버지의 목소리,곧 성령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어찌 마음에 그 목소리가 머물겠으며 그 머무름 없이 어찌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있겠으며 보여짐 없이 어찌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겠습니까?
아버지!
복음은 인간의 그 어떠한 노력의 성과가 아닌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절대적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라는 것을 날마다 발견하게 하옵소서.이렇게 매 순간마다 당신을 향하는 과정을 매우 소중히 봐주시고 계시는 아버지의 은혜로운 시선에 날마다 압도 당하며 살게 하옵소서. 내 인생의 결론이 곧 복음이게 하옵소서. 여기에 자꾸만 내 마음을 어지롭히는 것들을 예수님의 권세로 파쇄시켜주시옵소서. 특히 복음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인간 관계나 염려나 내일에 대한 불확실성에 메이지 않도록 주가 친히 내 마음의 보좌에 앉으사 다스리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