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2장
"5:여호와 하나님이 땅(바아레츠/in the earth)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하아다마/the ground)을 갈 사람(일반명사아담/a man)도 없었으므로 들(하사데)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하사데)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하아레츠/in the earth)에서 올라와 온 지면(하아다마/the ground)을 적셨더라 7:여호와 하나님이 땅(하아다마)의 흙(아파르/dust)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야차르/formed)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하아담/the man)이 생령이 되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비를 땅 (바아레츠/ in the earth)에 내리지 않아 땅(하아다마/the ground)을 갈 사람(a man)도 없고 들의 초목과 밭의 채소도 나지 않았다 합니다.안개만 땅(하아레츠/ in the earth)에서 올라와 지면(하아다마/the ground)을 적셨다 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무지의 죄악은 비를 내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바알이 비를 내리는 줄 알고 바알 엘로힘(혼합종교)을 섬긴 것입니다. 참 슬프고 비극적인 실화입니다.
만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최첨단 과학 문명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과 관계 맺기를 멈추신다면 앞으로는 비도 경제와 정치와 학문이 정권과 돈에 결탁하여 과학이 비를 내리게 한다고 어린 것들에게 가르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 땅을 떠나 광야 사십 년 후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자 그 땅의 밭 가는 자들이 됩니다. 밭 가는 자들이 된 이스라엘에게 비는 가히 절대적입니다. 이러한 자연계를 스토리 텔링으로 기록한 문자적인 말씀을 깨트린 사람이 있으니 곧 히브리서를 기록한 저자입니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
히6 : 7 ~ 8
그래서 성경의 태반은 비유입니다. 비유를 푸는데 항상 주의할 점은 문자로 기록한 것을 있는 그대로 읽는 것입니다. 우린 저마다의 비늘들이 눈과 마음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어 있는 문자도 자기 비늘이 움직이는대로 읽습니다. 혹은 토씨 하나나 둘을 건성으로 스치거나 빼먹고 읽습니다. 나도 성경에 기록된 문자가 아닌 내 문자로 읽을 때가 있습니다.
그 결과 저마다의 생각으로 재단한 프레임에 갇혀 프레임 밖은 그야말로 여전히 혼돈과 공허와 깊은 흑암뿐입니다. 성경은 주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함이 있다고 하십니다.
생각하면 성경만큼 주의 영이 머무는 곳은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성경을 펼치면서 읽는 내내 주의 영의 운행하심에 민첩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성경에 비유로 기록된 말씀들은 어떤 고정된 프레임을 말하려 하지 않고 역으로 인간과 사회속에 오랫동안 하나님 알기를 대적하는 견고한 진처럼 고정된 프레임을 깨부수는 강력,곧 진리를 말하고자 합니다.
이 진리는 특정인들에게만 알려 주는게 아닌데도 막상 진리되신 그리스도 예수를 인격적인 심령으로 모시여 들여서 진리체이신 주와 더불어 먹고 마시며 동침하는 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도 모든 사람들이 진리(예수 그리스도)를 알기를 열망하시는데 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열망에 미치지 못할까요?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만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특혜를 베푸셔서 그렇다면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하다면 우리의 의지적인 결단이 없어서일까요? 그래서 절대 예정론 프레임으로 의지론 프레임이 틀리다고 주장/주입시키므로 설득/이해가 되어 예정론자로 만들면 진리를 설파한 상급을 받을까요?
성경엔 예정도 나오는가 하면 의지도 나옵니다. 그렇다하여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절대적 교리로 삼으라고 명한 적은 없습니다. 이는 부분을 가지고 전부라고 우기는 혼적현상으로 유식의 절정에서 탄로난 무지의 소치일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나같은 무식이는 선생되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좇는 것도 헉헉거리는데 뭔 선생들은 그리 많아 그 선생들이 쌓은 신학을 답습/연구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자긍하며 명예를 삼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진실로 나는 예수 한 분 먹기를 갈망하여 예수 한 분 알기도 인생이 너무 짧은데 말입니다.
묵상하다 보면 선생되신 그리스도께서 나와 다른 짝으로 보내 주신 다른 보혜사의 도움 없이는 성경을 깨닫는게 불가능함을 알게 됩니다. 나를 형체도 없이 갈아서 성령의 불로 태워 재가 되지 않으면 자꾸만 내 생각이 칼잡이 되어 갑질합니다.
나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완연히 다른 보혜사를 배필 삼아 살아 갈 때 그리스도는 나의 뼈 중의 뼈요,살 중의 살이라는 탄성이 절로 터질 것입니다. 이리 말하면 골수 분자들은 네가 남자냐? 라고 힐문 할 수도 있겠으나 진실로 나를 살려 주신 살과 뼈와 피가 그리스도인즉 그리 고백함에 당당합니다.
도대체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안개에 적셔진 흙,그것도 아무데나 있는 흙이 아닌 정관사*the*가 붙은 그 땅(하아다마/the ground)일까?
일주일 내내 생각해도 그리스도와 연계된 고리를 발견하지 못하니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함에 일주일 내내 한계로 충만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허나 지금은 그 한계의 시간들이야말로 야훼 엘로힘/그리스도 예수를 만날만한 심령이 되도록 기경하는 과정이였다는 걸 깨닫습니다.
누구는 그분께서 우리 맘속에 늘 살아계시는데 무슨 심령이란 밭을 간다 하느냐?라고 물을 것입니다
허나 사단에게 수천년 동안 빼앗겨 있었던 첫아담의 심령을 되찾게 된 세월은 고작 수 십년에 불과하니 그 수천년 세월 속에 심기워진 사단의 말들과 생각들과 성향과 사조들을 갈아 엎어 다 뽑혀 나간다는게 말처럼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그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단번에 그것도 해치우지 못하냐? 라고 물을 것이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내 자유로운 인격을 함부로 다루시지 않으시니 내 묵상이 거북이 걸음인 것처럼 내 심령 밭을 옥토로 기경함에도 거북이입니다.
창세기를 기록할즈음 모세는 애굽 땅에 종되었던 이스라엘이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범람하는 나일강의 천혜를 누리며 농사 짓는게 아니라 오직 비를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네가 들어가 차지 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 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 초부터 연 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으리라"신11:10~13
천지 창조의 포문을 열어 준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에 나오는 하늘의 원어는 하솨마임으로 정관사 '하(그)'가 붙은 '쌍수'로 '그 하늘들'입니다. 이때 히브리어에서 말하는 쌍수란 단수 혹은 둘,둘 이상의 복수 개념이 아니라 필히 하나로 있어야 할 '짝' 개념으로 쓰입니다.
이 쌍수 개념으로 언급된 핫솨마임을 묵상하면 창세 전부터 품고 계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매우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곧,그 하늘(하솨마임)과 하나 될 대상(짝)으로서 그 땅(하아레츠/지구)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은하계와 별들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유독 지구를 우주의 중심으로,또한 지구의 삼라만상 가운데에서도 사람을 지구 중심으로, 그리고 사람들가운데서도 당신과 온전한 짝인 하 아담을 중심으로 일곱날 마스터 플랜 끝에 안식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준게 창세기1~2:3절까지 입니다.
창세기 2장에 오면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사람과 관계를 맺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등장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관계 맺는 사람을 a man이 아닌 the man으로 지으십니다(야짜르).
하아담을 만드실 때 단번에 하시지 않고 2차에 걸쳐 만드시는데 그 질료가 참으로 특수하고 만드신 주체의 호칭도 엘로힘(하나님)이 아닌 여호와 엘로힘이십니다.
우린 하나님의 호칭을 생각없이 부르는데,그것이 혹여 망령되이 부르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 누구로도 대신 할 수 없는 고유한 인격체로서의 하아담(그사람)을 빚으사 언약 중심으로 관계를 쌓아 나아가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걸 알면 하나님의 호칭을 뜻없이 부르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면 하아담이 바로 성도들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양의 이름 하나 하나를 부르시며 각각 관계를 맺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질료의 특이함이란 지구란 땅에서 안개만 올라와 지표면(하아다마/the ground)만 적셔진 흙(아파르/dust<먼지.가루.흙.재)을 취해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안개가 언제쯤 만들어졌을까? 생각하다 보니 다시 창세기 1장 2절에 나온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깊은 지구를 유기 방임하시지 않으시고 암닭이 알을 품듯이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시는 장면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구 밖 저 머나먼 우주의 빛을 지구에 있게 하사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이 있는 존재(하야/be)로서의 저녁과 아침이 되는 날(욤<낮>),곧 첫째날을 주신 것도 생각해봅니다.
둘째 날엔 궁창을 만드사 윗물과 아랫물로 나누시고 세째날은 그 물을 한 곳에 모이게 하사 드러난 뭍을 땅이라 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니 오늘날까지 그러합니다. Maybe,이 세째날에 안개가 생기지 않았을까 합니다.
지구 창조시에는 지금처럼 사계절이 없는 걸로 압니다. 지금은 계절의 순환과 함께 물도 순환하여 지구 표면 위나 아래에 있는 물들은 지속적으로 움직이며 지역에 따라 액체, 기체(수증기), 고체(얼음) 상태에 속하게 됩니다. 허나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를 만들던 때에는 안개만 올라와 지표면을 적셨다 합니다.
그 요인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러니깐 하아담은 1차적으로 비를 내리기 전 안개에 적셔진 아파르(흙/먼지/재/티끌)로 만들어집니다(야짜르/formed)
이제 1차적으로 만들어진 하아담에게 2차적으로 그 코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면 안될 1차질료인 안개입니다.
안개에 적셔진 그 지표면의 흙으로 만드셨다함은 안개를 포함했다는 말씀이니 그러합니다. 여기서 우린 유동성을 가진 안개가 부동성의 흙과 섞여 있다는 것을 유추하게 됩니다.
안개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상징성은 의외로 많을 것이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말한다면 안개는 땅 위를 부유하듯이 있다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상승하고자 하지만 지표면 위에서 아지랭이처럼 아롱이다 하강하여 지표면만 적실뿐 침투력도 약하여 지하 깊숙히 까지는 적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안개처럼 있긴 있으나 쉬이 사라지는 어떤 것이 흙이란 육신에 섞여 있는게 무얼까? 생각한 끝에 혼이 아닐까? 합니다. 혼은 겉사람만 적실뿐 영의 영역인 심령과 속사람은 적실 수 없음을 안개를 비유로 들려주시고픈 멧세지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땅으로부터 올라오는 것이 안개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으로 비로 말씀하십니다. 이는 땅으로부터 아무리 위를 향해 올라 간들 하늘과 만날 수 없는 혼적 존재를 안개를 비유로 보여 주신다면,사람을 만나시려고 전적 주도권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걸 비를 비유로 보여주시는 셈입니다
왜냐면 여호와 하나님이시야말로 비를 내리지 않게도 하시고 내리기도 하시는 분으로 성경이 처음부터 오늘까지 영원토록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이 비를 내리기도하시고 안내리기도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1차적으로 만드신 하아담에게 2차적으로 자신의 영,곧 여호와의 영,성령,생기를 그 코에 주입시키심으로서 그 사람을 생령이 되게 하십니다.
비는 산천초목과 땅을 생기 있게 합니다.성경에서 비는 성령의 단비로 안개로 비유된 혼이 겉사람만 적신다면 성령은 사람의 속심령까지 적셔 감동 감화시켜 주십니다.
생령에 관해서도 해석의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그리스도로 접근한 바울의 해석이 가장 타당하다고 분별합니다.
"기록된 바 첫아담은 산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15:45
첫아담은 여호와 하나님의 생기로 산 영으로 지음 받았으나 범죄함으로 죄와 허물로 죽은 영이 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아담이 살려주는 영으로 오신 것입니다.
에스겔서에서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고 56회에 걸쳐서 선포하신 말씀은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반드시 체험되어져야 합니다.
내 영(성령)을 너희 속에 두어 성령의 계시로 아들을 알면, 아들을 통해 스스로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알아 가는 무한한 존재의 날(욤 <낮>),곧 다시는 밤이 없는 낮만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런 상태로 계속 사는게 영생이니 얼마든지 지상에서부터 누리는 것입니다
하아담을 짐승과 다를 바 없는 혼적존재로만 만들지 않고 친히 여호와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사 영적존재가 되게 하심은 강권적인 사랑이요, 천지창조의 목적 때문입니다.
곧 당신과 온전히 하나가 될 짝(대상)을 만드사 그 짝을 성전 삼아 거하시며 피차 거룩한 안식의 나라 곧 하나님 나라의 목적을 이루려 하심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첫댓글 할렐루야!
성령의 단비에 젹셔살도록 이끄시는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로 인하여
오늘도 기쁨 충만!!!
안나님. 감사^^
White님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힘이 됩니다
새 창조의 주역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창조의 역군으로 살아가는
일상을 축복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