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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4편(다윗의 시: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1: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를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어리석은 자는 마음에 이르길 하나님이 없다 하고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지 않는다 합니다
내 마음에 한번도 하나님 없다 한 적이 없는 것은 어릴 적부터 보고 들은 부모님의 신앙 때문일 것입니다
예전에는 "내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는 말씀을 읽으면 전적 동의하기도, 전적부인하기도
애매 모호한 내 마음의 경계선에서 한참동안 서성거리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이다지도 모두를 싸잡아 소행이 가증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고 선포하는데 시인은 용감한 것일까?
하긴 그 모두 안에 시인 자신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발견한다면 시인이야말로 그 모두의 대표자로서 선포한 것이라는 걸
인정하게 되면서 우리 역시 시인과 동일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죄인됨을 이처럼 뒷 줄에 서서 미기적거리지 않고
떳떳하게 선포할 수 있음은 진정 허물의 사함을 받은 자의 복을 흘러 주는 영적 현실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근데 시인은 이전의 나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의식한 양 그는 다시한번 1절 말씀의 타당성을
여호와께서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통해 이해 시키려고 합니다
"2: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선"을 바라보는 관점이 상대적 선으로서의 인간 관점이 아닌 절대적 선이신 여호와의 관점이었다는 것으로 설득시켜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이 계신다고 인정한다하여 그 마음의 부패성이 척결된 것은 아닙니다
때문에 아무리 선을 행하여도 마음의 부패성은 숨긴채 겉만 좋게 보이는 선은 하나님의 온전한 선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시지만 다 치우셨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다고 하십니다
다윗이 사울의 추적을 피해 떠도는 여정을 살면서 그는 하나님께 피한 상태속에서 날마다
간절히 찾고 구한 분은 오직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땅에서 경건하여 선을 행하는 자도 간절히 찾은 사람입니다
다윗의 그런 체험은 그에게 부어진 "여호와의 기름부음"으로 인해 "지각을 사용하여 연단받는 상태속에 겪은 것입니다
때문에 그는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당신을 찾는 자"를 보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넉넉히 인지하며 사는 자가 된 것입니다
동시에 본인은 그렇게까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날마다 새롭게 느끼며 살다
평생 사모하던 그 품으로 돌아 간 것입니다
이렇듯 여호와께서 찾는 사람은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살 길, 곧 선하신 성령님의 열매인 영생을 먹고 누리는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단한 음식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입니다(히5:14)"
여기서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은 자라함은 선악를 분별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 받는 자가 분별하는 선악과 그렇지 못한 자가 선악을 분별하는 기준과 가치와 관점과 차원은
분명이 다릅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입니까?
생명나무가 선이라면 선악나무는 악입니다
아무리 사람보기에는 선일지라도 선악나무로부터 나오는 것은
상대적인 선일뿐 하나님의 온전한 선에는 미치지 못하여 사망에 이르는 악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보기에는 악일지라도 생명나무로부터 나오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선이라는 말입니다
진실로 무엇이 생명과이고 무엇이 선악과인지,
선악을 분별하는데 절실히 필요한 것이 있다면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것"일 것입니다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는 반드시 풀무에 일곱번 단련된 여호와의 순전한 말씀을
자기 몸으로 육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지각을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자는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자로 무시로 지각(생각과 인식의 패턴)을 사용하여 자신의 인식과 생각의 패턴속에
불순한 동기와 감정과 생각들의 찌거기들을 거룩한 불에 태워지기를 항상 구하는 자입니다
지각은 헬라어로는 "수네시스"로 어떤 해석이나 생각하는 방식과 사고방식을 뜻한다 합니다
영어로는 언더스탠딩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지각을 사용한다함은 철과 철이 부딪혀 예리한 날이 되듯 강철처럼 단단한 하나님의 말씀에 부딪치기를 계속하여
말씀화되는 전 과정을 말함입니다
이 과정을 무시하면 단단한 말씀을 먹어야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길을 차단하는 셈입니다
그 결과 육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오감과 말초신경에 치우쳐 육을 좇아 갑니다
허나 단단한 말씀일지라도 순전한 여호와의 말씀이 풀어지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는 영을 좇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교회와 함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이런 교회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깊은 곳까지 통달할 수 있도록 성령을 아낌없이 부어주십니다
일반인도 명철과 지혜와 지식과 분별력과 통찰력과 면밀함은 하나같이 "지각"을 사용할 때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암시적으로 다 알고 있는 상황이라면 교회가 다 함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랄 것을 권면하는 성경을
믿는 성도는 더 더욱 힘써야 할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육신이 아니시고 영이신고로 오감처럼 육체를 통해 보고 듣고 맛볼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하나님을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시편 기자는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단단한 음식을 지각을 사용하여 연단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둘 다 "지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보고 듣고 맛보며 느끼며 냄새 맡을 수 있는 것을 오감이라 하며
눈 코 혀 귀 등의 장기들과 신경부분들이 이를 담당합니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일할 수 있다하여 당연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몸의 장기와 신경세포들 중 그 무엇이 잘못되어도 장애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노력없이 값을 측량할 수 없는 소중한 몸을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은 이 몸으로 하나님을 나타내도록 하려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오늘도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 있어 당신을 찾는 자"를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버지!
단단한 당신의 말씀을 소화시킬 수 있도록 항상 지각을 사용함으로서 끊임없이 내 생각을 내 감정을 내 뜻을 내 말 내 편식성향을 성령의 풀무속에 던져서 제련받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교회와 함께 자라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마라나타!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탐욕,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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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롬1:28~32
첫댓글 감사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