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에 크게 감동된 사울이 전령들의 손에 자기 소를 잡아 각을 뜬 것을 들려서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보냅니다.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않으면 그의 소들도 잡아 이같이 각을 뜰 것이라 하자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들에게 임하매 한 사람 같이 나온 삼십 삼만 명과 함께 암몬의 나하스와 싸워 승리합니다.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들을 끌어내 주면 우리가 죽이겠다고 하자 사무엘이 아닌 사울이 오늘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으므로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라고 말합니다
이 때 사무엘의 느낌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사울이 자신에게 구애받지 않고 공무를 행할 수 있도록 은퇴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성경 저자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는 사울의 말을 기록해 놓습니다. 또한 이렇게 아름다운 사울이 왜 여호와와 사무엘을 근심케하였는지도 기록해 놓음으로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10:12)"는 말씀을 명심하게 됩니다
이제 사무엘은 백성에게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고 합니다. 나라를 새롭게 함에 모든 백성이 희망을 품고 길갈에 모입니다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삼상 11:15
길갈은 이스라엘이 광야 40년을 지나 요단을 건너서 맨 처음으로 진을 친 곳으로 여호와께서 애굽의 수치,곧 노예의 근성을 굴러가게 하신 곳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셨다 하셨으므로 길갈이라 하느니라"여5:9
나라를 새롭게 하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여호와께서 애굽의 수치였던 노예 근성을 굴러가게 하셨다는 걸 믿고 자유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갖고 발로 밟는 땅을 정복하며 다스려 번성케하는 것입니다. 그런 길갈에서 사무엘이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화목제를 드립니다.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합니다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가 내게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 보라 나는 늙어 머리가 희어졌고 내 아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서부터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얐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리 하니 그들이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누구의 손에서든지 아무 것도 빼앗은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삼상12:1~4
사무엘은 사울과 백성이 크게 기뻐하는 좋은 날에 아름다운 퇴장을 작심하고 실행합니다. 그럴려면 여호와와 여호와의 명에 순종하여 자신이 기름부은 자 앞에서 어릴 때부터 지금껏 출입하며 행한 모든 일에 관한 백성들의 증언이 필요했습니다.
나라와 백성들에게 손해 입히고 퇴장할 수는 없기에 이제라도 갚아야 할 것이 있다면 갚을테니 뭐든 증언하라고 자신을 스스로 기소하는 격입니다. 여기서 제가 다시 주목해 보는 것은 사무엘의 아들들에 관한 증언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장로들이 사무엘의 늙음과 사무엘 아들들의 재판이 뇌물을 받음으로 공정치 못하다는 두가지 이유로 왕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사무엘이 자신은 물론 자기 아들들의 일까지 굳이 백성들의 입으로부터 진위 여부를 가려서 보상할 것은 보상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사람답게 하나님 앞에서와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신이 기름부은 사울 왕 앞에서 말입니다.
사무엘은 사울도 자기처럼 이스라엘 앞에서 출입하기 시작할 때가 있으면 퇴장할 때가 있다는 것을 실제 역사 현장을 통해 교육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 대단한 인물입니다. 제곁에는 이미 은퇴할 사람이 있는지라 이 인물을 주목하게 됩니다. 놀라운건 백성들의 증언입니다.그런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이 말은 장로들이 사무엘의 아들들의 불의함을 근거로 왕을 구한 것은 자신들의 불의함을 덮기 위한 술수요,수단으로 써먹은 것으로 여호와께서 가장 싫어하는 외식인 것입니다.
암몬의 나하스 왕이 길르앗 야베스를 친 것이 사울 지도자를 세우기전부터 있었던 것 같습니다.차라리 장로들이 자기들도 암몬의 나하스 왕 같이 자기들을 위해 싸워주는 왕을 세우고 싶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었으면 동정이라도 받았을 것입니다
(삼상12:13)
이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형제의 죄를 가지고 자기 죄를 덮으려하면 안됩니다
이제 사무엘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한 사람으로서 온 이스라엘을 여호와와 기름부은 사울 앞에서 이스라엘의 죄를 증언을 합니다. 그것은 단연코 이 나라가 왕이신 여호와를 버렸다는 것입니다. 과연 어릴 때부터 여호와의 법궤 앞, 여호와의 성전 안에서 잠자며 여호와 앞에서 자라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고 있는 선지자 답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왜 개독교 소리를 들어야만 합니까? 그리스도가 교회의 왕됨은 고사하고 자신의 왕으로도 인격대 인격으로 교제하지 않은 상태로 종교적인 신분을 가지고 살려니 본인들은 얼마나 못할 짓일까 가슴만 아프고 아픕니다. 그 결과 겉과 속이 다른 외식과 위선의 옷을 입은 당사자들이 되었음에도 그 옷을 벗지 못합니다. 깨어 있는 자들은 혹여 내가 어디서 그리스도의 왕됨을 버리고 나를 왕으로 삼고 달려 온 것일까? 무시로 책망해 주시길 기도할 것입니다.
사무엘은 연이여 여호와께서 너희의 왕이 되어서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모세와 아론을 비롯한 여러 사사들의 이름을 밝히며 말해주는데 특별히 여기서 왕이신 여호와께서 행하신 모든 것을 <공의로운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삼상12:6~11)
여호와께서는 너희들이 공의롭지 못할 때 공의로운 일을 반드시 행하신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 말씀의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여호와의 공의의 뒷면에 숨어있는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자기 백성임에도 범죄하여 공의롭지 못하기에 여호와께서 주변국의 손에 넘길실지라도 냉큼 당신께 부르짖으며 돌아오면 구원해주시는 사랑입니다.
바로 여호와의 이 구원해 주시는 사랑이 있기에 당신을 버리고 다른 나라 같이 왕을 구하는 이스라엘에게 왕을 허락해 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주변국의 손에 넘겨서라도 이스라엘아! 너희는 내 백성, 내 아들들로 택한 나의 기업이라는 것을 그들이 부르짖을 때마다 친히 나타나 구원하시는 사랑으로 이스라엘 역사를 이제껏 쓰신 전능자께서 자기 백성들이 왕정시대를 열고 싶다는데 못해줄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 내 맘은 섭하다만 정 그러면 열어줄테니 한번 잘해보렴, 잘못하면 내가 조상들에게 했던 것처럼 공의로운 일을 행할거다> 그런 마음으로 사무엘을 통해 또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이제 너희가 구한 왕,너희가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겠지마는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조상들을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삼상12:13~15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