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그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한지라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 2: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그러면 당신의 종이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하니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그러면 내가 너를 영원히 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 하니라"
다윗 공동체가 살아가는데 시글락만한 곳도 없다 싶을 때 블레셋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다윗 없는 이스라엘을 공격하고자 합니다. 다윗은 이 때가 오길 학수고대 했을 것입니다. 사울과 그의 몸통들이 전쟁에서 죽을지 모른다는 예측을 이미 말로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근데 불쑥 아기스가 너도 참전할 것을 밝히 알라고 말합니다. 이에 다윗은 "그러면 당신이 종의 행할 바를 아시나이다"라는 능청인지, 연기인지,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말을 합니다.
놀라운건 다윗의 말에 아기스 왕이 어떠한 의혹도 품지 않은채 "그러면 내 머리 지키는 자가 되리라"고 답합니다. 네가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그 공로로 경호대장까지 주겠다고 말함이 그렇습니다.
다윗의 향기가 어떠하면 자기를 속이고 있는데도 그렇게 신뢰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이제 다윗은 유다 변방 사람들을 쳤다고 아기스 왕에게 거짓말한 댓가를 치러야 할 위기를 어찌 요리할 것인지, 여호와께서 계속 침묵만 하실지 개입할 것인지 참으로 스릴이 넘칩니다. 내가 주와 함께 산다는 것을 즐길 수 있음은 진실로 주의 선하심과 진실하심이 크고 크기 때문입니다.
"3: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두고 슬피 울며 그의 고향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4:블레셋 사람들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 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 쳤더니 5: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6: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므로 7: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8:사울이 다른 옷을 입어 변장하고 두 사람과 함께 갈새 그들이 밤에 그 여인에게 이르러서는 사울이 이르되 청하노니 나를 위하여 신접한 술법으로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을 불러 올리라 하니 9: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사울이 행한 일 곧 그가 신접한 자와 박수를 이 땅에서 멸절시켰음을 아나니 네가 어찌하여 내 생명에 올무를 놓아 나를 죽게 하려느냐 하는지라 10:사울이 여호와의 이름으로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이 일로는 벌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1:여인이 이르되 내가 누구를 네게로 불러 올리랴 하니 사울이 이르되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하는지라 12: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치며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나이까 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 13: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하니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영이 땅에서 올하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하는지라 14: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하니 그가 이르되 한 노인이 올라 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하더라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의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
사무엘 없는 사울과 다윗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무엘로 인해 다시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나타내기 시작한 결과 사울과 다윗이 이스라엘 역사의 수면 위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죽음은 그를 통해 기름부음 받은 두 사람이 그의 정신을 받들어 나라와 백성을 기도와 말씀으로 섬겨야 할 과제를 유언으로 남겨 준 셈입니다.
우리가 사울의 불순종을 너무나 잘 아는 것은 우리 안에도 사울 같은 외모와 외식과 자기 중심적인 옛사람이 있어 자주 자주 불순종하기 때문입니다. 그럴지라도 우리 안에는 다윗처럼 멜렠(왕,예수)의 기름부음(그리스도)이 있어 성령의 가르침대로 순종하고자 탄식하며 갈망하는 새생명,새 피조물의 태동을 자각하며 살아 가기도 합니다
성경은 사울이 죽고 다윗이 다시 살아나는 시점을 부각시키려 함에 사무엘의 죽음을 다시한번 기록함으로서 옛사람이 죽어 다시 새사람으로 살려함에는 반드시 예수의 죽음이 있어야함을 말해줍니다.
사울은 사무엘의 죽음 속에서 사무엘의 정신,즉 하나님의 말씀을 유업으로 삼는 것 같으나 결국은 실패합니다. 그 실패의 정점이 자기가 쫓아낸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 사건입니다.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은 것입니다. 그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속에서 왕복을 벗고 변장하고 길보아에서 블레셋이 진 친 수넴을 지나 엔돌의 무녀를 찾아갔다는게 문제입니다.
수넴에 진 친 블레셋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어 여호와께 물었지만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대답치 않으셔서 갔다 합니다.
그는 내 죄가 여호와의 응답을 가리고 있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죄와 허물로 죽어 있는 영입니다.
왜 응답치 않으셨을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사울은 어디까지나 <나를 위하여>입니다 그의 자아중심적인 생각은 참으로 일관성이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제단을 쌓지 말라하는데도 사울은 자기를 위한 제단을 서슴없이 쌓습니다. 엔돌의 신접한 여인은 죽은 자를 불러 달라 하자 자기를 죽이려한다며 거절 하지만 사울은 대뜸 나를 위하여 하라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코 죽이지 않겠다며 사무엘을 불러 달라 합니다.
죽은 사무엘을 불러 달라는 말에 여인은 사무엘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치며 어찌하여 나를 속였나며 사울인줄 알게 됩니다. 사울이 작정하고 신접한 여자에게 사무엘을 불러 올리려 하자 귀신 또한 작정하고 여인을 갖고 놉니다.
신접한 자들을 쫓아낸 사울 당사자가 자기를 찾아 왔으니 여인은 더 놀랬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자기를 죽이려고 변장하고 온 왕이라고 생각되어질테니깐요. 사울이 두려워말라 말합니다. 여인에게 두려워말라고 말하는 사울의 폼새가 어찌나 외식과 위선에 쩔고 쩐 말인지 구토가 납니다. 이제 귀신이 작정하고 여인을 통해 굿판을 벌이니 사울의 조바심이 귀신들린 여인에게 "네가 무엇을 보느냐?고 먼저 말을 겁니다. 사울도 악령의 놀터가 된 적이 있으니 서로의 끌어당김이 흥미롭습니다.
신접한 자와 교통하지 말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한 사울에게 "내가 영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라고 합니다. 이에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고 물으니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겉옷을 입었다는 말에 사울은 초조와 불안속에 더 이상의 분별함을 생략한채 사무엘로 알고 그의 얼굴을 땅에 대고 절까지 합니다.(삼상28:10~14) 너는 나외에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는 계명을 거역합니다.
"15: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를 성가시게 하느냐 하니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다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하지 아니하시기로 내가 행할 일을 알아 보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하더라 16 :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17 : 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18 :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19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라"
이 음녀를 갖고 노는 영은 종교의 영이라 할 수 있습니다.사울에게 접근하기 위해 사무엘의 말씀을 말함으로서 참 선지자 사무엘로 믿게 만드는 수법이 그렇습니다. 귀신을 사무엘로 믿는 사울에게 귀신은 사무엘 이름으로 사울과 대화합니다.
오늘날은 어떨까 합니다. 오늘날도 종교의 영들은 성경을 알되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로 힘쓰기*딤후2:15*>보담은 어떻해 하면 나를 위하여 내 입지와 내 세력 확장과 내 생존과 내 성공과 명예를 위하여 진리의 말씀을 사용할까 힘씁니다.
복음은 숨지는 순간까지 심판과 구원을, 곧 진노 중일지라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이야기해 줌으로서 돌이켜 회개할 수 있도록 돕는 은혜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귀신은 율법의 저주와 사망의 말로 사울의 숨통을 아예 끊어버립니다.
여호와께 버려져 죄 아래,율법 아래 가둔 인간의 비참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20:사울이 갑자기 땅에 완전히 엎드러지니 이는 사무엘의 말로 말미암아 심히 두려워함이요 또 그의 기력이 다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루 밤낮을 음식을 먹지 못하였음이니라 21 : 그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가 심히 고통 당함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여종이 왕의 말씀을 듣고 내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왕이 내게 이르신 말씀을 순종하였사오니 22:청컨대 이제 당신도 여종의 말을 들으사 내가 왕 앞에 한 조각 떡을 드리게 하시고 왕은 잡수시고 길 가실 때에 기력을 얻으소서 하니 23: 사울이 거절하여 이르되 내가 먹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그의 신하들과 여인이 강권하매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서 잏어나 침상에 앉으니라 24:여인의 집에 살진 송아지가 있음으로 그것을 급히 잡고 가루를 가져다가 뭉쳐 무교병을 만들고 구워서 25:사울 앞에와 그의 신하들 앞에 내놓으니 그들이 먹고 일어나서 그 밤에 가니라" 삼상 28장
사울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대신 자기를 떠난 여호와의 영이 다윗과 함께 하는 것을 알게된 후 부터 다윗만 두려워합니다. 그만 죽이면 문제가 다 해결될거라 생각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다윗이 없는 이스라엘에서 블레셋과 싸우려니 정말 두렵고 크게 떨립니다.
블레셋과의 전투를 어찌해야 할지 사무엘을 불러서 행할 바를 들으려했지만 그를 빙자한 귀신이 사무엘이 살아 생전 사울에게 들려 주었던 말들을 반복할 뿐입니다. 나아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의 손에 넘길 것이며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을거라는 말을 끝으로 들은 사울은 땅에 완전히 엎드려집니다.
도무지 EXIT가 없습니다. 여호와께 버림 당한 자에게는 희망이라는 출구가 없습니다.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은 나도 사울처럼 여호와께 버림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똑똑이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근데 오늘날 율법의 시대가 가고 복음의 시대가 와서 사울처럼 버림 받아야 할 날 대신하여 다윗의 자손 예수께서 여호와로부터 버림 당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버림 당하신 고통은 밑바닥 없는 끝모를 절규와 절망과 흑암자체였습니다.
율법의 저주와 사망의 세력은 그를 죽이기까지는 했지만 다시 사신 것은 성결의 영인 그를 사망과 음부와 사단조차 가두어 놓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를 삼일 만에 다시 살릴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이고 그는 스스로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신접한 여인을 통해 거룩한 여호와와 그의 종 사무엘을 모방하는 것을 보며 사울이 얼마나 여호와와 그의 종 사무엘을 욕되게 하여 더럽힘 당하게 했는지 깨닫습니다. 물론 여호와나 사무엘은 그런다하여 더럽혀지지 않지만 사울은 그 이름을 더럽힌만큼 스스로 더러운 귀신의 놀이터인 엔돌의 여인을 찾아가 그녀를 따름이 그렇습니다. 그녀가 주는 고기와 떡을 안먹겠다고 사양하지만 결국은 먹는 가련한 사울. 그것이 이생의 마지막 음식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89년도에 캐나다 와서 놀란 것은 불량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욕지거리들이 내가 사랑하는 예수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교회와 종들과 성도들에게 주셨지만 우리가 거룩하게 살지 못하여 저주와 비방과 욕지거리가 되도록 악영들과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내주었다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어찌 신접한 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겠는가? 낙원에 있어야 할 선지자 사무엘이 어찌 신접한 자가 부른다하여 나 여기 있다며 끌려 나올 것인가? 또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게 될 너와 네 아들들이 어찌 땅에서부터 올라온 영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하는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부끄러움 없는 하나님의 일군으로 인정 받는 자가 되어 힘써 하나님께 드려지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려면 먼저 드려져야 할 것이고 드려져서 받으신 바가 되지 않으면 사울처럼 버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유혹과 정욕과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여호와께서 사울을 버리신 것처럼 과감히 버리게 하옵소서
하여 위의 것을 쫓는 새 사람 다윗 성도처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게 하옵소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주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벧후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