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큐티본문은 예레미야34장~52장입니다.멸망 이전(렘1장~33장)에 들려지던 말씀대로 바벨론에 의해 유다는 멸망당합니다. 우리 생각엔 망하면 끝장인데 여호와께서는 그렇지 않음이여!
이런 것만 봐도 확실히 사람의 생각과 여호와의 생각은 달라도 한참 다릅니다.
멸망(렘34장~45장)의 한가운데로 여전히 말씀을 주시는 여호와로 인해 예레미야는 멸망 이후(렘46장~52장)에도 계속 말씀을 전합니다. 인간에겐 멸망이지만 여호와께서는 새역사를 일으킬 기회로 삼으시기에 말씀을 중단할 수가 없습니다.태초에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듯이 말씀으로 역사를 창조해 나가시기 때문입니다.
렘37장
"1: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니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유다 땅의 왕으로 삼음이었더라 2:그와 그의 신하와 그의 땅 백성이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듣지 아니하니라 3:시드기야 왕이 셀레먀의 아들 여후갈과 마아세야의 아들 제사장 스바냐를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보내 청하되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 하였으니 4:그 때에 예레미야가 갇히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 가운데 출입하는 중이었더라 5: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바벨론)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 6: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7: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의 왕에게 아뢰라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8: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르리라 9: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 하지 말라 그들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10:가령 너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중에 부상자만 남긴다할지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
유다의 16대 선왕 요시야가 므깃도 전투에서 죽게 되자(BC609년) 유다는 대혼란과 맞물려 종내는 파국(BC586년)을 맞습니다. 당시 유다는 신흥제국으로 떠오르는 바벨론과 함께 가느냐? 므깃도 전투에서 승리한 기득권 제국 애굽과 함께 가느냐? 가 가장 큰 잇슈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 때를 위하여 선지자 예레미야를 세우사 미리 그를 통해 바벨론 왕에게 순히 항복할 것을 명하십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바벨론 포로기 70년을 정하셨다는 것도 비밀에 붙히지 않고 선포하도록 하십니다.
이 말씀에 가장 복종하기 힘든 부류는 누구였을까? 우린 그 부류들의 중심축이 성전 제사와 업무로 살아가는 제사장들과 거짓 선지자들이였다는 것에 좀 심각해져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한 유다는 결코 망할 수 없다는 과신을 믿음으로 착각하며 그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교회라고 일컬음을 받는 성도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겠다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라 함은 당신이 거룩하신 것처럼 성도도 거룩케 만드시겠다는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입니다. 거룩함과 상관없는 임마누엘 신앙과 예배는 자칫하면 부적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가령 너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는 말씀 속에서 당시 상황을 언듯 엿보게 됩니다.
항복하느니 차라리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겠다는 숭고한 민족사상과 애국사상으로서의 의를 주장하는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예레미야의 말씀은 너무나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였을 것입니다
또한 예루살렘 성전 제사를 중심으로 구축된 종교적인 기득권자들과 왕실의 정치적인 기득권자들과 정치와 종교 세력에 야합한 거짓 선지자들에게 예레미야의 말씀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협하는 불길한 말씀으로 순종하기엔 너무나 아픈 말씀이였을 것입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유다 20대 왕이 된 시드기야는 느부갓네살 왕과 약조를 하였음에도 그 약조를 파기하고 친애굽 정책을 펼칩니다. 이는 예레미야를 통해 들려 주신 여호와의 말씀을 버리고 바벨론을 배반한 것입니다. 이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군대를 끌고 와 유다의 여러 견고한 성읍들을 파괴한 후 예루살렘 성을 에워싸게 됩니다.
이 때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바벨론) 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납니다. 다급해진 시드기야 왕은 여후갈과 제사장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달라고 청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시드기야 왕을 위하여 예레미야에게 다시 또 말씀으로 임하십니다. 바로의 군대가 임하는 것보다 바벨론의 군대가 임하는 것보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는 것이 성도에게는 힘이요 방패요 피난처요 의지가 됩니다.
여호와의 말씀인즉 바로의 군대는 다시 애굽으로 가고 갈대아인들이 다시 와서 예루살렘 성을 빼앗고 불 질러 버릴 것이니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고 말하지 말라하십니다. 그들은 떠나지 않을거라 하십니다
왜 사람은 스스로 속여 말하게 될까?
한 마디로 십자가의 고난에 뿌리를 둔 여호와의 말씀이 마음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모든 말씀은 십자가를 관통하지만 인간의 모든 언행들은 십자가를 피하려 합니다.
죄를 짓고도 여전히 죄와 함께 딩굴길 좋아하는 인간 본성은 여호와께서 정결케 하시고자 작정하신 바벨론 칠십년 포로기를 심히 거부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속여 말합니다.
결국 우리의 삶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뿌리를 두지 않으면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되풀이 하며 살게 되어있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