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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41장
"4:그가 그다랴를 죽인 지 이틀이 되었어도 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더라"
이스마엘이 그다랴만 죽인게 아니라 그와 함께 한 유다 사람들과 갈대인까지 죽인 결과 그 참상을 전해줄 자가 아무도 없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 위에 전쟁의 참상으로 마을마다 거리마다 인적이 끊긴 것도 한 몫하지 않았을까 합니다.또한 총독은 자기에게로 모인 백성들에게 각자가 얻은 성읍들로 돌아가 정상적인 삶을 재개하라고 당부했기에 그 작은 인구들이 흩어져 산 것도 신속한 소통에 장애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치밀한 계획속에 자신의 살인행위를 덮으려해도 그의 악행은 드러납니다
5:그 때에 사람 80명이 자기들의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에 상처를 내고 손레 소제물과 유향을 가지고 세겜과 살로와 사마리아로부터 와서 여호와의 성전으로 나아가려 한지라 6: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영접하러 미스바에서 나와 울면서 가다가 그들을 만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가자 하더라 7:그들이 성읍 중앙에 이를 때에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기와 함께 있던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을 죽여 구덩이 가운데 던지니라 8:그 중의 10명은 이스마엘에게 이르길 우리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우리를 죽이지 말라 하니 그가 그치고 그들을 그의 형제와 마찬가지로 죽이지 아니하였더라
무고한 피로 당신의 땅을 더럽히는 것을 여호와께서는 그냥 두시지 않고 반드시 그 성읍의 장로들이나 제사장들을 통해 속죄물을 드리도록 명하셨습니다. 땅은 사람 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땅의 더럽힘을 속죄의 피로 씻는 것은 마치 마음을 씻는 정결행위라 볼 수 있습니다.
불순종한 유다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심판 받는 중에도 주께서는 긍휼을 베푸사 총독 그다랴를 중심으로 정상적인 일상의 재개를 도모하도록 앞장 서십니다. 그럼에도 이 일에 순복치 않는 이스마엘과 그 일행의 끈질긴 완악함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거룩한 선민이요,더구나 이스마엘은 다윗 왕가의 종친임에도 악을 생산했둣이 오늘날의 거룩한 교회요 거룩한 종들이요 성도들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그리스도가 계신 위의 것을 찾아야 하는 새질서에 왜 그렇게 익숙하지 않는지요? 그러니 과감히 멈추고 끊어야 할 육의 언행들로 지상 교회는 피차 물고 늘어져 그나마 날마다 심판 중일지라도 매 순간마다 긍휼을 베푸사 원두막처럼 겨우 부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터마저 흔들거리며 가중되는 혼란을 겪습니다.
이스마엘의 죄악이 얼마나 간교한지 광명한 천사로 위장하여 여호와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파멸케하신 재앙에 애통하며 폐허가 된 성전터에서라도 소제물과 유향을 가지고 제사 드리려고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로부터 오는 순례자를 낛는데 성공합니다.
이것은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권위와 질서가 무너진 혼란한 시대에 그나마 영적대각성의 부담감을 안고 예배자로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남은 자들을 어떤 방법으로 공격하는가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들은 북이스라엘이 사라진 뒤에도 그 땅에 남아 요시아 왕의 종교개혁에 힘입어 여호와와 예루살렘 성전 신앙을 회복하고자 힘쓰게 된 자들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할 때 거짓과 미혹의 영들이 광명한 천사의 얼굴로 다가옵니다. *분별의 영과 지혜*를 성령 안에서 무시로 구해야 합니다. 물론 자신의 정결이 우선시 된 상태에서 드려지는 기도입니다.
광명한 천사로 위장한 자들의 특징은 죄가 죄인줄 모른다는 것과 탐욕입니다. 이스마엘과 그 일행에게서 우린 죄의 자각 증상이 상실된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그리고 밀과 보리와 곡식과 기름을 감춘 곳을 알려 줄테니 죽이지 말아 달라고 사정하는 열 명을 살려 둔 것을 보면 그들의 탐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영적대각성의 포인트는 크고 작은 죄와 탐욕에 대한 예민한 자각증세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의 진실된 회개는 닫힌 하늘 문을 엽니다.
9:이스마엘이 그다랴에게 속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던진 구덩이는 아사 왕이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을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가 쳐죽인 사람들의 시체를 거기에 채우고 10:미스바에 남아 있는 왕의 딸들과 모든 백성 곧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위임하였던 바 미스바에 남아 있는 모든 백성을 이스마엘이 사로잡되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사로잡고 암몬 자손에게로 가려고 떠나니라"
이스마엘은 그다랴에 속한 사람들까지 죽입니다. 주님께서도 당신을 따르려면 자기 목숨을 미워해야 한다고 하셨고 당신으로인해 박해는 물론 죽임까지 당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그림자 시대를 살았던 구약 성도들도 그러했음을 성경이 증거함으로서 진리의 배타성은 진리의 보편성과 함께 불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바벨론에 항복하여 친바벨론파라는 것만으로 죽임 당하는 것이 당시 현실입니다
신랑되신 주의 말씀과 믿음으로 연합된 일상을 산다는 것은 세상의 많은 것들과는 배타적이기에 세상의 미움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때론 교회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진리의 배타성은 오직 어린 양이 인도하는대로 가게 만듭니다. 세상에 더럽힘 당한 교회는 어린 양이 이끄는대로 갈 수 없습니다
이스마엘은 시체들을 처리한 후 미스바에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위임한 왕의 딸들과 남은 모든 백성들을 사로잡아 암몬 자손에게로 가려 합니다. 왕의 딸들은 왕족으로 그들에게서 낳은 자들도 왕족입니다.추측컨대 암몬 왕은 유다 왕가와의 결혼을 통해 유다의 남은 자들을 다스릴 명분을 갖고자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죄의 결과는 거룩한 선민일지라도 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공중 권세자들과 불순종의 영들에게 사로잡힌 죄의 노예로 전락시킵니다.
11: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 자휘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행한 모든 악을 듣고 12:모든 사람을 데리고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싸우러 가다가 기브온 큰 물 가에서 그를 만나매 13:이스마엘과 함께 있던 모든 백성이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던 모든 군 지휘관을 보고 기뻐한지라 14:이에 미스바에서 이스마엘이 사로잡은 그 모든 백성이 돌이켜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로 돌아가니 15: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여덟 사람과 함께 요하난을 피하여 암몬 자손에게로 가니라 16: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던 모든 군 지휘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이고 미스바에서 잡아간 모든 남은 백성 곧 군사와 여자와 유아와 내시를 기브온에서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서 17:애굽으로 가려고 떠나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물렀으니 18:이는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바벨론의 왕이 그 땅을 위임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였으므로 그들이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
이 때 요하난과 모든 군 지휘관이 이스마엘의 악행을 듣고 이스마엘과 싸우러 달려 오는데 기브온 큰 물가에서 만나게 되자 이들을 본 모든 백성들이 기뻐합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목자 없이 유린 당하는 가련한 백성들은 오늘도 누군가의 도움을 숨 막히는 현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가게에서 일하다 보면 길 잃고 헤메이는 가련한 양들을 일상처럼 만납니다. 그들이 가게 문을 열고 나가는 뒷모습은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고 계시는 성령님과 위엄의 보좌 우편에서 이들을 위해 중보하고 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숨결이 아니면 고통에 함몰되어 질식할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무능한 성도로 사는 것인지,권세 능력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된 권세가 언제부터 녹슬어 있는 것인지 가슴만 탑니다 요하난은 이스마엘이 갈대아인을 죽인 연고로 바벨론의 보복이 두려워 미스바로 돌아가지 못하고 애굽으로 가기 위해 모두를 이끌고 베들레헴 근처 게롯김함에 이릅니다.
아버지!
당신의 자비는 헤아릴 수 없사오니 지구 곳곳에 뿌려진 무고한 자들의 피를 흘리게 한 우리들의 죄악을 이제라도 아들의 보혈로 용서하여주옵소서.당신의 자녀된 권세로 주어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