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롬5
"1: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 하느니라"
죄는 하나님과의 단절,곧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긴채 사망과 저주의 상태 아래 살게 합니다. 반면 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 화평을 누리게 하는데 이 의는 율법의 의가 아닌 율법이 말씀하시는 바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친밀하게 지내도록 역사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들의 피만큼 아버지를 알게 하는게 없습니다.
구약에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대속제일에 짐승의 피를 들고 분향의 연기로 채워진 지성소로 들어가 시은좌에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되 즐거움으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십자가의 피로 긍휼함을 받아 그곳에 들어가 서 있는 은혜를 누립니다. 이 은혜는 지금 여기서부터 속죄소,곧 사유하시기를 즐거워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그 즐거운 성품을 받아서 기쁨으로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즐거움이 사유하심에서 창출된다는게 놀랍지 않습니까?
갈보리 산 위 시은좌(십자가)에 좌정하신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보셨습니까? 성경을 읽고 말하고 교리로 익히 아는 것과 우리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그 자리에 실제로 서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완전 신이시면서도 완전 인간으로 오신 나사렛 예수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사 친히 불법자가 되시여 모든 불법을 사할 수 있는 그 영원한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친히 당신 몸으로 든든히 세운 것을 생각하노라면 실로 시시비비의 율법적인 입이 다물어집니다.
그리고 공의로운 심판과 구원이 맞물려 있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유하심과 즐거움이 맞물려 있는 시은좌의 아버지를 알게 됩니다.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히1:9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시 누누이 하신 말씀이 자신은 아무 것도 스스로 말하거나 행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께서 보이시고 들려 주신 것들을 말하고 행하신다고 하셨는데 아들은 분명 지성소 안의 속죄소에 좌정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보고 들으셨을 것입니다.
이십대 초반부터 가장 보고 싶고 만나고픈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성경을 정독해도 성수 주일하며 교회 봉사를 해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목마름이였습니다.
피조물의 한계 안에서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 느껴지는 하나님으론 하나님의 영광이 확연하게 풀어지지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저를 만져주시면 해결될 것 같았습니다.
항상 귀로만 듣는 아브라함과 노아와 모세와 선지자들과 특히 오랜 침묵 후 나타나신 욥의 하나님을 제 피부로, 제 눈으로 만나고 보고 싶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잠8:17)"는 말씀이 정말 믿어졌습니다. 실로 전 그분의 사랑으로 옷을 입고 다니고 싶었습니다. 사랑으로 존재하고 싶었습니다.
기도원에 들어가 전능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6일을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는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완전수 7일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7일째 되었을 때부터 전능하신 여호와의 특별한 능력이 저를 압도하기 시작하여 백 여일 동안 함께 해주셨는데 그 사랑이 오늘까지 저를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때의 감정은 매우 독특했는데 제 스스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였습니다.거룩한 두렴과 황홀한 사랑의 기운이 동시에 저를 장악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때 들려주신 말씀 중 제가 휘청거릴 때마다 정신차리게 해주신 것이 "똑바로 서!!!"였습니다.
특수공수부대원들을 훈련시키듯이 훈련시키시는데 너무 무섭고 두려워 왜 이렇게까지 하시냐고 물으니 "네가 기도했기 때문이다" 라고 하시는 것이였습니다. 똑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려면 손으로 짓지 아니한 하늘의 지성소 시은좌에 들어가 서 있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그 은혜의 누림인 아버지의 영광을 즐거워하는 것으로 힘을 삼을 때 모든 환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환난 당할수록 우리의 모든 죄를 사유하시기를 즐거워 하시는 아버지를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 지독한 고문의 십자가를 마다 않으신 것도 사유하시기를 즐거워 하시는 당신 성품과 충돌하시는 의를 만족시키기 위함이였음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물리적으로 접근하면 금송아지 우상에 빠지거나 그외 여러가지 탐욕에 빠지게 됩니다. 창조주의 엄청난 부요의 화려함과 보좌의 권세와 능력을 아는 것도 좋겠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십자가의 그리스도로 접근할 때 그분께선 가장 즐거워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만나게 된 하나님의 영광만이 우리를 영광에서 영광으로 인도하사 종내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시고 위엄의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의 형상(영광)으로 변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3: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는 인내를,4:인내는 연단을,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일상이 안온 할 때보다 환난 중에 하나님의 영광이신 십자가의 예수를 더 알게 됩니다. 그 예수를 더 알게 되는 즐거움은 그리스도의 성품인 인내를 이루게 합니다. 믿음이 역사함으로 본성에는 없던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데 힘쓰게 됩니다.
모든 환난들은 하나님이시며 인간이신 그리스도보다 크지 않습니다. 복음과 세상은 항상 갈등구조 속에 충돌하며 억압하며 박해합니다. 그니깐 제 안에 복음도 있고 세상도 잔존해 있으면 복음만 남고 세상이 빠져나가는 모든 과정이 환난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환란 속에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는 외부의 상황에도 응답하시지만 우리들 내면의 상황도 응답해 주시는데 마음을 너그럽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음 싸이즈를 넓게(관용),길게(인내),높게(비상),깊게(낮추심) 만들어 주십니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시4:1
이렇듯 인내는 신의 성품에 힘써 참여하는 연단(인격,인정)을 낳고 이 인격은 소망을 낳는데 이 소망은 소망이 이루어 가는 줄 알게 된다 합니다. 무슨 소망을 이루어 간다는 것일까?
"5: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주를 생각하며 힘써 신의 성품에 참여했더니 정말 인내를 이룬 것을 알게 되었듯이 그 외에도 지식,절제,경건,형제우애,사랑을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을 알아 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인 성령을 담보로 주사 육신을 벗는 그 날에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 것이라는 소망에 인쳐 주셨으니 어찌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인 성령이 우리 마음에 부어지니 성령이 십자가의 예수를 증거해줍니다. 제가 연약하여 죄가운데 빠져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이런 저를 위해 죽으셨다고 하십니다
"7: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수많은 증거의 확증이 십자가의 예수입니다.
"9: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0: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카톨릭 성경
그러니 우리가 아직 죄인이였을 때도 십자가에 아들을 죽게 하심으로 확증해 주셨다면 지금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 날 위해 죽어주신 그로 말미암아 죄의 진노에서 구원 받게 되지 않겠느냐?
곧 하나님과 원수였을 때도 그 아들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그가 죽었으나 다시 부활하심은 더 큰 증거요 더 큰 능력이요 더 큰 기쁨이요 더 큰 소망이요 더 큰 위로이니 원수가 쏜 사망도 힘을 잃게 되어 우리가 죽은들 그의 부활 생명으로 다시 살게 되리라는 구원의 확신이 더 크지 않겠느냐
"11: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