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2017년 9월 29일 묵상
로마서8장
9 그러나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은 육신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지배를 받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10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비록 여러분의 몸은 죄로 죽어 있으나 영은 의로 인해서 살아 있는 것입니다
11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영이 여러분 안에 계시면 그리스도를 살리신 그 분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통해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12형제 여러분 우리가 빚진 사람들이지만 육신의 빚을 지고 육신을 따라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13만일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지만 성령님을 통해 육적인 악한 행위를 죽이면 살 것입니다
14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15여러분은 다시 두려워해야 할 종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는 성령을 받았읍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16바로 그 성령님이 우리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거하십니다
17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바로 이때이다 듣는 사람은 살아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자기 속에 생명을 가지신 것처럼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갖게 하셨다"요5:25
"생명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며 인간의 육체는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생명에 관한 것이다"
요6:63
예수님께서는 "내 말은 곧 영이니 내 말을 듣는 자들이 살아나리라"고 공생애시 말씀하셨습니다.그리스도(유일한 중보자 대제사장,메시야,하나님 말씀)를 들음으로 없던 믿음이 생깁니다.이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의로 여기시고 영이신 당신과 화목한 교제를 갖게 하십니다. 아버지와 늘 교제하시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영, 성령님을 믿는 자에게 주십니다
그리하여 성령님께서는 죄로 "죽어 있는 몸"을 살려냅니다.이 때 "죽어 있는 몸"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심판 받아 죽어 장사 지낼 몸입니다.이 몸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에 다시 세우리라" 말씀하신 바 반드시 무너져야 할 육체의 성전입니다
어찌 성전을 허문다말이요? 저항할 사람들도 많고,원인 몰라 두려워할 사람도 많고,하나님이시며 인간이신 예수님께 하나님 무서운 줄도 모른다며 돌질할 사람도 많고.... 그러나 예외없이 다 허물려야 할 사망의 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죽을 몸인 제(우리) 곁에 먼저 오셔서 죄인의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곧 십자가에서 이 죽을 몸을 품고 죽어주셨습니다. 이 믿음이 확고할 수록 역사하는 힘도 강력하여 실로 우리 속에 죄의 법에 무력하게 사로잡혀 가던 사망의 몸(집,옛성전,선악율법체제)이 있다는 것을 발견함과 동시에 예수와 함께 처리되었다는 것도 확신케됩니다
우린 사람이 사망하면 무덤에 매장되는 시체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육체의 현상을 통해 영적 실체를 계시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그분의 눈에는 살아 움직이는 인간들 속에 사망의 몸이 너부러져 있는 것을 보시면서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속량에 관해 엄청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장사지낸 바 되고 다시 부활했다는 것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각하게 되었다면 우린 우리 속에서 무력하게 죄의 법에 사로잡혀 가던 사망의 몸이 심판받게 되고 의에 대하여 다시 살아 나게 되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시되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모든 진리라함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전부를 가리키는 것이니 마땅히 그리하십니다. 우리 안에 죄의 법에 속수무책으로 사로잡혀 가던 사망의 몸이 주와 함께 장사되었다가 주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성도는 또한 주와 함께 승천하여 위엄의 보좌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게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허나 우린 아직 주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 있지는 못합니다. 물론 믿음으로는 앉아 있지만 아직 지상 교회 지체로서 해야 할 일들로 인하여 태반을 서서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과 성결의 영이신 성령님께서는 이렇듯 기여이 주와 함께 우리를 죽게 하시고 주와 함께 우리를 장사지내게 하시고 주와 함께 우리를 부활케하시고 주와 함께 우리를 승천하게 하십니다.
성전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일을 성취하셨으니 누구라서 이런 지혜와 모사를 흉내낼 것이며 고안하실 것입니까?
이렇게 주와 함께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집, 곧 성전으로 지어져 감에는 각 사람의 때와 기한의 주권자이신 아버지의 시간표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전적 믿음으로 전적 수용할 수 밖에 없는 그리스도의 신부된 자세로 살아갑니다. 즉 자기를 부인하고 전적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을 수용하는 것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 속에 마침내 우리 안에 장사지낸 바 사망의 몸이 예수 부활의 몸과 함께 일으킴을 받게 되었음을 알게 될 때, 비로서
장부답게 굳게 서서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다 함은 바로 이를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령님 반 나 반을 두고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다 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아들의 것, 즉 그리스도 예수의 철장 권세를 가지고 나를 지배하십니다. 이 성령님의 지배 아래 견디는게 과연 쉽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우린 환란과 고난을 외부적으로만 주목하려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철저히 내 속에서부터 일어납니다. 외부적으로 사는 건 어차피 고해가 아닙니까? 때문에 인생 고해를 말씀으로 감동 감화케 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철저히 내면화 시키는 작업이 없다면 과연 이 고난이 하나님의 유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영광스러운 고난일까? 질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할 때 우리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을 드러내 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빚진 자는 분명하지만,육신의 빚을 진 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빚을 지면 응당 육신을 따라 살아가게 될 것이고 그 끝은 필경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복음에 빚진자, 하나님 사랑에 빚진 자라고 하십니다
만일 내가 그리스도에게 빚진 것을 육신의 빚으로 알고 육신을 따라 살게 되면 내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것을 자꾸만
육신 체제 속에 길드려진 본토 친척 아비 집의 가치관을 지켜 하나님이 아닌 육체의 사람에게 인정 받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육신 체제 안에는 성령이 아닌 육체의 열심으로 행하는 종교 생활도 포함됩니다. 바울은 자신이야말로 영적이라며 하나님을 믿었지만 그리스도의 개입으로 인해 자신이 얼마나 육신을 따라 하나님을 믿었는지 발견한 자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이 아니면 어찌 이런 말씀을 깨달아 기록할 수 있었을까?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그가 사울에서 바울이 되어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갈 때 그 자신이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지금 내가 잘 가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생기는 순간 그 역시 자기를 확증해 줄 수 있는 그리스도에 관한 전문인이나 서적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추측해봅니다
구약 성경을 통해 왜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일까?를 상고함에 올인할 수 밖에 없었던 바울은 자기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확증함에 로마서를 통하여 오늘날까지 그리스도를 전하며 확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