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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4학년 초봄에 병상에서 죽으면 지옥 갈까 두려워 펼쳐든 것이 창세기였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던 그 때 오직 "태초에"란 그 신비한 말씀 한 마디가 늘 제 심령에서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태초에'의 히브리 원어가 '베레쉬트'이며 그 한 마디에 담긴 의미의 풍성함과 심오함은 복음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는 그 원어의 뿌리가 맏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로부터 유래했던지라 "베레쉬트"를 알아 갈수록 강요가 아닌 자원하는 심령으로 그의 머리에 복종하기 위해 자아를 부인하게 되었습니다.
진실로 인자의 머리 둘 곳이 되어 그의 집(성전)으로 살아 가고픈 소원 하나만 붙들고 살아가나 이 또한 사람의 힘으로 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니 성령님을 부르며 살아갑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마8:20
베->집.
레쉬트->첫째.처음.시작. 태초. 맏물.으뜸. 근본.
레쉬트 기원은 로쉬(머리.우두머리.처음.꼭대기).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십자가를 지신 맏아들의 머리 안에 두셨습니다. 우린 그 모든 것 중의 으뜸을 창조로 생각합니다. 허나 이 창조보다 더 위대한 창조가 맏아들의 중보사역으로 열리게 된 새 하늘과 새 땅 새 사람(생명)의 새창조입니다.살펴보면 창세기의 창조와 요한계시록의 새 창조는 분리되어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함께 맞물려 갑니다
종말의 완성본이 없는 창조의 시작은 우리 하나님께 있을 수 없습니다.또한 그의 시작이 불완전해서 완성을 위한 종말이 필요했던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다만 그의 천지창조와 인간 창조는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되 끝까지 회수하시지 않으심으로써 그의 창조가 처음부터 끝까지 얼마나 완벽한 창조인가를 보여 주고 계십니다. 만일에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지 않았다면 그의 창조는 독선적이지 않으셨을까요?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 사46 : 10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 골1 : 16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으로 우리를 창조하실 때 주신 자유는 얼마든지 당신께 범죄할 개연성을 주십니다. 이로인해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죄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당신의 집으로 삼으실 것을 작정하시고 창조의 포문을 활짝 여십니다. 이 창조의 메뉴얼 속에 구원이란 새창조의 메뉴얼을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듯이 곳곳에 뿌려 놓으셨으나 비유와 이야기로 감추어 놓으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제 눈을 열어 감춰 넣으신 이 구원의 비밀을 보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창세기1장
"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3: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 빛이 하나님 보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라"
모세는 출애굽 성도들에게 여호와가 창조주 하나님을 이심을 선포합니다. 선포의 목적은 예배자로 세우기 위합니다. 알다시피 창조의 끝은 더이상 밤이나 낮이 없는 유한한 시공 저너머 영원한 아버지 집에서 안식을 누리는 예배자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천지창조시대는 물론 홍수사건과 바벨론 사건을 비롯하여 족장시대를 살지 않았음에도 성령 하나님께서 그를 감동케하심으로 창세기를 기록케 하셨습니다. 이를 위하여 모세하고는 대면하여 명백하게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게 하셨다는걸 기억하게 됩니다.(민12:6).
창세기 저자는 가고 없지만 성경의 진짜 저자이신 성령님께서는 지금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장엄한 말씀의 그물을 성경과 그의 남녀종들을 통해 온 땅에 선포하심으로서 사람,사람,사람을 낛아 올리십니다.
지구촌 구석 구석 혼돈과 공허와 끝모를 무의식의 깊은 어둠에 빠져 있는 자들의 의식의 수면 위를 떠나지 않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로 인해 선포된 말씀은 헛되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선포 속에는 머리로 성전을 세우시겠다(베레쉬트)는 하나님의 뜻이 감취어져 있습니다. 3500여년전의 모세는 이 말씀을 선포는 했지만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진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은 셀 수 없이 많은 교회(신부)들이 태어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허나 하나님께서는 창조시부터 없는 것들을 있는 것처럼 부르고 계셨던 것입니다.
윤용하의 "뉘이 부르는 소리 있어 발을 멈춘다"는 보리밭 노래를 부를 때마다 온 땅을 울리며 우리들의 이름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와 주시지 않으면 텅 빈,없음일 뿐인 우리를 있음의 자리로 옮겨 주시기 위해 각인의 이름을 부르시는 아버지의 마음 안에 머물면 수많은 이름들을 부르며 기도하게 됩니다.
이처럼 원시 지구의 모습을 숨김없이 기록해 놓은 것은 그 모습을 통해 하나님 없는 인생의 모습을 깨닫게 하려 하심입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은 형태와 내용과 생명이 없는 그저 바닥 모를 음산한 수심 같다는 말입니다. 놀라운건 여기에 하나님의 영이 암닭이 알을 품듯이 운행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기에 품고 계신 것입니다.
실로 복음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붙잡고 3년이 넘도록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2013년 6월 말에 지금 건물로 이사 온 날부터였습니다. 2010년 12월 초에 화재로 인해 받은 보상금을 외환은행에서 모조리 가져가는 바람에 우리는 무엇으로 이 건물을 수리해야 좋을지 앞이 캄캄했습니다. 외환은행에 몰게지가 많으니 은행은 그리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소방대원들이 화재 진압을 위해 무지막지하게 뿌린 물들이 건물 곳곳에 습하게 배인데다 여기 저기 연기에 끄슬리고 화재에 무너진 천장과 벽들이 너부러져 있는 곳을 날마다 삼층 계단을 오르내리며 직시한다는게 고통 자체였습니다. 2010년 9월 교통사고 휴우증을 안은채 가게에서 온종일 일을 하지 않으면 남편이 건물 수리를 못하니 꼼짝없이 그리 살았던 그때를 생각하면 어떻게 그 시간들을 건너 왔는지 하나님 말씀의 능력에 감사할뿐입니다.
그런 지경인데도 정작으로 제 심령을 가장 무겁게 짓눌렸던 것은 섬기는 교회였습니다. 이런 양심을 성령님께서 아시니 성령님과 함께 대성통곡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허나 분명한 것은 새창조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절 떠나지 않고 품고 계셔서 성부 하나님께 깊은 탄원을 하시니 어찌 아니 응답하시겠습니까?
지금도 공사할게 많으나 봄 같은 계절을 맞이한 교회로 인해 마음에 기쁨을 주신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한 날들을 보냅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45:7
성도들조차 빛과 어둠,평안과 환난을 대치적인 관점으로 보는 이원론적 구도에서 탈피하지 못합니다. 허나 하나님께선 이 모든 대립적인 이원론을 뛰어 너머 통치하시는 절대적 존재임을 혼돈/공허/흑암의 깊음 뿐이였던 지구를 말씀으로 보시기에 좋았더라로 창조하신 걸 통해 확증하셨습니다.
때문에 무슨 일을 만나든지,여러가지 시험 환란 속에서도 기뻐 찬송 기도 감사로 돌파해 나갑니다
말씀의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여 나타납니다.이 빛은 넷째 날에 창조하신 광명체들과는 다른 원리로 비쳐지는 빛(히브리어.오르)으로 물리적인 빛일 수도 있고 진리의 빛,말씀의 빛,생명의 빛,번영의 빛이기도 합니다. 우린 애굽 전지역에 흑암이 깃드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던 고센 땅만 빛이 있었음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빛을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십니다.그리고 빛과 어둠을 나누시곤 빛을 낮이라,어둠을 밤이라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어둠을 보시기에 좋다고 하시지 않으십니다. 왜일까요? 이로써 우리는 여기서의 어둠이 단순히 물리적인 어둠이 아니라 죄성을 뜻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하다면 빛은 성자 예수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어두운데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4:6
그럼에도 빛으로 오신예수님을 어둠이 깨닫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입니다. 이 현상은 인간이 자유의지로 창조주를 거역하는 죄성은 그 지극히 높은 영광의 빛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는 이토록 완벽한 자유였기에 낮과 밤이란 그분의 자연 창조를 통해서도 순종(의)과 불순종(죄)의 행위 너머 은혜로 베푸시는 구원의 새 창조를 보여 주십니다.
저녁이 오고 아침이 오니라는 창조의 패턴은 완전 수인 일곱째 날.복된 날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 그렇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