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1장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인간에게 생육 번성 충만의 복을 주심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곧 땅을 정복하는 것과 바다 물고기와 하늘 새와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땅을 정복하라는 원어 "카바쉬"는 군사 용어입니다.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제 건물 출입문 밑에 예리한 긴 칼날들이 겹겹이 몇줄로 놓여 있는 것이였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극동방송에서 한 청년이 특송을 부르는데 그 찬송이 어찌나 은혜스럽던지 그때 이후부터 그 찬송을 품고 살아서 그런지 오늘날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꿈을 꾸거나 때론 환상들을 보았습니다.
돌아보니 제 인생은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 주옵소서 밤과 아침의 계시로 보여 주사 항상 은혜를 주옵소서"라는 찬송 자체가 아니였나 싶습니다
그 꿈은 어떻해 하면 내가 서있는 이 땅에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할 수 있을까? 25년이 넘도록 이 지역의 악한 영들과 결투하고 있는 저와 또한 늘 저와 함께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하는 동역자에게 낙심치 말고 계속 만유의 주 예수 이름으로 전쟁을 선포하며 믿음으로 살 것을 굳게 다짐하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굳이 카다쉬란 군사용어로 말씀하셨을까? 생각해보면 모세에게 창세기를 쓰게 하신 성령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출애굽 2세들의 사명인 가나안 땅 정복이 어떠한 전쟁인지 너무나 잘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싸우는 여호와의 군대였습니다. 앞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면 가차없이 썪어질 우상과 일월성신을 비롯한 땅의 온갖 것들을 섬기는 일곱족속들을 진멸해야만 합니다.
우린 영원 안에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사 모든 것들을 다스리게 할 목적을 갖고 함께 의논하실 때 인간에게 자유를 주심으로 어떠한 문제가 발생할지,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충분히 검토하신 후 역사의 시간과 공간을 펼치셨다는 것을 얼마든지 유추하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시고 기도하신 것을 묵상해 보면 인류가 실패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요17장)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일,곧 만물을 다스리라고 주신 권세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결과 아무런 죄도 짓지 아니한 피조물까지 허무한 인생들에게 굴복하게 되어 우리와 함께 탄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부께서는 이 만유를 회복시킬 수 있도록 성자께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십니다.그는 위임받은 권세를 갖고 이방 왕처럼 하시지 않고 가장 낮은 곳에서 섬기시며 최후에는 사랑하는 제자들과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피를 십자가에서 흘리심으로 권세의 최고봉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부여하신 일,곧 만민을 다스리라는 권세를 이루기 위해 죽기까지 순종함으로서 성취하셨습니다. 그리곤 당당하게 아버지께 구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당신처럼 당당히 구하라고 당신 이름까지 다 주셨습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17:24
아들은 창세 전부터 아버지의 온갖 행하심을 보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연고로 항상 아버지와 함께 하는 영광을 누렸는데 그 영광을 우리로 보게 해주시라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말씀이신 당신께서 육신이 되어 오사 직접 인생들과 부딪끼며 살아본 결과 인생들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간파하시고 아버지께 간구한 내용입니다.
우린 아버지께서 항상 일하시나 죄로 인해 그 행하시는 일도 못보고 항상 말씀하시나 그 목소리도 못들으니 그저 육신을 좇아 썪어질 이 땅의 영광에 함몰되어 살아 갑니다.
이제 아들은 우릴 위해 죄값을 치르시기 위해 십자가를 질 것이니 아버지께 당당하게 자기의 영광을 우리에게도 보여주라고 간구하십니다
허나 과연 우린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행하시고 말씀하시는 것을 함께 보고 듣게 된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일까요? 아마 우리들 다수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때문에 우린 땅을 정복하라는 원어가 군사용어 "카도쉬"로 기록케 하신 하나님과 모세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땅의 영광을 취하기에 급급한 우리 마음을 단칼에 베어 버리지 않으면,또한 그렇게 죄로 관영한 일곱족속의 유전인자들이 벌레처럼 스멀거리며 우리 마음의 지면을 기어다닐 때마다 군화를 신은 십자가 군병의 발로 짓밟아 죽이지 않으면 썪어질 영광에 정복당하게 됩니다.
29 :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30 :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먹거리는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이지만 땅의 짐승과 하늘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푸른 풀입니다.
사람에게 주신 먹거리와 짐승에게 주신 먹거리가 다른 것을 보며 천지창조속에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숨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먹거리로 주십니다.여기서 씨의 원어는 제라(씨뿌림,씨,정액,약속받은 자손)입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크게 번성하여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창22:18 )"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적의 성문을 차지할 씨는 알다시피 여호와의 약속(말씀)으로 이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 말입니다.
육신의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영의 양식도 주신 분이십니다. 대적의 성문을 차지할 씨 가진 생명 나무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말씀하실 때 그분이 처음으로 주신 비유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였습니다.
농부는 하나님이시고 씨는 말씀이신 아들이고 밭은 우리를 말합니다. 말씀을 관념이나 개념으로 받지 않고 주님 인격으로 받는 자가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31: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다른 날과 다른게 있다면 좋았더라 앞에 (심히)가 있는 것입니다. 이 심히는 비교급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은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로 시작하신 적이 계신데 심히도 그런 의미로 쓰인 것입니다. 그러니깐 하나님께서 진실로 보기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버지!
저도 아버지 보시기에 진실로 좋았더라는 하루 하루를 살게 하소서! 그리 살지 못했던 날들조차 아들의 피를 보시고 보시기 좋았더라고 말씀해 주신 그 사랑 그 은혜에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저도 아들 안에서 아들이 아버지의 행하심을 보고 또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영광임을 진실로 인정하나이다 .성령께서 스승이 되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때 감당할 수 있는 하늘의 힘을 주시옵소서 사랑하고 사랑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