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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야셈:put)9: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2.
10: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렸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 :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3.
15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야나흐:쉬다)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8~17
에덴의 네 강(2)이 창2:8~9절(1)과 창2:15~17절(3)사이에 나옵니다. 이는 에덴의 네 강과 생명나무와 선악지식나무와의 관계가 대단히 밀접할 뿐만이 아니라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표상인 그 사람(하아담)에게도 그러함을 시사해 줍니다.
창세기의 이 장면은 반지의 처음과 끝이 맞물리듯 요한계시록 22장에서 다시 조우하게 됩니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물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지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라"계22:1~5
아멘! 계22:1~5절 말씀을 그대로 베껴 쓰기만 해도 희열이 차오릅니다
1과 3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오시지만 2에서는 나오시지 않습니다. 이는 2가 성령님과 관계를 맺기 때문입니다.
3에서 다시 등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그 사람(하아담)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야나흐) 그것을 경작하며(아바드) 지키게(샤마르)하신 것입니다. 이로써 우린 여호와 하나님과 그 사람은 어떤 양상으로든 서로 교제하는 친밀한 관계라는 걸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분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자유"를 선물로 받는 동시에 "책임"도 받습니다.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으나 무엇을 먹으면 죽는다는 생과 사를 동반한 자유입니다(창2:16~17).
신약에 이르러 사망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로 인해 탄생된 교회 지체들에게 바울이 주신 자유의 대헌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또한 교회 지체들의 자유행사에 관해서도 바울이 주신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10:23~24
이로써 창2:16~17절은 모든 자유의 구심점이며 원동력이 됩니다. 내게 있는 자유를 가지고 생명나무와 관계하느냐? 선악지식나무와 관계하느냐?는 영생과 영벌로 갈라집니다.
이로보건대 그 사람(하아담)은 생명나무 열매를 먹는게 무엇인지, 선악 지식 나무 열매를 먹는게 무엇인지 충분히 습득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생각하면 에덴에서 발원된 하나의 강이 흘러 나와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생명나무와 선악지식나무를 적시며 그곳에서부터 갈라져 사방으로 흐르는 네 강의 근원이 생기려면 그만한 기간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 기간은 그 사람(하아담)에게 생명나무와 선악지식나무를 분별 할 만큼 자라게 했을겁니다.
물론 이런 사고에 얼마든지 반기를 들어도 좋습니다. 가령 그 사람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배우지 않아도 다 알도록 완벽하게 지음 받았다고 주장한다면 그렇습니다. 나도 어릴 땐 그렇게 생각했답니다.하나님을 마치 도깨비 방망이처럼 뭐든지 일순간에 쨔자쟌하고 완성품을 내놓는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전지전능자이시니 가능한 것입니다. 허나 예수님을 통해 알게 되는 아버지 하나님은 의외로 나보다 더 인간적이시되 온 세상 모든 신사들이 품어내는 향기를 다 합해도 그분의 신사적인 향기에 수수억만분의 일도 못미친다는걸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에덴 동산 한가운데 있는 생명나무와 선악지식나무가 그 사람(하아담)의 중심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그 사람(하아담)은 시편1편에 나오는 복 있는 자로 비유된 철마다 잎새는 푸르르며 열매를 맺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간:울타리,보호하다)을 적시고,그 강에 충분히 적셔진 동산으로부터 다시 또 흘러 나와 온 땅에 네 개의 근원이 되었다는 말씀 앞에는 하아담이 있는 에덴 동산이 나오고 그 동산 한가운데 있는 생명나무와 선악지식나무가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의 강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온 땅으로 흘러 가 네 개의 근원이 되었다는 말씀 뒤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사람(하아담)에게 제사장 임무를 부여하셨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샌드위치엔 빵 한 쪽만으로는 부족해 두개가 필요합니다. 빵만 먹으면 영양과 칼로리가 충분치 않으니 좋은 음식 재료를 두 빵 사이에 쏟아지지 않게 넣어 빵과 함께 먹으면 빵과 속재료의 맛이 어떻게 어울려지는지 음미하며 간단히 먹을 수 있습니다.
에덴의 강이 속재료가 되어 빵과 함께 먹었다 함은 생명 나무,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처음과 나중되시며 창조의 근본되심을 성령님께서 증거해 주시지 않으면 영양가도 맛도 없는 그저 그런 밋밋한 말씀을 먹게 된다는 말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른 바 같이 그 배 ( 코일리아 : 가장 깊은 내실 ) 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요7 : 37 ~ 38
어느날 천상에서 이 땅을 두루 다녀온 사단에게 여호와께서 동방의 의인 욥을 내 종이라 부르시며 그가 순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난 자라고 자랑하십니다. 이에 사단이 그가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라며 반문하며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사단은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의 원인을 그 마음의 순전함에 있는게 아니라 그의 풍요로움이 사방으로 흐르며 뻗어 나갈 수 있도록 당신 손으로 친히 산울로 두르사 보호해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의 여호와 경외함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성찰케 하는 천상의 장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설하신 동방에 에덴 동산이야말로 더이상 손 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했으며 또한 경비도 여호와께서 완벽하게 울타리로 두르사 보호하신 곳입니다. 욥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이 거의 완성태였다면 하아담에게 주어진 자연 환경은 진짜 완벽한 완성태입니다.
그러나 그 인간(하아담)에게 주신 자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제사장 임무를 수행해 나가면서 본인 속에 이미 여호와 하나님의 생기로 들어 와 계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발견해 나가는 완성체를 지향해 나갑니다.
특별히 눈여겨 읽어 본 것은 에덴에서 발원한 이 하나의 강이 흘러 처음으로 적신 곳이 동산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산에서부터 갈라져 네 개의 근원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강이 발원한 곳은 에덴이지만 강이 갈라져 사방으로 나뉘어지도록 흐르게 한 곳은 가장 먼저 적셔진 동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큰 기쁨의 하늘보좌로부터 발원한 생수의 강이 처음으로 적시는 곳은 교회입니다.
그리고 생수에 충만히적셔진 교회 지체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그 생수의 솟구치는 에너지를 발산하여 사회를 활기차게 변혁시켜 나갑니다.
이처럼 에덴의 강에 맨처음 적셔진 동산에서부터 사방으로 흘러간 현상을 성전 개념으로 보자면 에덴 동산은 물두멍이 있는 성전 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 성막기구들을 묵상할 때 물두멍만큼은 사이즈를 명하시지 않으신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는 더러움을 씻는 회개의 영,곧 생수가 솟구치면 원근사방으로 흐를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에덴에서 발원한 하나의 강이 동산을 적신 후 네 개로 흘러 들어 가는 곳마다 그 지역의 특성에 따라 물질과 정신의 풍요을 이루며 문명의 꽃이 피면서 동시에 문명의 그늘도 생깁니다. 이는 성령으로 시작했으나 육으로 마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런 상황일 때 성경은 다시한번 교회로 하여금 깨어나도록 재차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사람(하아담)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셨(야나흐:쉬게 하다)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시기 위해 창2:15절을 기록으로 남겨 두십니다.
성경은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을 위해,그가운데서도 특별히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기록되어졌다는 것을 명심하면 그렇게 적용하게 됩니다.
여기서 '이끌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사람(하아담)을 당신께서 정하신 곳에 이르도록 그의 내면과 환경에 깊이 개입하셨다는 것을 암시해 주시는 말입니다.
이는 강요나 강압이 아닌 자유로운 인격체로 교제를 하셨다는 암시입니다. 어쩌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자유로운 소통의 아이콘으로 주신 것이 나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듯 스쳐 지나 갑니다. 이렇게 스치는 것들을 형상화시켜서 부동적 교리로 만들면 사고치는 것입니다.
이 나무는 단수명사로 생명의 말씀을 가리키는 한권의 성경입니다. 알다시피 이 한 권 안에 율법과 복음이 함께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완전한 자유의 인격체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소통하려면 성경이 성령으로 증거하는 바 생명나무 되신 그리스도를 성경을 통해 만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방법으로 만나주시기에 성경을 통해 만나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예외적인 특별한 방법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사람도 궁극적으로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아는 모든 교회와 한 몸을 이루는 지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율법과 복음이 한 권의 책에 담긴 모든 말씀을 어찌 듣는가?는 각자가 삼가 들어야 하겠다는 결연한 영적 긴장감을 죽는 날까지 지녀야 함이 좋습니다. 이런 긴장감을 풀고 살아도 좋을만큼 완성체가 된 자는 지상에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막4:24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8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누가8:18
각각 고유한 하아담으로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왕 같은 제사장이 된 각 성도들에게 창2:15~17절 말씀에서 무엇을 듣는가? 어떻해 듣는가?는 여전히 스스로 삼가 들어야 합니다.
오래 전에 기록된 성경일지라도 모든 말씀은 항상 지금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모든 말씀,즉 통전적인 하나의 열매, 즉 영생으로 들을 수 있는 길은 처음과 나중되시며 창조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먹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모든 생명의 유일한 근원되신 여호와의 말씀을 선악 지식 나무의 열매로 먹게 됩니다. 그 결과 죽은 자를 살려내는 영의 말씀을 갖고도 무수한 교인들을 다시 더 악하게 만들어 유리하는 자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이 현상을 어찌다 회개해야 좋을지 창자가 수백개나 더있으면 좋겠습니다
원어에 보면 모든 나무는 단수 명사입니다. 이 모든 나무(단수)를 구체적으로 풀어준 말씀이 생명나무와 선악 지식 나무라고 하십니다. 우리 생각에는 생명나무 한 그루, 선악 지식 나무 한 그루이니 모두 두 그루 나무로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 복수가 아닌 단수 명사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모든 나무의 열매를 임의로 먹으라 하심은 나무의 열매를 먹되 모든 것으로부터;곧 하나로부터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가 모노게네스입니다. 곧 유일하게 단 한 번,일회적으로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그리스도를 말씀하시는 것이니 그로부터 먹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바울이 살아 계시다면 다음과 같이 선포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그로부터 먹지 않는 자는 저주 받을지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의 중심을 지구로, 지구의 중심을 동방으로부터 에덴으로,에덴의 중심을 동산(간:울타리,보호하다. garden)으로,동산의 중심을 그 사람(하아담)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물론 이 하아담은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아담의 표상이고 에덴 동산은 성전의 표상입니다.이로써 천지창조 일곱날의 프로젝트가 선명하게 이 땅에 드러난 것입니다.
아버지!
대대로 얼키고 설킨 말씀의 실타래를 어찌 풀어야 할지 몇날 몇달이 벌써 몇해가 되었나이다. 도우소서! 모든 교회와 열방의 아버지시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 도울 자는 오직 당신 밖에 없나이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 찬송 영광 돌리며 기도합니다 .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4 :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