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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3장
"11: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벗었으므로 두려워 숨었다는 말은 참회가 아닌 변명에 불과한 말입니다. 벗었음으로 수치와 두렵게 만든 원인은 분명 명령을 어긴 죄이건만 아담은 죄의 결과만을 이야기합니다.
이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내가 먹지 말라는 그 나무로부터 먹었느냐?고 물으심으로서 아담에게 자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원어에는 열매란 말은 없습니다. 영어 성경은 원문에 가깝도록 번역했으나 한글 성경은 카톨릭 성경까지 다 나무의 실과 혹은 열매로 번역했습니다
"Have you eaten from the tree that I commanded yon not to eat from?"NIV
"Did you eat from that tree I told you not to
eat from?"MSG
"Have you eaten from the tree of which I commanded you not to eat?"NRSV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결과를 창출하게 만드는 KEY를 주시는 분이시지 달랑 결과물 몇 개를 주실려고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마치 물고기를 한 통 가득 주시는 분이 아니라 살면서 팔요할 때마다 물고기들을 맘껏 잡을 수 있는 낛시법을 가르쳐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분명하셨습니다.즉 만물의 통치권이 당신 것임에도 사람으로 만물을 다스리며 정복하며 번성케 하실 목적으로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분이 원리는 주시지 않고 현상만 주시길 원하셨을까요?
우리가 만물을 통치,정복,번성함의 Key가 근본 원리라는 것을 알면 더 이상 현상적인 열매에 급급하지 않고 비록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모든 만물의 근본 원리인 말씀에 마음의 시선을 모을 것입니다.
막내 아들이 대학생 시절 기름 값을 타가는 것을 본 어떤 사람이 우릴 배려해 주는 양 울 아들에게 돈 벌면 부모님께 용돈 드리라고 권면의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그러자 아들이 "아뇨,돈 벌어서 다 드릴거라"고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울 자식들은 우리가 늙어 가면서도 여전히 고생한다며 우리 곁에서 머뭅니다.이제 겨우 철들어 가는 자식들도 부모와 함께 하는 존재적인 동행의 무게가 물질의 무게보다 훨 귀한 걸 안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선 얼마나 더 더욱 그러하시겠습니까?
그분께서는 나무란 존재 자체를 주시는 분이시지 달랑 열매만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존재(근원,원인)로부터 먹는 것과 나무(존재)로 인해 파생된 열매로부터 먹는 것은 상당히 다른 것입니다.
만일에 교회가 그리스도로부터 먹지 않고 그분으로 인해 파생된 종교 현상으로서의 표적과 기사와 기적의 열매만 취하여 먹는다면 우린 결단코 진리에 굳게 서지 못합니다. 그 결과 미혹과 거짓과 온갖 사기와 속임수와 주술적인 미신과 종교 활동만이 성행할 것입니다.
"12 :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가 먹지 말라한 나무를 먹었느냐?고 물으시면 "네,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허나 자신의 정곡을 찌르는 여호와 하나님의 질문 앞에서 아담은 고의적으로 방향을 비틀어 말합니다. '내가 언제 여자를 달라고 했습니까? 왜 여자는 만드셔서 나로 곤혹스럽게 만드십니까?' 라고 항변하듯이 말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실상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깊이 생각,배려하셔서 여자를 주셨건만 아담은 현실로 나타난 결과에 근거한 논리를 펼치지만 이왕에 논리를 펼치려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접근한 논리를 펼쳐야 할 것입니다.
본인이 달라 하지 않았는데도 주신 여자로 인해 생긴 일이니 당신 책임이 더 무겁다는 자기 주장으로서의 궤변과 독설이 뿜어 나오기 시작합니다.
어떤 시어머님께서 자신이 원하는대로 잘되면 며느리에게 자기 아들이 했다고 말씀하시다가 무슨 일로 심기가 불편해지시면 자기 아들이란 말대신 네 남편이 힘들게 했다며 며느리한테 책임을 떠맡기십니다.
또 어떤 주부가 말하길 자기 남편이 일이 잘 안풀릴 때마다 네 아버지가 한 일이라며 부인 탓,아버지 하나님 탓으로 돌린다 합니다. 에덴동산의 비극은 이처럼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지금도 버젖이 활동합니다. 영특함과 간교함과 사특함과 궤변과 달변의 지혜로 활동하는 무대가 가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맘 아프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이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다가와 그 비극의 원인을 규명해 주시려고 아담 부부와 대화를 시작하시건만 아담의 완고함에 아직 때가 아니라는 걸 아시고 아담을 통과해 여자에게 다가가 말씀을 건네십니다.
"13 :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자도 아담처럼 책임 소재를 뱀에게 돌립니다. 허나 여자는 자신이 뱀의 꾀임에 속았다는 것에 원통해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원통함을 내치셨다면 그녀에게 뱀을 원수라고 규명해 주셨을까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미혹 당한 네가 잘못이지 왜 뱀 탓이냐 하시지 않고 앗쌀하게 뱀을 여자와 원수되게 하심으로서 여자를 구속사의 중요한 위치로 끌어 올려 주십니다.
여자가 지혜를 동경하다 못해 탐하여 미혹을 당한 편이라면 아담은 여자가 미혹 당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보다 여자를 선택했으니 이는 여자를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물먹인 것이라 하겠습니다.
바울도 죄가 첫아담 한 사람으로부터 들어 왔다고 로마서에 기록했습니다. 여자는 먼저 꾀임을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1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장 1절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뱀은 들짐승으로 만드셨다고 나옵니다.허나 창3:14절에서는 뱀은 들짐승에서 배로 땅을 기어다니는 것이 됩니다. 원어로 들짐승은 '싸데 하이'요,땅에 기어 다니는 것은 '레메트 알 에레츠'입니다.
모든 육축(베헤마)과 모든 짐승(네페쉬 하야)보다 더욱 저주 받아 배로 기어 다니는 것(레메트 알 에레츠)이 되어 종신토록 흙(아파르)을 먹게 됩니다.
베헤마의 뜻은 침묵이며 네페쉬 하야는 호흡하는 모든 혼적 생물로 하나님이 없다 하는 어리석은 사람도 포함됩니다. 근데 이것들이 아담과 이브의 범죄로 인해 저주의 상태가 되었는데 뱀은 이보다 더욱 저주 받게 된 결과 '싸데 하이(들짐승)에서 '레메트 알 에레츠 (땅에 기는 것)'가 되어 취함(구속받지 못함)받지 못한 '흙(아파르)'을 종신토록 먹을거라 합니다.
다음으로 너와 그 여자 사이에,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증오심과 적대심을 일으키게 하시겠다 하십니다. 곧 원수가 되겠다 하십니다.
그런데 이 증오심과 적개심의 극대치가 소멸되는 현장이 바로 갈보리 십자가입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성령의 능력으로 그 여자 안에서 수정되어 그 여자의 몸으로 피흘려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 창조된 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원수도 미움도 친구로 변하고 사랑으로 변합니다.
옛사람이 외부 환경과 타인을 원수시 여겼다면 새 사람은 자기 안에 옛 뱀을 원수시 여겨 자기 혼(자아)을 미워하며, 자기를 부인하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갑니다.
생각에 이 새창조의 일을 그 여자에게 선포할 것 같은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뱀,곧 사단에게 선포해 주십니다. 이는 우리로 사단을 향하여 동일한 담력으로 선포케 하려 하심입니다. 이렇게 선포할 때마다 빼앗긴 통치권을 이미 되돌려 받았음을 믿고 확신하며 철장권세의 그 이름에 의지하여 살게 하려 하심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그리스도는 사단의 머리를 해체시킴으로서 그를 머리 삼고 살아 온 죄인된 인류(여자)를 구원하십니다. 로마서로 말하자면 전남편(사단/생명이 아닌 선악체재로서의 율법)을 해체시킴으로서 과부가 된 인류에게 영원한 남편으로 다가와 손 내미시는 것입니다
이 때 사단은 그리스도를 머리(남편) 삼고 그와 함께 걷는 교회 공동체나 교회 종들이나 성도들의 발을 상하게 만들 것이라 합니다.
발은 활동성으로 발을 상하게 한다는 말은 기동력을 방해함으로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과 생명의 충만함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허나 복음은 옥에 갇혔을때 더욱 더 진보를 이루며 성령의 위로가 더하니 복음의 깊이만큼 성도의 수도 증가됩니다.
또한 선을 행하는 현장에 갈 수 없을 정도로 아프거나 환경과 사람에 매여 있을 때는 있는 처소에서 부르짖어 기도하면 돌파의 영으로 함께 하사 이전보다 더욱 강한 용사로 행군하게 됩니다. 남말이 아니고 제 말입니다.
대립의 각을 세우던 선악 지식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선악 지식에까지 새롭게 변하니 생명을 살리며 공동체를 살리는 아버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생명나무,곧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을 먹지 않은 불순종은 불가피한 현상을 낳을 수 밖에 없는데 그 현상이 들짐승 중 가장 간교한 뱀과 결탁한 혼이 되어 선악을 아는 절대적 지식이 아닌 상대적 지식으로 하나님 같이 되려는 욕구체가 된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되었음에도 남편이 여자를 도와 함께 생명 양식(나무)을 먹지 않음으로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어떻해 생긴 것인지 알 길 없는 여자의 막막함을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 여자의 허전함과 막연한 동경심을 남편보다 사단이 먼저 알고 뱀을 도구로 그녀를 자기 소유로 만들었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류 최대의 위기를 인류 최대의 기회로 만드시기 위해 친히 대화로 풀어 나가시며 뱀을 끄집어 올리사 저주체로 선포해 주십니다.
이렇게 하심으로서 여자는 하나님 같이 되기 위하여 따먹은 선악과로 알게 된 선악 지식이 저주받은 지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야3:17
아버지!
제 안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야 말로 저주 받아 마땅한 뱀독이나이다. 뱀독에 물린 저를 불쌍히 여기사 저주체인 뱀으로 부터 분리시키시고 죄인된 이 몸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하여 주신 것에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