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밤 늦게 청량리역에서 귀가하려면 타야만 하는 마지막 기차를 탔다. 중앙선을 따라가다가, 제가 사는 산골에서 8㎞ 떨어진 게딱지만한 양평군의 양동이라는 역에 서는 무궁화호였다. 외부 페인트가 갈라질 정도로 꽤 오래되었지만, 좌석이 넓어서 앉거나 눕기에 너무나 편안해서 자주 타는 기차다.
한 시간의 여행 동안에 뉴스를 보고 낌짝 놀랐다. 북한이 남한으로 드론 다섯 대를 날렸고, 남한에서 그것들을 격추하기 위해 전투 헬기에서 100발정도 쏘아버렸어도 소용없었다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격추하기 위해 아군 전투기 한 대가 수원 공군부대에서 이륙한 지 몇 분도 안 된 채 추락했었다고….
몇 주일 전부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기초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서, 떼를 이루어서 보내는 이란산 드론들에 관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것들도 격추하기 상당히 어렵다.
그 결과로 지금은 우크라이나인들이 겨울 한가운데서 수돗물도, 전기도, 난방도 없이 살아야 한다. 요즘은 밤마다 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산골 컨테이너 집에서 사는 제가 난방은 물론, 전기도 수돗물도 없이 사는 것이 어찌 가능할까 궁금하다.
1985년 가을에 한국에 왔을 때, 당시 서강대 총장이셨던 고 서인석 신부한테서 배운 첫 번째 속담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는 것이었다. 80년대 초반보다 남한이 기가 막힌 선진국이 되었다 하더라도, 한반도는 예나 지금이나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완충지로서, 대리전 터가 되기가 너무나 쉽다.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특징은 그 안타까운 운명을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언론들이 분명히 인정하지는 않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우크라이나는 나토(NATO)와 러시아의 싸움을 대신하는 본격적인 대리전 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도, 우크라이나인들은 자기 나라가 이렇게까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을 게 확실하다.
낙관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설마의 심리'는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불현듯 남북 관계나 중미 관계가 전쟁이 터질 정도로 복잡해지기만 하면,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해온 수준 높은 물질문명의 혜택들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것이다. 그때가 절대로 오지 않기를 기도하며, 지금 누릴 수 있는 다차원적 편안함을, 늘 고맙다는 듯 깊숙이 끄덕이면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신부님께서 오피니언리더들이 많이 보는 인터넷신문 '최보식의 언론'에 연재하신 글입니다.
www.bosik.kr/news/articleView.html?idxno=90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