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무형 문화재 43호 방짜유기장 이 종 덕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로 66-1( 쌍용리 292번지의1 )
주요경력
•학력
1980년 유한공업 고등학교 기계과 졸업
1999년 유한대학 산업 디자인과(제품 디자인 전공)졸업
2002년 강남대학교 미술 • 산업디자인학부 졸업
2005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금속공예과 졸업
•경력
1979년 (주)삼협 밸브 (청동 유기 공예품제조)실습 및 취업
1985년 안양유기 공예사(방짜 제조)입사
1989년 두리공방(두레산업으로 상호변경) 설립
1994년 제19회 전승공예대전 장려상(방자 놋동이)
1995년 제20회 전승공예대전 입선(방자 좌종)
1996년 제21회 전승공예대전 입선(방자 오첩 외반상기)
1998년 경기 산업 디자인 전람회 대상 수상
1999년 경기 으뜸이 지정(유기제작 부문)
2000년 제1회 경기도 우수 관광 상품 공모전 입선(촛대와 촛불 끄기)
2006년 제31회 전승공예대전 본상(위원장상-방자 칠첩반상기와 상)
2007년 청와대 대통령 전용식기 제작
2008년 전라북도 공예조합 이사
2009년 미국의회 도서관 전통금속 타악기 기증(징, 꽹과리, 바라)
-도서관내 한국관 영구 전시
2009년 벤처기업 지정(2010년 재지정)-방짜유기 제작 기술부문
2010년 전라북도 공예품 경진대회 금상 (방자 파티용 수반)
연혁 및 유래
• 전라북도와의 연관성
주물유기는 인구가 많은 지역 어디나 제조공방이 있었고, 방짜유기는 서울, 평양, 정주, 상주, 경주, 전주, 남원 나주, 등의 큰 도시와 그 외곽에 제조 공방이 있었으며 반방짜 유기는 방짜기능이나 주물기능이 부족한 지역 특히 전라남도 해안 등에서 제작이 이루어졌다. 방짜유기는 평북 정주, 주물유기는 경기도 안성, 반방짜 유기는 전남 순천으로 알려진 것은 1980년 초 중요무형문화재(유기장 77호) 지정 당시 지정된 사람의 출신지를 근거한 것으로 경국대전(공전) 532~534쪽 기록된 내용에 전주와 남원에 유장(유기장) 각 1명을 관청에서 관리하는 공장에 둔 사실은 전라북도에도 유기제작이 성행했음이 증명 된다.
또한, 평민들이 주로 사용했던 주물유기와 달리 방짜유기는 궁궐이나 권세가 있는 양반들이 주로 써왔던 것으로 양반이 많았던 전주와 남원은 방짜유기를 사용하였음은 물론이고, 징과 꽹과리는 방짜로만 만들 수 있는 악기로 소리의 고장인 전라북도에 방짜 제작 공방이 있었음은 당연한 사실이다.
지금은 맥이 끊어진 상태이지만 불과 십 수 년 전에만 해도 전주, 익산(이리유기점)과 김제 금산면 원평리(원평 유기점)등에 그릇과 수저 및 농악기를 생산하던 방짜공방이 있었던 것을 연세 드신 분이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다.
• 입문경위 및 전승 관계
군 제대 후 85년부터 안양유기에 취직 89년 까지 방짜유기 제작관리업무 및 노무 관리를 하고 자립 하여 두리공방(후 두레산업)을 설립 고 박임모옹, 고 박일동옹, 고 곽선재옹, 송광호옹을 직원으로 모시고 방짜유기 기능을 전수받아 현재까지 제작 하고 있다.
특징
국내에서 유일하게 방짜유기 만을 생산하는 공방으로 금속타악기(징, 꽹과리, 무속 징, 바라 등)는 음색이 우수하여 타 공방의 악기보다 고가지만 시장 점유율 80%이상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고, 국립국악원, 김덕수 사물놀이, 진쇠 등 국내 유명한 팀들은 본인이 제작하는 악기를 주문하여 사용하고 있다.
악기는 외부 형태와 각 부위의 두께 조절 및 인장 탄력 상태가 음색을 좌우하는 데 제작 공정 중 그것을 조절하는 기능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릇 역시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아 대통령 전용식기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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