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의 생존법>
예전에 읽었던 체리새우를 쓴 저자의 또 다른 청소년문학 『모범생의 생존법』을 읽었다. '체리새우'가 여중생의 성장 이야기였다면 '모범생의 생존법'은 남자 고등학생의 성장 이야기이다.
방준호는 명문고등학교, 두성고에 수석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그래서 높은 성적의 학생들만 따로 관리하는 두성고의 자습실, '정독실'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시민중학교에서 두성고까지 같이 올라온 방준호의 절친 건우는 정독실 학생 명단에 들지 못했고 그로 인해 둘 사이에 어색함이 감돌았다. 그래도 함께 경쟁률이 높고 학생들의 선망을 받는 유명한 토론 동아리, 코어 지원을 함께 준비하고, 함께 합격하면서 둘은 어색함을 풀었다.
코어에서는 생각도 깊고 똑똑한 동아리회장과 동급생, 보나선배와 유빈이를 만나게 된다. 준호, 건우, 유빈, 보나는 서로 마음이 맞아 함께 다니곤 했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도 찾았고 동아리 활동, 경쟁률 높은 독서실 자리도 꿰차고 있던 준호는 사실 한편으로는 전학을 고민하며 갈등하고 있었다. 준호는 삼촌과 둘이 살고 있었다. 준호의 아빠께서는 암투병으로 시골에 내려가 계셨고 엄마도 마찬가지로 아빠의 간병을 위해 그곳에서 함께 살고 계셨기 때문이다. 너무 열띤 경쟁과 부모님과 떨어져 있다는 외로움이 큰 이유였다.
준호는 모든 학생이 가지고 있는 평범하고 전형적인 갈등들을 고루 겪고 있다. 학업, 가족관계, 우정, 연애 등. 그 안에서 준호는, 튀진 않아도 의미까지 잃지는 않는, 평범하더라도 내 미래는 내가 움직이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책의 스토리 자체는 되게 굴곡 없고 평범했다. 근데 지루하진 않았다. 진짜 그냥 평범한 학생의 일상을 보는 것 같았다.
지루하진 않았지만 나는 준호의 성장 스토리 자체보다는 준호의 평범함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다.
준호는 적당히 가졌는데 적당히 못 가졌고 적당히 채워진 만큼 적당히 부족한 것도 있는 평범한 학생인 것 같다. 준호처럼 적당한 충족과 적당한 결핍을 가지고 있는 것이 평범과 보편인 것 같다. 어떤 부분은 충족되어 있지만 또 다른 어떤 부분은 결핍되어 있는 것. 저저번주에도 결핍과 관련된 글을 썼었어서 나는 충족과 결핍 중 결핍을 더 집중해서 생각하게 됐다.
예쁘다고 아픈 몸이 덜 아파지는 게 아니고, 돈 많다고 나쁜 머리가 좋아지는 게 아닌 것처럼 한 부분에서 충족이 있다고 다른 부분의 결핍이 채워지진 않는다. 그런데 나는 그 사실을 자주 잊곤 하는 것 같다. 나는, 그게 내가 됐든, 남이 됐든, 누군가가 힘들다는 표현을 할 때 그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결핍된 것을 보기 전에 그것과 아무 상관없는 다른 충족되어 있는 것을 보곤 한다.
특히 힘들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안 친한 사람이거나 모르는 사람일 때 더욱 그렇다. 책을 읽거나 tv를 볼 때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해도 정말 누가 봐도 너무 안타까운 사람이 아닌 이상 힘들겠다 하는 공감보다는 자기 입으로 힘들다는 얘기를 하면 민망하지 않나? 하는 생각과 안 힘든 사람도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힘들다는 얘기를 하는 게 민망하지 않나 싶은 생각은 내가 그런 얘기를 할 때 민망해하는 것 때문인 것 같다.
안 힘든 사람도 있나라니. 이 생각은 경솔한 것 같다. 힘들다는데 안힘든 사람이 있고 없고 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힘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냥 오로지 내가 느끼는 각자의 것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고 비교를 제삼자인 내가 해서는 더더욱이 안된다.
동일한 선상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의 결핍과 나의 힘든 부분을 내가 가진 것과 대보고 재고 따질까 봐 굳이 숨길 필요 없다. 물론 항상 힘들다는 얘기만 한다면 나에게도 남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뿐이지만 내가 나의 한 부분을 결핍이라고 생각한다는데 그걸 자기 기준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이 성숙하지 않은 것일 뿐이다.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는 그대로 듣는 것이 가장 건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