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웨이’를 읽으며 떠오르는 희망에 웃었고 ‘말씀 앞에’ 울었다. 성과를 지배하는 ‘바인더의 힘’에 도전을 외치며 ‘노란 화살표’를 따라 산티아고를 정처 없이 걸어 보았다. ‘만화로 배우는 이야기 학교’를 뒷문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헤매며 ‘하박국이 고통을 노래함’ 쯤은 익히 아는 여유로움에 빠졌던 다사다난의 일 년을 보내며,
『아니 벌써 해가 솟았나 창문 밖이 환하게 밝았네』를 읊조려본다.
1년을 마치는 소회(素懷)의 시작은 그야말로 ‘아니 벌써’다.
풍선처럼 가슴 부푼 시작이었다.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한 첫 발표를 하고 맞대면으로 받은 열렬한 박수로 인해 마음은 하늘을 날았지만 적응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감격은 잊을 수가 없다. 못 올 자리에 앉은 듯이 서먹한 자리를 가라 앉혀주는 묘약(妙藥)이 아닌 묘박(妙拍). 중독성이 강했다. 손바닥이 벌게지도록 힘차게 쳐대던 박수소리, 짝!짝!짝!은 격려가 묻어나던 손바닥 응원이었다. 둔함과 뒤쳐짐으로 구성원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00머니’가 될까 노심초사 했던 일, 한 명 두 명 보이지 않고 아스라이 사라지던 회원들의 모습이 못내 아쉬워 잔 끈을 부여잡고 살아남았다. 한 권 두 권 넘기며 느껴지던 무식함에 2G폰인 걸 알게 되었고, 두 가지를 병행하느라 lag의 연속이었다. 중단하려던 갈등을, 멀리서 달려와 주시던 사부님에 대한 고마움에 차마 접지 못하고, 질질거리며 ‘마침 점’에 선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휘감겨온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감히, 책을 여러 권 저술한 유명작가의 사사를 받은 것이 특히나 그렇다. 앞으로의 인생길에 흔치 않은 복록을 누리는 호사를 누렸고 멀고 먼 길 매주 달려와 주심에 온 맘 다해 감사드리고 따르지 못한 둔함에 아쉬움과 죄송함이 크다. 앞으로의 행로에 하나님의 광명한 은총이 차고 넘치시기를 정한수 떠 놓고 빌고 비는 심정으로 기도드린다. 같은 기수로 부족한 ‘줌마’를 부축이신 ‘젊은 피’ 신연, 은성, 재열, 태훈님께 큰절로 감사를 전하고 싶다. ‘시원’과 ‘섭섭’을 같이 챙겨주실 일생에 다시 만날 수 없는 고마운 분들이다. 좋은 일들로 차고 넘치는 일생이 이어지기를 빌어본다. 언제나 돌아보면 그렇듯이 너무 많이 아쉽다. 무식과 이해력부족으로 제자리를 뛴 것 같은 안타까움과 육체적 한계에 발목 잡힘이 그렇다. 무릇, 때가 있는 것이거늘.......
1년이라 해도 같은 1년이 아닌 것을 알게 되어 기쁘다. 십, 이십, 삼십, 사십 대에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1년을 1달과 맞바꿀 정도의 내공이 생겼다. 생의 연수로 인한 기억력, 이해력은 분명 뒤처지지만, 경험이라는 인생 수업료로 지불 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 능력과 달리기의 목표를 1등이 아닌 완주에 두는 것으로 가치의 전환을 이룬 것이다. 책의 줄거리나 예화, 세세한 것을 입력시키려 애쓰던 읽기에서, 작가의 의중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만으로 족함을 얻는 즐거움 또한 알게 되었다. 책읽기의 새로운 맛을 발견했다고나 할까? 새로운 맛을 아는 자는 그 맛을 찾는 일에 게으르지 않을 것이다. 글쓰기 학교를 마치며 바램이 있다면 졸업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쓰는 일은 성실의 연속이다. 부지런한 달음질로 쓰는 자의 본분을 잃지 않으련다.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영원한 재학생으로 살고 싶다. 살면서 얻은 지혜로 인해 재수 삼수가 전혀 두렵지 않으며 영원한 낙제생도 두렵지 않음이다.
그리고, 남편. 남들은 남의 편이지만, 내겐 언제나 내편인, 곁에서 ‘말없음표’로 지켜준 내 사랑 어여쁜 자, 그이에게 넘 감사하고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에 싸여 내 책을 품에 안는 꿈을 대차게 꾸면서 남은 인생을 노저을 것이다. 영원한 낙제생도 용납하며 안착지를 도통 알 수 없는 풍선을 위해 긴 줄 잡아주며 부족한 글을 들어주고 격려해 줄 독자 1호인 사람이 있어 행복하고 감사했다.
2016년 9월 5일 사랑하는 마리아 정 경 숙
첫댓글 다시 봐도 좋으네요^^
마지막에 최고점을 찍으셨습니다. 이 맛깔나는 표현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