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를 팝니다.(보이는 것 안 보이는 것) 변 보 미
나는 꽤 괜찮은 어른이 될거라 믿었다. 별거 아닌 일에도 웃고 울고 그랬던 날들이 느긋하지 못하고 가파른 호흡으로 무표정이 하루의 반을 차지하는 어른이 되었다. 무심히 바라본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은 여전히 나쁘고,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쓰고, 강한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힘을 이기적으로 사용한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많은 것을 무릅쓴 용기로 살아가야하는 세상이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할 것 같다.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가운데 나 홀로 우두커니 머물러 있는 것 같은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툭하고 건드리고 간 마음 속 허기가 오래도 머문다.
맛있는 저녁을 먹자는 사부님의 말 때문이었나. 글밥집에 들어서자마자 맛있는 냄새가 났다. 온기 가득한 집에 들어서는 것 만큼 따뜻한 것은 없다. 음식냄새는 곧 사람냄새라고 한다. 다 함께 둘러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고 저녁밥을 먹었다. 이것은 약속의 시간이다. 후르르 떨어지는 작은 들꽃과 꽃나무는 꽃잎이 흔들리기 시작할 때 추억이랄지, 기억이랄지 하는 과거 시간이 건너오기 시작한다. 꽃잎이 떨어져 사라진 자리는 시큰거리고 욱씬 거리지만 또 한번 봄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그때, 그때가 비로소 내가 지나온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봄이 과거가 될 때 봄이 기적이였음을 알고 그 봄 속에 온밥의 기억을 감사히 묻는다.
누구나 한번쯤 쓰라린 경험을 하거나, 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를 고민하며 실타래처럼 엉킨 고민 속에 빠져 자괴감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늪 같은 생각에 빠지면 무얼해도 무기력하고 의욕도 없고 기회를 놓쳐버릴 수도 있다. 체념한 채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있다면 괜찮다. 주저앉아 있을 때 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눈 앞에 풍경이 된다. 이제 나에게 잠시 숨 고르는 시간을 줄 차례다. 중요한 것은 그 낯선 세계를 향해 내딛는 첫 걸음이다.
사부님은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겁니다. 머라도 쓰세요. 시작이 반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처음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뭐든 처음이 어렵지 일단 한번 시작하고 나면 그것으로 이미 절반이나 해낸 것과 다름없다는 사부님의 격려의 메시지도 담겨 있다. 그러니 우리는 막연함보다 씩씩한 의지와 유연한 마음을 가지면 된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중 일테니 말이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그러기가 힘들다. 내안에 그어 놓은 무수히 많은 금들이 내 삶을 가르는 것에 불쾌해 하면서 나역시 누군가의 삶에 금을 긋는 사람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내 삶은 공간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때로는 선을 넘으며 때로는 선을 흐리며 멋모르고 쓰기 시작한 글쓰기가 무엇이 되지 못한 나에게 아리따움이 되어준다. 사라지지도, 없어지지도, 지워지지도 않는 기억처럼 마음속에 묻고 묻히는 것일 뿐이다.
오늘, 이곳 사람과의 추억을 기억한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훗날 내가 아무관계 없는 타인일지라도 그 사람의 기억 속엔 내가 항상 분주히 기웃거리며 서성일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