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원 론
1. 무한과 영원의 구분
영원(eternity)은 무한(infinity)과 같지 않습니다. 무한은 시간의 흐름 안에 있지만 영원은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입니다. 무한은 시간이 끝이 없이 흘러가지만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 있고 영원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적 흐름이 없습니다. 시간이 무한히 흘러가더라도 과거가 현재가 되고 현재에 의해 미래가 결정되는 인과법칙의 적용을 받지만 영원에는 이러한 시간의 인과법칙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천국에 대하여 흔히 가지고 있는 오해는 죽은 후에 무한의 시간을 다시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단 사람이 죽으면 더 이상 시간의 흐름의 제약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영원에 존재할 것이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택하심과 관련이 있는 문제입니다.
2. 무창조 상태
영원에 대하여 알고자 할 때 창조가 되지 않은 상태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 상태는 하나님께서 자존하시고 스스로 충만하신 상태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 시간과 공간도 함께 창조되고 시작되었음을 믿는지라 창조가 되기 이전, 혹은 그 이전 시기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는 하나님의 자존하심과 작정하심, 그리고 예정이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창세전, 혹은 만세전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창세전, 혹은 만세전이라는 표현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영원을 아득한 무한의 시간의 과거를 생각합니다. 반대로 장차 이루어질 천국의 영생도 무한의 시간의 미래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창조가 되지 않은 상태, 즉 하나님의 영존하심의 상태는 영원의 세계라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영원은 우리의 오늘에도 동일하게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3. 하나님의 영존하심
자존하심은 오직 하나님만 그러하십니다. 그리고 여기에 삼위의 차별이 없습니다. 이는 물론 그 능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자는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나온 존재이니 성자는 시작하신 때가 있다는 논리를 펴기도 하나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영원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소치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영원 자존하심과 그 능력에나 지혜의 모든 면에 차이가 없으시고 오직 아들과 아버지의 특별한 관계성을 나타낼 뿐입니다.
삼위하나님의 다양성은 일체를 이루심으로 스스로 충만하십니다. 그리고 이 충만하심은 또 다른 충만함을 낳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영들을 창조하신 이유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들의 창조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따른 외적 사역의 당연한 존재적 귀결이고 친히 처음과 나중이 되심은 스스로 영존하셔서 모든 것의 처음이 되실 뿐 아니라 우리들의 영들이 있음으로 그 충만하신 속성의 마지막을 그 존재 안에 포함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의 창조는 영원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외적 사역이며 영 또한 영원에 존재합니다. 영원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은 하나님의 내적 사역으로 창조는 외적 사역으로 구분하지만 이는 단지 의미적 순서일 뿐 어떤 시간적 차이를 갖지 않을뿐더러 영의 창조는 영이신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존재적 귀결입니다.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 잠언 8:30-31
4. 하나님의 예정과 자유의지
우리의 영이 있음으로 하나님은 그 충만하신 속성의 처음과 나중이 되시지만 영이 가진 완전함이나 풍성함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좇아 지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 풍성함은 인간의 영에게 주신 자유에 근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 자존하시고 창조주이시고 인간의 영은 창조된 존재이므로 스스로 있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 있음으로 완전하고 풍성함을 갖지만 그 자유의 속성 상 하나님을 떠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고 그 결국은 죽음입니다. 물론 죽은 영은 스스로 다시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므로 이러한 결국도 아신 바 되시고 자유의 행사로 인한 영의 죽음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성자의 연합까지도 하나님의 예정과 사역 안에 포함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자유의지의 문제는 아주 오래된 신학의 논쟁 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개혁주의와 자유주의는 절대로 화합하지 못하고 서로를 비방하게 되었습니다. 종교통합의 마수는 우는 사자와 같이 복음의 진영을 잠식하고 들어오는데 주님의 자녀들은 예정과 자유의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서로 싸우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는 참으로 그럴 법한 것이 모든 것이 다 예정 되어 있다면 자유의지는 더 이상 자유가 아니게 되고 자유의지가 말 그대로 자유라면 하나님의 예정은 의미가 없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참으로 단순한 데서 비롯됩니다. 그것이 영원에 대한 이해입니다. 즉 무한의 시간이 아닌, 시간을 초월한 세계로서의 영원을 이해하면 하나님의 예정과 자유의지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지게 됩니다. 즉 영원의 세계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예정은 시공세계의 시간의 흐름 속에 진행되는 인간의 자유의지의 선택과 전혀 시간적 차이를 갖지 않습니다. 예정은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사건이므로 우리가 어떤 시기에 어떤 결정을 내려도 예정과 자유의지에 의한 결정은 소위 완전한 동시에 발생한 사건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의 현실에서 행하는 어떠한 결정에서도 가장 현명한 나의 선택을 행할 때 거기에 하나님의 주권이 항상 동시에 작용하고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곧 주와 연합하여 하나 된 나의 인격을 이해하는 단초이기도 합니다. 예정은 더 이상 아득한 먼 과거에 발생한 사건이 아닙니다.
5. 구속의 시점
영의 창조와 죽음, 그리고 소생은 모두 영원의 세계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리고 창조와 소생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본디 하나님과 하나 된 존재로서 창조된 영은 또한 오직 하나님과 하나 됨으로서만 소생도 가능하기에 성자 하나님의 연합이 곧 죽은 우리 영의 소생의 근거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영이 죽었기에 다시 살려 놓으신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창조주가 아닌, 창조된 영이 자유 하더라도 죽지 아니하는 존재가 되게 하시는 것은 존재를 바꾸심이지 교육이 아닙니다. 이러한 존재적 변화를 주게 하시는 것이 천지를 창조하신 이유와 목적입니다.
시공의 세계는 비록 그것이 무한의 시간과 무한의 공간으로 되어 있다 하더라도 시공을 초월한 영원의 세계에서는 마치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없는 것과도 같은 데에서 모든 보이는 시간과 공간과 사물들, 거기에는 보이지 아니하는 세계와 영물들까지도 모두 창조되었습니다. 이 모든 현상과 사물들이 그 모든 목적이 다 마쳐지게 되면 영원의 세계에서 없는 것으로 된다 하여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게 됩니다.
구속의 시점과 함께 대두 되는 질문이 ‘영이 창조된 것은 언제인가?’ 하는 것입니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이다, 혹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시점이다. 그리고 그보다 아득한 먼 과거에 하나님 안에 모든 영들이 창조 되어 있다가 사람이 태어날 때 하나씩 배분 된다. 여러 가지 설명들이 있지만 모두 복음적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영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영의 창조와 죽음, 그리고 소생은 영원에서 이루어진 일이므로 시공의 세계에서의 소위 ‘언제’냐 하는 시점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오직 창조는 하나님의 충만하신 속성이 그 외적 사역으로 이루신 것이며 소생 또한 하나님, 즉 성자하나님과의 하나 됨으로 죽은 영이 소생한다는 사실만 사실입니다.
그러나 시공세계를 창조하시고 소멸되는 생명으로 살게 하신 인생이 영의 자유로 인한 죽음 문제를 해결 받게 하는 데는 인생들의 이해와 믿음이 필요하기에 주님과의 연합을 역사적 사건과 연결하여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베드로전서 1:18-19
주께서 죽으시고 무덤에 육체가 묻혀 있던 그 기간에만 주님의 영이 영원의 세계에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두 세계의 연관을 만드신 것은 오직 우리들의 믿음과 이해를 위한 것입니다. 주님의 영이 곧 성자 하나님으로서 영원의 세계에서 죽은 영을 살리시는 것이 위에 언급한 바와 같습니다. 여기에서 반드시 이해해야 할 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의 흐름이 존재하지 아니하는 영원의 세계에서 주께서 죽은 영들을 살리신 것은 역사적으로 주님 이전과 당시의 영들만이 아닌 시간적 미래에 있을 우리들의 영들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영의 소생은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과 주권에 의하지 인간의 말과 상황을 따라 되는 것이 아닌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할 옳은 표현은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고 우리는 오직 말씀을 전할 뿐’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이 능력이 아니라 사실을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참 능력입니다. 그러나 옳은 가르침은 그 능력이 이미 역사하신 사실을 알게 하여 그 사실이 우리의 삶과 인격을 통하여 나타나게 합니다.
첫댓글 아무런 구분없이 영원과 무한의 개념을 혼용하는것이 큰 문제인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