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평이씨 족보는 조선조 인조 11년(1633)에 시조의 17세손이며 함성군(咸城君):장양공(莊襄公) 의 6세손 휘(諱) 득원(得元)의 장남인 휘 운(運)이 주관하여 처음 발간하였으며 한국의 대동보 발간이 보편화된 것이 숙종(1673~1719)초기라고 하면 다른 성씨에 비하여 40여년이나 앞선 일로서 선조들의 혈통을 실증하고 숭조돈목의 정신을 함양하여 씨족의 번영을 기하고자 하는 의지의 발로라고 할 수 있으며 10대 거성의 반열에 자리를 굳히게 한 기반이 된 것이다. 그 취지와 정신이 최초의 족보인 계유초보(癸酉草譜) 서문에 여실히 나타나 있어 이를 알기 쉽게 풀어 싣는다.
함평이씨대동보(咸平李氏大同譜)는 1633년(계유)에 구초보를 시작으로 1988년(무진)까지 11회에 걸쳐 발간하여 오면서 시조를 비롯한 후계들의 낳고 죽고 벼슬을 하고 안하고 묘소는 어디에 있고 배위는 어떠하고 외척들은 어떠하고 하는 내용들을 소목란에 상세히 기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 내용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하여 가보편찬과 발간하는데 주관하고 협력한 선조들의 무한히 노력한 흔적들이 역사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요사이 문명의 이기가 급속도로 발전하여 “컴퓨터 인터넷”에 함평이씨 역사에 대한 여러 가지 옳고 그른 자료(기사)들이 많이 뜨고 있는 현실에서 400여년에 걸쳐 발간된 우리 계보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내용들을 전혀 모르는 종친들에게는 판단의 기준을 제공하고 함평이씨의 올바른 역사를 인식하는 종족들이 되어 세상에 망족이라 칭함을 받은 함평이씨의 영광을 길이 보전하는데 힘쓰는 후손들이 되기를 갈망한다.
▶ 우리 함이 족보 편찬 연혁 ◀
구초보(舊草譜)1 |
인조 11년(1633) |
운(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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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초보(舊草譜)2 |
현종 4년(1663) |
자(滋) |
무진보(戊辰譜) |
숙종 14년(1688) |
적길(迪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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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보(壬戌譜) |
영조 18년(1742) |
윤신(潤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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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보(戊寅譜) |
영조 34년(1758) |
유신(裕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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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보(丁卯譜) |
순조 7년(1807) |
경운(庚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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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축보(癸丑譜) |
철종 4년(1853) |
유중(儒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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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보(丙申譜) |
고종 33년(1896) |
근헌(近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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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보(甲子譜) |
임시정부(1924) |
계조(啓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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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보(丁酉譜) |
이승만대통령(1957) |
재기(載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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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보(戊辰譜) |
노태우대통령(1988) |
계옥(啓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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