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의 시작>
영국 국왕이 교회의 의사 결정권을 가진 수장론을 주장하고 나왔을 때, 개혁파 교회는 교인들의 대표인 당회가 의사 결정권이 있음을 천명하며 국교회가 아닌 장로회 이름을 사용했다.
왕이 수장인 국교회가 아니라, 평신도 대표가 의사결정을 한다는 의미로 장로교라고 불렀다.
John Knox 를 중심한 스코틀랜드 개혁주의가 장로교라는 명칭으로 당회(장로회)를 강조하며 시작한 배경은 교회를 향한 왕권의 의사결정권을 거부하는 신앙의 자유를 천명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개혁교회의 장로회는 왕의 명령을 거부할 각오를 한 사람, 그래서 생명을 건 도망자의 길과 순교를 결단한 사람들이 담당했다.
한국 교회에서도 신사참배가 가득할 때, 목사를 세우고 장로를 피택했다.
그것은 핍박이 일어날 때 교회를 대표해서 먼저 순교하거나 투옥될 사람을 뽑는 것이었다.
그래서 목사 임직식에 축하보다 말 없는 눈물이 많았다.
장로를 선출하는 투표를 할 때 눈물어린 기도가 터졌고, 장로를 임직할 때 같이 울었다고 한다.
장로회와 목사, 시작은 그랬다.
- 금요예배 설교 중에 -
종교개혁의 선조들, 그 시대의 John Knox, Christoper Goodman, Samuel Rutherford 같은 개혁파 목사님들의 관점만 봐도 참 깊은데...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안타깝고 부끄럽고...(송병주목사)
첫댓글 장로교에서 한 가지 좋은 것은 노회나 총회에서 목사의 숫자와 장로의 숫자가 똑 같다는 것인데 실권의 배분은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장로들이 바보인데요. 당회에서 당회장은 투표권도 없고 결정권도 없어야 하는 것인데 어느때부터 그것이 변해서 독재를 구사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당회에서 담임목사, 즉 당회장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때는 단지 찬반 동수일 때 뿐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법도 없어지고 목사 위주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정도껏하면 좋은 데 예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할 것입니다. 장로나 교인들이 바보라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죽어있던 중세의 사제주의보다
폐해가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나라가 독재를 하면 국민이 바보라고 하듯이 목사가 독재하면 교인들이 바보이고 장로는 더 바보라 그렇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