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역지인 캄보디아에서 있었던 일
1995년 10월 31일, 캄보디아 전역의 10여개 교회에서 모인 평신도들 42명을 대상으로 PET 훈련을 시작하였습니다. 학력과 신앙 경력이 서로 다르고 교회 훈련이라고는 받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서 훈련을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삼인조훈련이라는 장점을 이용하여 기도훈련부터 시작하였고, 둘째 날부터는 전도훈련을 실시하고, 둘째 날 오후에는 노방전도를 내 보냈습니다. 다행히 훈련생들의 대부분이 교회 사역의 경험이 있고 전도의 열정이 대단히 높은 사람들이어서 열심히 훈련에 임했으며 전도의 열매도 풍성히 거두는 전도훈련이 되었습니다. 둘째 날 오후 1:30분부터 4:30분까지 3시간 전도하고 돌아와 전도 결과를 보고하는 보고회를 열었습니다.
이 보고회에서 쏨리뷘이라는 40대 초반의 의사 부인은 전도 보고를 하러 나오기 전부터 두 눈이 퉁퉁 부어있었고 보고하러 나와서 단에 서자마자 다시 울음을 터뜨리며 보고를 이어갔습니다. “저는 삼인조로 전도하러 나가서 처음으로 베트남 여인을 만나는 순간, 전도훈련 강사님의 말씀이 떠올랐어요. ‘여러분의 사마리아는 베트남입니다. 베트남 사람을 만나면 그들에게도 전도하세요.’ 라고 하는 말이 귀에 쟁쟁하게 울려왔습니다. 전도 실습 첫날인데 하필이면 우리 캄보디아 사람들과 원수처럼 지내며 길에서 만나도 서로 말도 하지 않는 베트남 여인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하고 망설였지만,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울컥 솟아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저 베트남 사람도 사랑한단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 다가가서, 놀라는 그녀에게 ‘제 이야기 좀 들어 보시겠어요’ 라고 말을 걸었어요. ‘내가 믿는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요.’라고 했을 때, 그녀는 전혀 뜻밖이라는 것처럼 의아해 하는 눈으로 저를 쳐다보면서 자기 남편이 집에 있으니 함께 듣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두 사람을 앞에 놓고 배운 대로 복음을 제시 했어요. 다 외우지도 못했기 때문에 거의 읽다시피 했는데도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가슴이 막 떨렸어요. 처음 전도했는데, 그것도 읽다시피 말씀을 전했는데 베트남 부부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뿐만 아니라, 결신기도를 할 때에는 두 사람 모두 흐느껴 우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눈물이 쏟아져 나중에는 엉엉 울었습니다. 함께 간 동료 전도자 두 사람과 함께 다섯이서 끌어 앉고 한 참 울었어요.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지만, 그 말씀은 실천할 수 없는 말씀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원수처럼 여겨서 만나도 말도 하지 않던 베트남 사람들이 영접하는 것을 보는 순간,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한 것처럼 느껴져 가슴이 메어져 왔습니다. 제 평생 이런 느낌을 가져보기는 처음입니다.”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던 그녀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끝내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4박 5일의 훈련 마지막 날 세족식이 끝난 후 “저도 겸손하신 주님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전도자의 삶을 살겠습니다. ”라고 서약을 했습니다.
이틀 후 싸앙츠놀 마을로 교회개척 실습을 나가는 날이었습니다. 교회개척 장소를 선택할 때, 교회가 없는 곳을 선택하다보니 교회가 없는 싸앙츠놀 마을을 택하게 되었는데, (훈련생 중에 싸앙츠놀 마을이 고향인 사람이 자기 고향에 교회를 개척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기에 그 마을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따라가던 선교사의 얼굴이 좋지 않기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 마을은 크메르루즈군(공산군)이 활동하던 곳이며, 200여만 명의 캄보디아인 대학살을 주도한 폴 포트의 고향이며, 한 때 그가 정부군에 밀려서 도망 다닐 때, 그를 숨겨주었던 마을로서 캄보디아 사람들도 그 마을에 가기를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을에 교회를 개척하러 간다고 하니 두려움이 앞섰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캄보디아인 전도대원 중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가기를 꺼려해서 옥신각신 했지만 설득 끝에 결국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파송된 삼인조 다섯 개 조는 전도를 시작하고, 그룹장은 교회로 사용할만한 집을 물색하던 중, 마당도 넓고 집도 비교적 큰 집이 있어서 일단, “이 집 주인의 마음을 열어주셔서 이 집을 하나님의 교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하고 들어갔습니다. 주인에게, “저희들은 프놈펜에서 이 마을에 교회를 개척하러 왔는데 선생님의 집이 크고 마당이 넓어서 교회로 쓰기에 아주 좋을 것 같아서 들어왔습니다.”라고 했더니 쾌히 승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집이 바로 폴 포트를 숨겨준 악명 높은 그 마을 이장(里長)의 집이었습니다. 오후에 어른 14명과 어린이 39명, 그리고 전도대원 16명까지 모두 합하여 69명이 나무 밑에 둘러 앉아 개척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새로 개척한 교회는 껀뿡껀 뚜읕 교회에서 맡아서 양육하기로 했고, 같은 날 다른 그룹은 뚤꼭 지역에 가서 교회를 개척하여 어른 10명, 어린이 26명, 그리고 전도대원 17명이 함께 모여 개척예배를 드렸습니다.
4박 5일의 훈련이 끝나는 날 개인간증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나와서 자기들이 받은 은혜와 놀라운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 하던 중에, 욷 쏘파라는 20대 중반의 여인은 식구들 모두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자기도 미국에 가려고 수속 중으로 입국비자와 비행기 표까지 받은 상태였습니다. 출국까지 1주일의 시간 여유가 있어서 미국에 가서라도 전도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훈련에 참석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5일 간의 훈련을 받은 후에 간증을 통해서 “저는 미국의 입국 비자를 받아 다음 주에 비행기만 타면 미국에 가게 되었지만, 이제 늦게나마 내가 조국을 위해서 할 일을 찾았습니다.” 라고 하면서 평생을 캄보디아에서 전도자로 헌신할 것을 서약했습니다.
오랜 내전(內戰)으로 헐벗을 만큼 가난한 캄보디아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것은 아마도 천국 다음으로 좋은 곳에 가는 것인데, 그것도 가족들이 모두 가 있는데 홀로 처녀의 몸으로 미국행을 포기한 것입니다. 우리가 6개월 후 다시 캄보디아에 가서 2차 훈련을 실시할 때, 그녀는 전도사가 되어 훈련에 다시 참석하는 것을 보며 매우 기쁘고 반가웠습니다. 캄보디아 1차 훈련 때, 모두 두려워 떨며 교회를 개척한 싸앙츠놀 가정교회에서는 새로 부임한 젊은 전도사가 11명의 젊은 훈련생들을 데리고 전도훈련을 받으러 왔습니다. 이 교회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42명의 평신도 지도자 및 성도들을 훈련한 5일 동안의 단기 훈련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날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놀라운 은혜와 함께하신 능력에 감사 감격할 따름이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경험하면서 처음에 국내 전도를 다니면서 “주님께서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외국 한 나라라도 전도사역으로 섬겨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라고 했던 생각이 변해서 이제 어디든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계속해서 이 PET훈련을 해 나갈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 후로 18개국에서 50여 차례 훈련을 실시하면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했고 방법은 좀더 정리 되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