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태조 유필 그리고 若木 柳氏(약목 유씨)
개성 왕씨 세보 갑신보 수권에 수록된 고려 태조 遺筆(유필)이다.
이 유필이 어떤 과정으로 우리 후손에게 다가왔을까.
高麗 崇義殿史(고려 숭의전사) 遺筆得傳記(유필득전기)에서 그 답을 구할 수 있다.
전사는 연천 숭의전과 관련된 문헌과 아울러 고려의 역사적 문헌을 비중있게 기록하고 있다.
서기 1992년(임신년) 2월 발간되었고 발행인은 前(전) 중앙종친회장을 지내셨던 왕윤국 前 숭의전 참봉이며
편집인은 왕준항 前 숭의전 참봉인데 약목 유씨 재하(柳在河)씨의 공이 컸었다한다.
재하(씨)는 1927년 정묘생이며
호는 해문, 고려 건국 공신 선양회 상무이사를 지내셨고 '고려 왕조사'를 저술한 고려사 학자이기도 하셨다.
관향 '약목'은 경북 칠곡군 약목면 지명에서 기인한다.
재하(씨)는 약목 유씨(문화 류씨 곤산군파)가
고려 21대왕 희종(12세)의 손자인 광평공 혜(14세/?∼1285)의 후손이라 주장한다
고려 성원록에서 자료를 실제 찾아 보면
희종의 5남 5녀 자제중 셋째 아드님 경원공 조(13세)가 광평공의 부친이시다.
25대왕 충렬왕 거(15세)는 어떠한 사유인지 알 길 없지만 매제인 광평공의 재산을 몰수하고 종실에서 추방하였다. 왕실에서 추방됨으로 하여 자손들은 왕씨 성을 쓰지 못하고 광평공의 부인이자 24대왕 원종(14세)의 딸인
함녕 궁주 유씨 성으로 변성하였다.
함녕 궁주는 당시 관례대로 모계 성을 따른 것인데 원종의 3남 2녀중 막내 딸로 삼당숙(9촌)께 족내혼한 관계로
충렬왕에게는 광평공이 막내 매제가 되기도 하고 삼당숙이 되기도 한다.
충렬왕의 부친인 원종에게는
첫 부인 순경 태후 경주 김씨 (강화 가릉의 주인공)와 두번째 부인 경창 왕후 유씨가 있었다.
순경 태후가 충렬왕의 친모이고 나머지 동생들은 경창 왕후 소생이다.
충렬왕은 이복 동생들과 평소 사이가 그렇게 원만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충렬왕 재위 3년차인 1277년 경창 왕후는 폐위되고 서인(평민)이 되어 죽었다고 성원록은 적고있다.
광평공의 종실 추방 사건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약목 유씨는 조선 시대 하양(현, 경산 하양읍) 현감 류병균(문화 류씨)에 의하여
1797년 정사년 문하 류씨에 입보하게 되었고 광평공의 다섯 아들중 네번째 아들 익정을 파조로 삼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약목 유씨는 문화 류씨와는 아무런 혈연 관계가 없다.
그래서 한자로 버들 류(柳)를 쓰지만 유로 읽는다.
(‘성씨 닷컴 약목 유씨 연원’에서 인용)
이런 인연으로 재하(씨)는 개성 왕씨와 연관된 문헌 발간에서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아니한 곳이 없고
하늘 나라에서도 개성왕씨 문중을 염려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전하여 오는 듯 하다.
고려 31대왕 공민왕 21년(홍무 5년)인 1372년, 포은 정몽주 선생께서 중국 원나라 사신으로 가셨다가
驄馬(총마) 벼슬을 하던 유희역을 만났고 유희역의 선조인 유덕양 장군이 고려 개국 2년전인 서기 916년경
(정명 2년/ 정개 3년) 고려 태조께서 태봉국 시중으로 계실 적에 받은 어필이라 하면서
가보로 중히 보관하여 오던 것을 자랑하기에 포은께서 거듭 부탁하여 허락받아 국내로 반입하였다한다.
이태백의 시 두 편중 한 편으로 이태백(701∼762)은 당나라 시인이며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 받는다.
('홍무'는 중국 명나라 초대 황제 주원장 때의 연호이고
'정명'은 중국 5대 10국 시대 후량 나라의 3대이자 마지막 황제인 주우정이 사용한 2번째 연호이다.
'정개'는 후삼국 시대 태봉의 연호로서 궁예는 901년 개국하여 904년 초기 연호를 '무태'라 하였다가
911년 '수덕만세'로 개원하고 3년 후인 914년 '정개로 바꾸었다.)
포은 선생은 이 사실을 후세 고려 신민에게 널리 알리고자 정포은 문집에 수록하였다.
유필이라 함은 태조께서 친히 쓰셨다는 것 자체이지 작품 속 내용과는 무관하다. 내용은 이러하다.
(동림사 전경)
東林送客處(동림송객처) 月出白猿啼(월출백원제)
笑到吳山遠(소도오산원) 何煩過虎溪(하번과호계)
동림에서 손님을 전송하자니 달은 뜨고 흰 원숭이 슬피 우네. 웃음 꽃 피우며 오산 먼 곳에 이르렀으니
어찌 호계를 넘은 것이 번거롭다 하리.
중국 진나라 혜원 법사(대사)는 334년 태어나서 416년 원적한 중국 불교 정토종의 창시자이다.
여산 동림사에 머물면시 30여년간 한번도 사찰을 벗어나지 않았다한다.
이런 사실은 고사 ‘虎溪三笑(호계삼소)’에서 인정된다.
어느 날 ‘귀거래사’ 시로 유명한 도연명과 도사 육수정 두 사람을전송하다가
모르는 사이에 호계를 건너 범의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安居 禁足(안거 금족)의 맹세를 깨뜨렸음을 비로소 깨달아 세 사람이 마주 보며 크게 웃었다는
우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5언 절구이다.
후손이 추측컨대, 태조께서 태봉국 시중 당시 이 시를 화폭에 옮기면서 형제 결의를 맺었던
개국 1등 공신 장절공 신숭겸과 2등 공신 충절공 유금필 그리고 대광 박술희 3인의 우정을
염두에 두신게 아니었을까∼.
위 사진은 중앙 종친회 현 이사이며 숭의전 과거 참봉을 지내셨던 31세 영록 종친께서
태조 유필을 본인의 서체로 다시 화폭에 옮기셨다.
숭의전지 앙암재에 전시되어 있다.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자주 올려주시면 개성왕씨로 사는데 도움되겟내요 ,
숭의전 금년 춘계 대제시
전사관 직무를 원만히
하시느라 노고 많으셨습니다.
제관하시는 분
진정 숭조심이 깊은
종친이십니다.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송악회 회장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