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의전사로 읽는 숭의전감과 참봉 역사
1992년 발간된 고려 숭의전사에는 이조실록에 근거하여 조선 왕실이 전대(前代)
고려 왕실을 어떻게 비하하였는지 기록하고 있다.
숭의전을 지켜 왔던 숭의전감과 참봉 역사(172p∼177p)에서 그 일면을 볼 수
있다. 이제 역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보자.
고려 패망 이후 공양왕의 아우 정양군 왕우는 조선 초기 피바람 속에서도 죽음을 면한 몇 안되는 선조중 한 사람이다. 생명을 부지한 이유는 두 번째 딸이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 신천 강씨(신덕왕후)가 낳은 큰아들 무안 대군 방번과 혼인하여 이성계와 사돈지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혼사 시기가 고려 패망 가까운 때일 것으로 추측된다.
정양군은 교하 노씨 부인 슬하에 순천인 박석명에게 시집간 장녀와 무안 대군에게 시집간 차녀 삼한국 대부인, 3번째 자식 정강군 왕조, 막내 아들 성안군 왕관 등 2남 2녀를 두셨다. 이조 초기 아들들은 부끄럽게도 상장군과 대장군 관직을 이성계로부터 각각 봉해졌다.
같은 시기 조선 태조 원년 1392년 음 8월 7일 정양군은 마전 귀의군(歸義君)에 봉해지고 고려태묘 제사를 받들게 되었다. 5대왕 문종때 비로소 태묘를 숭의전이라 명명한 기록을 보건대 그 이전에는 변변한 사당도 없이 고려 태조의 원찰(망자의 명복을 빌거나 자신의 소원을 빌기위해 건립한 사찰)인 앙암사 한쪽에서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낸 것으로 추측된다.
문헌에 ‘귀의’라는 글귀를 [조선 태조의 옳은 일에 귀순하였다]는 의미로 해석하였는데 치욕스러우나 그것이 생명을 담보 받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1397(태조 6년)년 귀의군이 죽고 1398년(태조 7년) 음 8월 26일 이방원이 일으킨 제1차 왕자의 난 때 두 아들도 죽임을 당하였다.
숭의전사에 관심 내용이 있었다. 왕우의 두 아들이 이조 초기 어머니 성을 따라 노씨로 변성하였고 1397년 왕씨로 복성되었다는 사실이다. 고려 왕족까지도 조선 조정은 죽이거나 강압적으로 변성하게 하였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1451년(문종 1년) 문종은 공주에 숨어 살던 고려 현종의 먼 후손이자 서자인 제우지를 찾아 왕순례로 개명케하고 초대 숭의전 부사(종3품)로 삼고자 하였으나 1452년 음 5월 14일 문종의 승하로 동년 음 7월 2일 단종에 의해 비로소 시행되었다.
조부는 1394년 거제 앞 바다에서 수장된 29세 왕휴로 슬하에 1남2녀를 두었으며 부친은 30세 왕거오(1393∼?) (왕걸우음/이밀충의 누이가 왕휴의 첩이되어 낳은 아들)이다.(개성왕씨세보 갑신보 3권 별보 p994)
문종의 명에 의해 양가 규수와 혼인한 31세 왕순례는 재산을 탐하며 본처를 박대하고 천첩을 사랑한 죄로 4대왕 세조에 의해 부사 임명 7년째 되던 해인 1459년(세조5년) 본부인과 이혼하고 파직 당하나 1463년 4년만에 세조에 의해 복직하고 1485년(성종 16년) 6월, 인생 역전 33년만에 세상을 뜬다. 생을 마쳤을 때 아마 55세 정도 아니었을까.
천첩 슬하 아들인 32세 왕천계 때 이르러 9대왕 성종은 숭의전 최고 관리자를 부사에서 전감(종6품)으로 격하 시켰고
1870년(경오년) 26대왕 고종 때 참봉(종9품/ 최하 관직)으로 또다시 강등되는 아픔을 고려 왕실 후손들은 감수해야 했다.
이러한 조치는 조선 조정이 개성 왕씨 후손들을 그 당시 얼마나 많이 천시하였는지 알 수 있게 하는 한 단면이 아닐까.
초대 숭의전감 왕천계 이후의 숭의전감과 참봉의 역사를 다시 살펴보자.
11대왕 중종때 왕천계의 서자인 33세 왕적이 2대 전감이 되었으나 적자가 없어 천첩의 자손들이 전감직을 두고 서로 다투자 조정에서는 이제 첩의 자식을 더이상 봉사자로 인정하지 아니하였다.
3대 전감은 중종때 안경공파 후손인 19세 왕희 [1496. 10. 20∼1561. 8. 20 ] 선조가,
4대 전감은 종종때 왕희의 손자 21세 왕언장 [1535. 7. 21∼1591. 4. 8] 선조가 잇게 된다.
(주: 왕희의 다섯 자제중 왕언장의 생부가 갑신보[3권 795p]에는 차자인 왕원필
[1518. 6. 7∼1586. 1. 13]로, 숭의전사에는 장자인 왕원보[?∼?]로 다르게 기록되어 있었는데 왕원보 선조에게는 후손이 없었다.)
5대 전감은 종종때 부사공파 병절교위 17세 왕순손의 장자이신 18세 왕훈( ?∼ 1609. 음 8. 20일 졸) 선조,
6대 전감은 병절 교위 장손이신 19세 왕유경 ( ?∼1618년 졸/ 선조 재위시 전감) 선조 등 순차적으로 하여
14대 전감 28세 왕경수(1815. 7. 17∼1900. 1. 14/ 순조 을해생) 선조 때 전감 시대가 끝난다.
유경 선조가 전감시 임진왜란(1592)이 발발하여 네 분 황제의 신주와 16공신 위판(위패) 그리고 제기 등을 묻어 두었으나 다수의 도적이 숭의전을 침범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야밤에 묻었던 신주 등을 다시 파내 다른 곳에 깊이 감추어두었다고 한다
거룩한 숭조심을 420여년이 지난 현세까지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이후 숭의전을 지킨 종의 집에 임시 봉안하였다한다.
그리고 왕재기(1844년생/ 헌종 갑진생) 선조가 초대 참봉의 임무를 다한다.
문화 콘텐츠 닷컴 '암행어사 기록편'에 시선을 끄는 글귀가 있는데 경기 암행어사 이헌영이 마전(현, 연천) 땅에서 겪은 이야기다. 1877년(고종 15년) 음 시월 숭의전 추계 대제시 당시 참봉인 왕사희라는 자가 본관을 기만하여 참봉이 된 것을 초대 참봉 왕재기 선조와 그의 아들이 어사께 사실을 고하고 어사가 밝혀 이듬해 음 7월, 26대왕 고종이 참봉직을 폐하였다는 스토리인데 후일 그는 3대 전감 왕희의 후손으로 규명되었다.
중종조 왕훈 전감으로부터 1961년 왕호종(1892년생/ 고종 임진생) 20대 참봉까지 무려 약 370(?)여년간 동양군 후손 부사공파 연천 문중에서 10명의 전감과 20명의 참봉이 배출되었다.
21대 참봉은 1962년 과천 문중 왕태현(1884년생/ 고종 갑신생)
22대 참봉은 1963년 남양 문중 왕민식(1897년생)
23대 참봉은 1964년 과천 문중 왕명현(1888년생)
24대 참봉은 1964년 과천 문중 왕세현(1901년생)
25대 참봉은 1965년 의령 문중 왕민호(1892년생) 등 선조로 각각 이어졌다.
이후 구례, 모인, 상주, 이천, 의령, 연천, 과천, 남양 문중 후손들이 참봉직을 이어가다 숭의전사 발행 시점전인 1990년 왕윤국 전 종친회장께서 46대 참봉 도임례를 행하셨다.
전사(殿史) 발행 1992년 이후는 중앙 종친회 왕연식(호/ 다휘) 사무국장께서 주신 자료인데 지금은 밤 하늘의 별이 되신 왕제구 전 사무국장의 파일 속 내용이라한다.
참봉 재임 기간이 1년에서 2년간 이셨고 아쉬운 점은 참봉되시는 분이 어느 문중이신지 기록되어 있지 않아 후손이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47대 참봉은 의령 문중 병사공파 종친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신 29세 왕일호 종친께서 1992년도에 도임례를 행하셨다.
이후 참봉 명단은 아래와 같다.
48대 왕제형
49대 왕제묵
50대 왕관식
51대 왕교수
52대 왕영창
53대 왕형식
54대 왕민수
55대 왕제흥
56대 왕영돈
57대 왕영천
58대 왕공환
59대 왕제옥
60대 왕제빈
61대 참봉(전감)은 금년 4월 30일자로 성균관 부관장에 취임하신 중앙 종친회
왕윤현 현 회장
62대 참봉은 건설경제신문 대기자와 연천군 3대 군의원을 지내신 왕영록
63대 참봉은 중앙 종친회 현 부회장이자 의령 문중 원로 고문이신 왕수헌
64대 참봉은 금년 1월 9일 별세하신 중앙 종친회 전임 사무국장 왕제구
65대 참봉은 풍수 지리와 예절에 밝으신 중앙종친회 현 수석 부회장 왕남철
66대 참봉은 중앙 종친회 현 이사 왕제하
67대 참봉은 중앙 종친회 현 이사 왕정사 등 종친 순으로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주: 참봉 대수는 숭의전사에 기록되어 있는 숭의전 부사와 역대 숭의전감을 별도로 하여 후손이 임의로 정하였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중앙 종친회 자료 [홍릉 참봉록]을 추가한다.
1989년 초대 참봉 왕남정(王南柾) 종친은 1922년 임술생이며 성균관 전학을 지내셨고 태인 문중 후손이다.
(주: 성균관 직제에서 전학(典學)은 교육과 학문을, 의례에 관한 사항은 전의(典儀)가 소관한다고 한다.)
2대 1991년 왕종배
3대 1992년 왕남철
4대 2001년 왕상정
5대 2003년 왕윤홍
6대 2005년 왕윤현
7대 2007년 왕석린
8대 2009년 왕동출
9대 2014년 왕철수
10대 2018년 중앙 종친회 현 감사 왕재석 종친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려 태조 30세 후손 왕 경 수
첫댓글 감사합니다 중요한 건 족보 발간 때마다 미흡 한것을 느낍니다 우선 몇세손 을 몰라요 33세가 31세로
우리는 몇대손이 아니라 신성황제의 후손으로 세손입니다 일가님은 세손의 의미를 아시는 군요
어렸을때 할아버지 께서 장손이라 전한 말씀을 지키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개성왕씨
만이라도 지난 역사를 바로 알고자 노력하고 살고십습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뵐날이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사람답게 사는게 무척 힘들군요 감사랍니다.
고려숭의전사 왕준항 편집인
고려숭의전사 발행에 많은 자료를 제공한 문화류씨 곤산군파 류재하씨는 본인이 고려 희종의 손자인 광평공 혜의 후손이니 개성왕씨 후손이라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