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작가 과달루페 네텔의 소설. 2023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가 되면서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인 여성의 임신과 출산, 비혼과 모성, 양육의 책임 같은 것을 전면으로 다루고 있다. 여성이 남성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 임신과 출산을 하는 존재라는 것일텐데 이는 자의에 의해 기피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원치 않아도, 혹은 강제적 관계로 이루어질 수도 있는 일이어서 이것이 여성에겐 '운명'이라는 말과 동의어이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이라면 출산을 해야한다는 인류 전통의 규약에 맞서 출산하지 않을 권리, 양육하지 않을 권리를 내세운지는 오래지 않았고 지금도 여전히 출산하지 않는 여성은 의무를 다하지 않는 여성으로 가족내에서 또 사회적으로 집단적 비난에 노출되어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인종이나 종교를 불문하고 과거에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가장 원초적이며 보편적인 집단적 사고라고 보인다.
주인공 라우라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비혼 여성으로, 출산과 육아를 거부한다. 그에 대한 적극적 태도로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불임수술을 받는다. 이때문에 정서적 안정감을 주던 애인과도 헤어지게 되고 고향으로 돌아와 프리랜서로 싱글의 삶을 산다.
어릴 때부터 절친인 알리나는 반대로 아이를 갖고 싶어 시험관 시술까지 받는 등 적극적으로 임신을 갈망하고 결국 뒤늦게 아이를 갖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임신 말기에 뱃속 아이가 기형일 수 있고, 태어나자마자 죽게 될 거라는 진단을 받는다. 태어나자마자 죽을 아이를 위해 두 달 동안 더 임신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최악의 상황속에 아기에 대한 애도와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라우라는 임신한 친구의 곁을 돌보며 임신과 출산, 여성의 몸과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한편으로 라우라의 옆집 여성 도리스가 있다. 폭력적이던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안전하지 못한 사회에 트라우마를 갖게 된 엄마 도리스는 아들을 데리고 가장 안전할 것으로 여겨지는 도시, 아파트로 이사를 와서 폐쇄적인 삶을 산다. 그런 엄마를 향해 열살 된 아들은 쌍욕을 하고 소리를 질러대고 폭력적 태도를 취하지만 엄마의 폐쇄성은 고쳐지지 않고 무력한 모습으로 살아갈 뿐이다. 라우라는 견디다 못해 옆집에 참견을 하게 되고 이들 모자의 삶에 개입하게 된다.
아이를 싫어하고, 책임질 수 없다면 낳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불임수술까지 받았던 라우라가 장애아동을 임신하고 출산하고 돌보게 된 절친, 상처받은 이웃집 여자와 소년의 삶을 들여다보며 여성의 삶과 임신, 출산, 육아와 가족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어쩌면 삶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성장하게 되는 과정이 소설이 주요 서사다.
읽어가다 보면 우리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만나게 된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낳은 자녀라는 전통적 공식이 깨진 자리에 우정과 애정, 돌봄과 연대로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간다는 이야기는 최근 드라마나 영화, 그림책과 청소년 동화에서조차 주요한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그만큼 세상은 복잡해지고 가족 이데올로기는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그러나 소설은 그런 목적의식을 담고 메시지 과잉이나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각각의 다른 욕구와 다른 삶을 보여주면서 그 인물들이 따뜻한 연대 속에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는 것을 그리고 있어서 따뜻하다. 옳고 그른 것은 없고, 단지 이해와 우정, 돌봄과 연대가 있는 세상. 그것이 여성적인 것이며 그것이 새 세상을 만든다.
주인공 아기의 이름인 '이네스'는 17세기 멕시코의 페미니스트 시인 '소르 후아나 이네스 데 라 크루스'에서 따왔다. 아메리카 최초의 페미니스트이자 남자들과 신학 논쟁을 벌이다 종교재판을 받고 침묵 서약을 해야 했던, 스스로는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여자'라 칭했던 이라 한다.
잠든 아기를 바라본다는 것은 인간 존재의 취약함을 응시하는 것이다. 아기의 부드럽고 평화로운 숨소리를 듣고 있으면 평온함과 경외감이 교차한다. 내 눈앞의 아기를 바라본다. 아기의 느긋하고 말캉한 얼굴과 젖이 흘러내리고 있는 한쪽 입꼬리, 완벽한 눈꺼풀을. 그리고 매일 세상의 모든 요람에서 잠들어 있는 아이들 중 하나가 생을 마감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마치 우주에서 밤의 어둠을 밝히고 있는 수많은 별들 사이로 사그라드는 하나의 별처럼 소리 없이 숨을 거두고, 가까운 가족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의 혼란도 야기하지 않는다.
아기의 어머니는 평생토록 슬퍼할 것이며, 가끔은 아버지도 그럴 것이다. 남들은 놀랍도록 쉽게 체념하며 그 죽음을 받아들인다. 갓난아기의 죽음은 너무 흔하여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지만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이 존재의 아름다움에 닿았던 사람이 어떻게 그 죽음을 받아들인단 말인가. 녹색 잠옷에 폭 싸인 채 잠든 아기의 온전히 자유로운 몸과 조그맣고 하얀 베개 위에 옆으로 눕혀진 머리를 보며, 나는 기원한다.
아기가 계속 살아가기를,
그 무엇도 아기의 잠을, 아니 삶을 방해하지 않기를.
세상의 모든 위험이 그에게서 멀어지고 재앙의 광풍이 남기는 파괴의 발자국이
그를 피해가기를.
"내가 같이 있는 한 네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아기에게 약속한다.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사실 나는 아기와 다를 바 없이 너무나 무력하고 취약하니까.
책의 도입부, 첫 부분이 좋아서 옮겨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