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는 그에게 해 주는 불교에 대한 이야기는 모든 불교인들의 믿음을 대변하는 것일 수 없다. 불교도 워낙 다양한 가르침들이 있어서 불교의 믿음을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
불교만 그런가? 기독교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 나에게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상상하는 천국에 대하여 단순하게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내가 어떻게 보고 있느냐가 나에게 중요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불경은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한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을
제자들이 들었다. 같은 가르침을 들었는데 이 제자는 이렇게 들었고 저 제자는 저렇게 들었다는 것이다. 불경은
팔만사천대장경이다. 팔만사천은 숫자의 개념이 아니라 무한대의 개념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전해지기는 했지만 각자 다르게
해석하고 경을 만들어내었기 때문에 팔만사천대장경이 된 것이다.
기독교도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은 많아도 다들 자신의 입장에서 그 말씀을 해석했기 때문에 장로교회도 생겨났고 감리 교회도 생겨났다. 그 다양성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들의 다양성을 칭찬하면서 나 자신에게도 하나니의 말씀에 대하여 독자적인 해석을 낼 수 있느냐를 스스로
묻는다.
나는 모든 종교인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의 '여시아문'을 말할 수 있는가? 당신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알아 들었는가?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여 진실하게 수년을 매진하지 않으면 노련한 사람이 될 수 없다. 프로, 직업적인 사람이 되려면 자신의 일에 수년을 매진해야 한다.
의사도 대학교를 나와서 곧장 의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인턴 과정,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서 정식 의사가 되는 것이다. 그 수련
기간 동안 하게 되는 것은 실수와 실패이다.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면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조금 씩 깨닫게 되고
프로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