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예전에 내가 클
때는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따귀를 때리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나도 그렇게 맞고 자랐기 때문에, 청년 때 교회에서 교사를
하면서 여자 아이에게 뺨을 때린 적이 있다. 물론 나는 그를 훈육하기 위해서 따귀를 때려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뺨을 때리면 그
수치스러운 기억이 오래 남아서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 후 시간이 흐른 뒤에 나는 여자 아이의
뺨을 때렸던 것에을 깊이 뉘우치게 되었다. 지금도 그 아이가 그 일을 기억하면서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을까
생각한다. 그 아이를 만나면 지금이라도 사죄를 하여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해 주고 싶다. 당연히 그 아이는 지금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 아이는 교회 선생님이었던 나에게 뺨을 맞은 것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 때 당시 수치심을 느끼고 많이 울었기 때문이다. 뺨을 때리고 인격을 무시하면서 그것을 교육을 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미화하는 것은 지난 세대에 있었던 일로 족하다. 지금의 세대와 앞으로 오는 세대에는 절대 사람을 업신여기는 행동은
안된다. 아무리 나이가 어린 사람을 대하더라도 사람을 대할 때는 존경심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업신여기면서 함부로 반말을 한다거나 무시하거나 부당하게 대우하면 안된다. 우리가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수치심을 주게 되면,
그들은 자기들의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대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상대방에 대하여 무례히 대하지 않는다.
나는 자동차 학원에서 수강생들에게 운전을 가르칠 때 사람을 업신여기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다. 그런데
때로는 나이가 어린 학생을 가르칠 때나 운전을 빨리 못 배우는 수강생을 가르칠 때나 혹은 외국에서 돈을 벌러 와서 한국어가 몹시
서툰 수강생들을 가르칠 때는 반말이나, 무시하는 말, 업신여기는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올 때도 있다. 내가 그들보다 운전을 하는 데
있어서 우위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해도 운전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운전을 잘 못하는 사람들의 인격까지 무시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