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술관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작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서 있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림에 흥미나 관심이 없고 그림을 제대로 그려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가끔 미술관 관람을 갈 일이 생긴다. 그러나 미술관에서 그림들 앞에 서서 그것을 구경하고 있어야 한다면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괴로울 것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피카소 같은 사람들이 그린 그림이다. 그 정도의 그림이야 나도 그릴 수 있어 보인다. 어린 애들이 도화지에 장난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을 나에게 보여 준다고 해도 나는 아무런 느낌을 받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누드 그림에는 아주 잠깐 동안 눈이 휘둥그레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림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한 작품 앞에서도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오랜 시간 동안 감상한다. 한 장의 그림 앞에서 턱을 괴고 서서 깊이 생각한다. 그리고 작가가 그림을 통하여 말하고 하는 것을 읽어낸다.
새벽에 나가보면 증평 시내 안에 편의점 앞에서 술에 취에 널부러져 있는 사람들을 가끔 발견한다. 그 사람들을 챙겨야 하는 경찰관들이 고생을 많이 한다. 사람이 술에 취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술에 취해서는 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을 즐기지 않고 취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 문화가 잘 못 되어 있다. 술을 취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술을 먹는 모습을 보니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화를 하거나 안주 먹을 생각도 없이 연거푸 술잔을 들이킨다. 그리고 취해야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술에 취하면 이 아름다운 세상을 즐기지 못한다. 제대로 그림을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행복은 찾아오듯, 술 취하거나 잘못된 생각에 몰두하지 않고 이 세상을 제대로 보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은 세상에 대하여 뜨거운 감동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세상에 대하여 어떤 감동도 느끼지 못한다. 세상을 사는 것은 보물찾기하는 것과 같다. 우리의 삶속에 귀한 보물이 숨겨져 있는데, 어떤 사람은 그것을 들추어내어 즐기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들추어내지 못해서 불행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은 태어남과 죽음이다. 태어나는 것도 아름답지만, 죽음도 아름답다. 봄은 태어남의 계절이고 가을은 죽음의 계절이다. 봄은 아름답다. 어린아이의 살결과 같이 연두색 잎이 돋아난다. 온 세상이 연두색으로 변한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여름 내내 푸르렀던 나뭇잎들이 빨갛고 노랗게 변한다. 변하면서 가을볕에 점차적으로 말라가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가을은 축제의 계절이 되는 것 같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아름답지만 죽는 것은 더 아름답다. 잘 태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름다운 죽음은 그 자체가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