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월피정 자료
4월 월피정 묵상자료는 세계 베네딕도회 총연합회의 그레고리 폴란 수석 아빠스님께서 2021년 3월에 보내신 편지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우리는 코로나 확산으로 불확실한 이 시간들을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우리가 부활을 향한 길로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어려운 시간의 한 가운데에서 백신의 전 세계 보급과 함께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이때에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에 감사드리며, 치유를 위한 백신이 정당하고 올바르게 배분되도록 기도합니다. 우리가 이제 이전의 생활방식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합니다. 앞으로 우리 삶의 일상을 이끌어 갈 새로운 가치관은 인내심, 현실적인 지혜와 영성적인 통찰력, 희생,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한 너그러운 봉사, 그리고 서로에 대한 깊은 배려를 통해서만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제 마음속에 떠오른 영적인 상념을 묵상자료로 소개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마지막 담론(Last Discourse)’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마라”(14,27)
그리스어 번역본에 의하면 이 짧은 말씀은 그 분이 제자들에게 남기는 중요한 선물과 같은 말씀입니다. 그리고 신적인 요소가 담긴 유언과 같은 의미심장한 어떤 것이 담겨있다는 것을 직감 하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평화를 분노, 갈등 혹은 걱정의 부재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은 평화(샬롬)가 한 인격체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 즉 몸과 마음과 영혼이 연계되어 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때는 압바(Abba)라고 부르는 한 분뿐이신 분에게 자신을 부활 제물로 바치기로 한 바로 그 즈음 이었습니다. 자신을 완전하게 바치는 봉헌이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평화는 단순한 평화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강조한‘내 평화’임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다가오고 있는 미션- 즉‘부활을 위한 자신의 봉헌’- 에 제자들이 참여하게 될 것이므로‘내 평화’는 더욱 깊고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활을 살아가는 삶의 한 가운데서 경험하는 평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바치는 순간에 선물로써 찾아오는 평화, 자신을 향한 위협이 축복으로 바뀌는 그 순간에 찾아오는 평화. 그리고 이 특별한 평화는 고뇌와 고통의 한 가운데서 기쁨과 내적 위로 그리고 강인함을 가져다줍니다. 같은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말씀보다도 간결하고 강하게 표현 하십니다.‘두려워하지 마라.’예수님께서 당신의 과월절(Passover)을 준비하시면서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영적인 삶을 선물로 주십니다.‘두려워하지 마라.’
눈앞에 전개되는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이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영광과 승리와 평화로 가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조상들이 남긴 값지고 풍요로운 구약의 전통에서 혹은 시편의 비탄(lament)을 통하여 예수님은 이것을 깨달으셨을까요? 저는 그렇다고 믿습니다. 시편 애가의 비탄을 읽으며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삶이 어두움의 한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느님은 우리가 이 지독한 고통스러운 날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보살피신다는 믿음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불러일으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신비스럽고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길을 우리가 찾아 나서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이 그 당시 지도자들에게 얼마나 큰 위협이 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군중들이 그를 열렬히 따랐는지를 확실히 알고 계셨을 것 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다음 몇 주간 혹은 몇 달 혹은 몇 년이 될 수도 있는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용기를 실어주시는 이유입니다. 경제, 사회, 국가를 다시 바르게 세우는 것은 시간과 노력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충실성을 지킨다면 때가 왔을 때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이 글이 베네딕도회 형제, 자매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부활의 삶은 대단한 용기와 신앙을 요구하며 그 열매는 이미 우리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주는 평화는‘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고 강조하십니다. 다시 말하자면 편안하고 어떤 성취감에서 생기는 즉각적인 느낌의 평화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값을 치루지 않고 거저 오는 것이 아닙니다. 앞에 펼쳐지는 하느님의 계획에 온전히 자신을 맡김으로써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도미니코회 쥬드 쟈렛(Fr.Jude Jarrett)신부님은 이 성서 구절에 아주 잘 어울리는 표현을 쓰시며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예수님을 따름에서 오는 평화는 그 값을 치르고 옵니다. 그 분 곁에 머물며 신뢰하고, 그 분의 길이 영광에 이르는 독특한 구원의 길임을 믿는 것입니다.”이 평화를 찾기 위해 값을 치르면, 언제라도 영원한 생명으로 보상하시는 하느님의 선물인 희망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성 베네딕도의 규칙서 제4장‘착한 일의 도구들은 무엇인가’의 결론은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 절대로 실망하지 말라(4,74)’입니다. 이것은 요한복음의 말씀과도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는 사탕발림과 같은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십니다. 진실되게 견뎌내며, 힘든 시간을 통하여 하느님 뜻이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을 가지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겪는 이 모든어려움은 우리 실존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그분의 독특한 표현인, 평화 안에서 어떻게 끝이 날까요? 이 평화가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은 하느님 계획의 하나이기 때문에, 이것 또한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그 분의 시간 안에서 이루어 질 것이며, 이 모든 것은 우리 영혼을 위한 것임을 우리가 깨닫도록 하실 것 입니다.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결과를 즉시 알아야 하며 필요충족이 동시에 채워져서 만족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영성적인 삶은 그렇게 자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원하시는 때에, 하느님 계획의 지혜로움으로, 신성한 은총이 불가사의한 기적을 우리 안에 만들어내며, 완벽하게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상의 완벽한 손길에 의한 것입니다. (자료정리: 양 리오바 수녀)
<묵상나눔>
코로나 19 펜데믹의 위협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있습니까?
코로나 19 펜데믹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 동안 숨어있던 진실들 -생태파괴, 극단적 이기주의, 물질주의, 소비주의, 신자유주의등- 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들은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됩니까?
미래를 바라보며 수도자인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길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