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쇄신회·월피정 자료
【성규 머리말】 정독 Ⅱ
하느님의 일꾼, 빠스카의 훈련생
성 베네딕도는 수도생활을 시작하려는 사람이‘참으로 하느님을 찾는지’(성규58,7)를 본다고 하십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찾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성인은 머리말에서 하느님께서도 사람을 찾는다고 호소하십니다:“주님께서 당신 일꾼을 찾으신다”(머리말, 14)
1. 여기에 제가 있습니다.
성인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꾼 operarius를 찾는다고 합니다. 라틴어 operarius는 그야말로 손노동을 하는 사람, 투박하고 거친 재료들을 자르고, 깎고, 조각하고, 갈고, 정련하는 작업을 하는 기술자들을 말합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작업을 하기 위해 수도자를 찾습니다. 이 작업의 대상은 아마도 한 수도자의 영혼, 그 자신일 것입니다. 재료가 어떠한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일그러진 바위에서, 아주 작은 단단한 덩어리에서도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을 그분께서 손을 대시도록 내어드리기만 한다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은총의 기술자들’,‘영혼의 예술가들’로 만드실 것입니다.
“만일 네가 이 말씀을 듣고 ‘저로소이다’하고 대답한다면.”이어지는 머리말 16절의 대답은 성경의 표현대로‘저 여기 있습니다’로 옮길 수 있습니다. 베네딕도는 이 표현을 18절에 주님 스스로에게 인용하면서 다시 사용합니다:“너희가 나를 찾아 부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나 여기 있노라’고 말할 것이다.”수도승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 그리고 주님 스스로 당신의 입으로 응답하시는 것 사이에 성인은 시편 34편을 인용하면서 17절을 배치합니다:“만일 네가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원하거든, 네 혀는 악을 삼가고 네 입술은 간교한 말을 하지 말라. 사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며, 평화를 찾아서 뒤따라가라.”즉 수도성소의 여정과 주님의 응답 사이는 ‘행하지 않는 것’과 ‘행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즉, 간교한 말과 악과 거짓을 하지 않는 것 그리고 선을 행하고 찾아서 뒤따라가는 것. 베네딕도는 수도자가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무엇보다도 선(善)의 실천을 통해 삶의 진정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2. 선한 행동과 선한 말
이어지는 머리말의 구절에서 성인은 수도생활의 본질적인 것, 즉 우리의 행동과 말이 복음에 맞게 진보하는 것이 수도생활임을 시편 15편의 인용으로 다시 구체적으로 설명하십니다: “그는 허물없이 걸어가며 의를 하는 사람, 마음 속에 진리를 품은 사람이다. 그는 제 혀로 모함하지 않는 사람, 제 이웃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않는 사람, 제 이웃에 대한 모욕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다.”(머리말, 25-27)
선하게 행동하는 것에 대해서 베네딕도는 머리말의 많은 부분에서 반복(17;21;22;33;35;43)하시고, 선한 행동을 통해서 자신에 대해 또 다른 사람에 대해 선한 말이 나올 수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진정한 선을 찾아서 행동한다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음을, 그래서 이러한 행동이 하느님의 선물이요 은총임을 성인은 또한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그들은 주님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착한 생활에 대해 자신을 높이지 않고 자기 스스로는 아무런 선행을 할 수 없고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안다”(머리말, 30)
3. 빠스카를 배우는 학교
선한 행동과 말로 변화되는 삶을 사는 수도자가 살게 되는 곳을 베네딕도는 탈출기의“‘장막 tabernaculum’(머리말, 22-24;39) 으로 표현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장막은 가나안 땅을 향한 여정의 진영이었으며,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탈출과 여정의 장소이면서 하느님과의 일치의 장소라는‘장막’의 이미지는 바로 수도원을 연상케 합니다. 성인에게 수도원은 안락함을 찾는 사람들의 주거지가 아닌, 한 사람의 영혼이 정화되고 단련되어 천상의 소명으로 인도되는 탈출의 장소, 침묵과 경외심으로 경청하는 마음에 하느님께서 오시어 말씀하시는 거룩한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머리말 45절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학교를 설립해야 하겠다”라고 하십니다. 이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칠까요? 베네딕도는 머리말 마지막 절에서 설명합니다:“죽을 때까지 수도원에서 그분의 교훈을 항구히 지킴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에 인내로이 한 몫 끼어 그분 나라의 동거인이 되도록 하자”(머리말, 50) 성인에게 수도원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것을 배우는 학교, 빠스카를 배우는 학교인 것 같습니다. 앞의 14절에서 언급되었던 하느님께서 찾으시는‘일꾼’은 바로 이 빠스카의 훈련생이 되는 것이고, 매순간 죽음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하느님의 은총의 빛으로 건너가기 위해 고난의 내적 훈련을 받는 작업장이 바로 수도원인 것입니다. 수도생활, 수도원이라는 삶의 학교에 들어간다는 것은 이 빠스카의 여정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그렇기 때문에 베네딕도가 얘기하는“결점을 고치거나 애덕을 보존하기 위하여 공정한 이치에 맞게 다소 엄격한 점이 있다”(머리말, 47) 는 것은 거쳐야 할 분명한 여정인 것입니다.
한 사람이 어떤 기술을 배우고자 할 때 세 가지 요소는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과 내적인 의지, 스승의 가르침 그리고 훈련생의 성실한 연습과 노력, 이는 영적인 기술을 배우는 데에도 적용될 것 같습니다. 수도성소의 부르심,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선배 수도자들의 가르침 그리고 수도원 안에서의 오랜 시간의 항구한 훈련과 작업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은총의 빛으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성 베네딕도는 규칙서에서 어떤 신비적인 영적 체험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기도에 대해서도 짧은 문장으로 표현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성인에게 중요했던 것은 영적인 경험의 묘사가 아니라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머리말에서 자주 상기시키시듯, 베네딕도의 제자가 되려는 수련생은 그곳을‘향하여’가기 위해, 오늘도 멈추지 않고 일어나고, 경청하고, 실천하면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성인께서 머리말 49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마음이 넓어지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의 감미로써 하느님의 계명들의 길을 달리게”될 것입니다. 트라피스트회 드 랑세 아빠스는 수도생활을 세 가지“C”로 표현합니다: Cercare(찾다), Cambiare(변화하다), Cantare(찬미하다). 즉, 성소에 응답하면서 주님을 찾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실천하면서 변화되며, 빠스카의 빛과 생명을 주신 주님께 찬미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여정임을 기억한다면 좋겠습니다.
참고자료: Dom Guillaume, Un cammino di libertà, Commento alla Regola di S.Benedetto, Lindau 2013.
정리: 임 에디트 수녀
<묵상 나눔>
1. 머리말 6절에서 “우리는 언제나 우리 안에 주어진 선(善)에 따라 그분께 순종해야 한다”라고 말씀하
십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내 안에 고유하게 부어주신 선(善)함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2. 머리말 25절에 인용된 시편 15편의 내용에 비추어, 수도생활 안에서 함께 노력해볼 수 있는 선 한 행동과 선한 말에 대해서 나누어봅니다.
3. 날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건너가는 빠스카의 여정에 있는 베네딕틴으로서, 내 안에
서 나를 변화되지 못하게, 자유롭지 못하게 속박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