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월피정 자료
【성규 72장】 정독
성 베네딕도의 마지막 말씀
7월은 사부 성 베네딕도의 축일을 경축하는 달입니다. 성 베네딕도를 기억하며, 성인께서 하느님을 찾는 수도승들에게 남긴‘유언’과도 같은 말씀인 수도규칙 72장을 살펴봅니다. 성규 제72장 ‘수도승들이 가져야 할 좋은 열정에 대하여’는 전체 12절로 된 비교적 짧은 장이지만, 성인이 다섯 번이나 반복하여 사용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사랑’입니다:“수도승들은 지극히 열렬한 사랑(amor)으로 이런 열정을 실천할 것이다(3절)”, “형제적 사랑(caritas)을 깨끗이 드러내고(8절)”, “하느님을 사랑(amor)하여 두려워할 것이며(9절)”, “자기 아빠스를 진실하고 겸손한 애덕(caritas)으로 사랑(diligere)하고(10절).” 성 베네딕도께서 오랜 수도생활 끝에 마지막으로 당신의 수도승들에게 하고 싶으셨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의 마지막 밤에 남기셨던 말씀 그리고 부활 후에 베드로와 재회해서 하셨던 말씀과 같은, ‘사랑’이었습니다.
72장 외에도 규칙서 전체를 이끄는 중요한 장인 머리말과 영성 부분을 마무리하는 제7장 ‘겸손에 대하여’에서의 결론에도‘사랑’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있습니다: “수도생활과 신앙에 나아감에 따라 마음이 넓어지고 말할 수 없는 사랑(dilectio)의 감미로써 하느님 계명의 길을 달리게 될 것이니 (머리말, 49)”, “그러므로 겸손의 이 모든 단계를 다 오른 다음에 수도승은 곧 하느님의 사랑(caritas)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7, 67).” 이 밖에‘순명’에 관한 장들(5;68;71)에서, 제4장 착한 일의 도구들에 관한 장에서도‘사랑’은 반복됩니다. 규칙서 전체에서‘사랑’이라는 단어는 38회 등장합니다. 여기에서 성인은 똑같은 하나의 단어로‘사랑’을 표현하지 않고, 세 가지 표현의 라틴어: Caritas, Amor, Dilectio로‘사랑’을 말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사랑의 모습 가운데,‘수도원 안에서 살며, 규칙과 아빠스 밑에서 분투하는 이들(1,1)’의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요? 사부 성 베네딕도께서 어떠한 사랑으로 수도자들을 초대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규칙서에 사용된‘사랑’의 단어들을 조금 더 자세히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Caritas, 행동하는 사랑
규칙서에서‘사랑’의 라틴어 표현 중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단어는 caritas입니다. 카리타스는 흔히 우리말로 사랑, 혹은 애덕이라고 번역하는 말이며, 요한 복음사가가‘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할 때 언급되는 표현입니다.
성경에서 사랑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바람직한 궁극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이 관계 안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한다는 말이 감정적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시적인 행동으로 표출되어야 그 실체가 확인된다는 것입니다. 성서는 사랑이라는 어떤 감정이나 사랑이라고 하는 어떤 사상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계시된 하느님 사랑의 행위를 증언합니다.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행해진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며, 신약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속에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합니다. 카리타스는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 역시 인간 마음속의 심리적 상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닌, 가시적인 행위로 표출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즉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그 사랑의 응답으로 자신의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게 됩니다(레위 19,18;신명 10,19). 이러한 차원에서 카리타스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실천행위, 애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수도규칙에서 생활의 구체적인 규율 부분에 해당하는 8장~66장까지, 베네딕도는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가 필요한 상황에서 caritas를 반복합니다. 잘못을 저지른 형제들에 대하여 “사랑을 더 베풀 것이며(27,4)”, 주간 봉사자들은 “더 큰 공로와 애덕을 닦기 위해(35,2) 사랑으로써(35,6)” 형제들을 섬겨야 합니다. 장상과 형제들은 수도원에 손님이 찾아왔을 때“온갖 사랑의 친절로서(53,3)” 그를 맞이해야 하고, 문지기는 누군가 수도원의 문을 두드렸을 때, 특별히“가난한 사람이 외치거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온갖 양순함과 사랑의 열정으로 재빠르게 응대(66,3-4)”해야 합니다. 특별히 아빠스는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뛰어넘어“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사랑(2,22)”
해야 하고, 형제들의 악습을 근절시키기 위해 각 사람에게 알맞게“현명하게 사랑의 태도(64,14)”로 가르쳐야 하며, 수도원 안의“평화와 사랑을 보존(65,11)”하기 위해 노력할 책임이 있습니다. 수도승들은 불가능한 명령을 받았을 때“하느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사랑으로 순명(68,5)”해야 하고, 형제들 상호간에도 “온갖 사랑과 주의를 기울여(71,4)”순명할 것임을 베네딕도는 강조합니다. 규칙서 전체에서 성인이 16회 언급하고 있는‘카리타스’의 의미를 살펴볼 때, 수도원 안에서의 사랑은 우리의 싫고 좋은 모든 감정을 뛰어넘는 구체적인 행동과 실천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 Amor, 인격적인 사랑
라틴어에서 일반적으로 인간의 감성적 사랑을 나타내는 명사는 amor이고, 동사 amare는‘사랑하다, 좋아하다’라고 해석됩니다. 동사 amare는 규칙서 4장에서 자주 반복됩니다: “많이 말하기를 좋아하지말라(52절)”, “많은 웃음이나 지나친 웃음을 좋아하지말라(54절)”, “다투기를 좋아하지말라(68절)”, “순결을 좋아하라.(64절)” 한편 명사 amor는 대부분 수도승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을 언급할 때 사용됩니다:“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라(4,21)”,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안에서(4,72)”,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에서(7,69)”,“그리스도께 대한 존경과 사랑에서.(63,13)” 그리고 2회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고:“하느님께 대한사랑때문에(7,34)”, “하느님을 사랑하여(72,9)”, 72장의 시작에서는 수도승들이“지극히 열렬한 사랑(3절)”을 지녀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Amor는 열정(passion)을 포함한 사랑을 의미하지만, 베네딕도가 이야기하는 수도승들의‘열렬한 사랑’은 한순간 타올랐다가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는, 깨어지기 쉬운 어떤 감정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 마음의 더 깊은 곳에 자리하는 열정, 우리 존재의 심연을 변화시키는 사랑, 그리스도라는 마르지 않는 샘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이 진실하고 인격적인 깊은 사랑의 관계 안에서 수도승은 함께 사는 다른 사람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약점을 견디어내는“인내와 순명(72,5~6)”을 실천하게 되고“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일을 찾고, 형제들과 아빠스를 향한 깨끗한 사랑(72,7~8)”을 하게 됩니다.
3. Dilectio, 소중히 여기는 사랑
베네딕도는 하느님의 사랑을 표현할 때 주로‘caritas’를, 그리스도를 향한 수도승의 사랑을 표현할 때는‘amor’를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형제를 향한 사랑을 언급할 때는 자주‘dilectio(명사), diligere(동사)’라는 표현을 씁니다:“원수를 사랑하라(4,31)”,“연소한 이들을 사랑하라(4,71)”,“후배들은 자기 선배들을 존경할 것이며, 선배들은 자기 후배들을 사랑할 것이다(63,10)”,“악습은 미워하되 형제들은 사랑할 것이다(64,11).”‘dilectio’는 어원적으로 ‘di-lego; 갈라서 골라내다, 선택하다’라는 말로, 요컨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을 선택하여 ‘소중하게 여기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라틴어로 사랑의 이중 계명을 이야기할 때 ‘diligere’동사를 사용하는데, 이는 하느님을 하느님으로서 소중히 모시는 것, 이웃을 이웃으로서 소중히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베네딕도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와 함께 사는 형제와 아빠스를‘소중하게 여기는’사랑을 지향하시며 의도적으로‘dilectio’를 사용하신 것 같습니다.
베네딕도는 자신의 유일한 책인 수도규칙의 에필로그를 ‘사랑’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성인이 살던 6세기의 이탈리아는 이민족의 침입과 전쟁으로 혼란과 불안의 시대였습니다. 그는 생존을 위한 인간의 탐욕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하느님을 찾는 수도공동체가 서로의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며, 서로를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서로에게 봉사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어두운 세상에 빛과 희망의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참고자료: Manuela Scheiba OSB, Das letzte Wort, Erbe und Auftrag 4/18 Erzabtei Beuron
한국가톨릭대사전 6권 p.3880~3889, 사랑 愛, 한국교회사연구소
정리: 임 에디트 수녀
<묵상 나눔>
1. 성규 72장을 정독하고 나에게 있는 좋은 열정에 대해서 나누어 봅니다.
2. 사부 성 베네딕도가 말씀하시듯이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인격적으로 서로 사랑하며 봉사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나’의 각오와 다짐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