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라“
오랜만에 떠올려 보는 단어, 뛰어라!
人生, 쉬임없이 달려왔고 또 쉬임없이 달려가고 있는데...
그때, 3박4일간의 교육의 기억은 흙탕물에 담긴듯 흐려있지만
그날, 그 새벽에 맞이한 예수님.....
그날 미사에 최재선 주교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얼마나 주눅이 들었든지!
그때를 생각하면 실실 웃음이 난다
이상(理想), 순종(順從), 사랑,
그 당시 내 머릿속에만 뒹굴고 있는 이상 순명 사랑이 아닌
새로운 이상과 순명과 사랑을 요구하고 있는 것을 강하게 느꼈었지!
롤료를 들어면서 내가 갖고 있는 이상을 확대 해석할 수 있었고,
순명의 자세를 깨쳤다.
내 중심적인 이상에서 탈피하여 하느님 중심적 이상으로 옮아가야겠다는 것과
막연하게 실행하는 순명은 하느님 앞에서 작은 자로서의 순명,
하느님 사랑을 닮은 자의 사랑 실천이었음을 깨달았다.
하느님 중심적 생활 실천은 낮은 자세로 순명할 때,
사랑도 함께 행해짐을 알았었다.
내가 낮은 자세로 있지 않을 때, 순명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는 사실도...
가끔은 내 목의 깁스를 느낄 때가 있긴 하지만
그럴 때는 내 꼴을 주님의 거울에 비춰보기도 한다.
받은 사랑의 무게는 감히 저울에 올릴 수 없을 만큼, 그 큼을 보게 되고,
포근한 품에 안겨 있는 느낌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데.
옛날엔 그랬었지! 무슨 일이 나에게 맡겨졌을 때,
나니까 할 수 있다는 교만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내 힘으로 해보려고 애쓴 적도 많았었다.
지금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에 하게 됨을 알게 되었고, 바라보는 눈도 바뀌었다.
왜 저렇게 밖에 못할까? 에서 저렇게 할 수 있구나. 개성이 이구나......
까탈을 부리던 것들을 곱게만 보려고 한다.
듣는 귀도 바뀌었다...
흘러가는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니, 옮길 것도 없어지고 시빗거리가 없어졌다...
아직도 고쳐지지 않는 언어구사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튀어나오는 말이 곱지 않으니
실천해 논 사랑이 도로아미타불이 되곤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고치고 다듬을 게 있다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것이 나를 더 낮추게도 하고 노력하게도 하고
열심히 공부하게도 하니까..
본당 울뜨레아에서 야유회겸, 성지 순례를 같이 가자한다.
본당에서 ‘스타’님들이 많으실텐데 이 늙은이를 초대해 주시다니....
감읍(感泣)할 따름이다.
꼰대가 하는 말 “나 때는 말이야~~~”
교육은 갔다 오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갔다 와서
삶의 모습이 변화되어야 교육의 목표가 실현되는 게 아닌가!
갔다 왔으니까 열심히 봉사해야지가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으로 봉사했을 때,
그곳에 하느님의 사랑이 싹 터는 게 아닐까!
신앙의 여정이든 삶의 여정이든
한 번만 뛰는 것이 아니라 쉼 없이 달려가는 것일게다.
사랑을 향해 달려가는 게 ”뛰어라~“가 아닌지?
또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뛰어보자~~
뛰어라! ~~~
뛰면서 하느님도 보고, 이웃도 바라보고
뛰면서 내 꼴도 보자~~
꼰대의 마지막 충언, 달리는 자는 주저앉지 않습니다.
(사진은 오래 전 경주)이 할미가 오랫만에 주절주절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