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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기념교회.
점심식사.
누가의 묘.
에베소.
보드룸.
올리브나무.
요한복음 13장 - “34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사도요한기념교회)
사람의 죄는 항상 두 가지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둘째는 사랑하고 돌보라고 주신 사람을 미워하게 됩니다.
내가 날마다 하나님께 가까이 더 가까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지 돌아봐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는 지 미워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봐야 될 것입니다.
죄에서 돌이킬 때입니다.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의 고별사(13-17장)
[제자들의 발을 씻다]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1-2절.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죽음의 때이며 동시에 영화롭게 되는 때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아버지께로 출발하는 때이며 사람들과는 이별하는 때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앞둔 마지막 시점에서 제자들을 위하여 당시 종들이 행하던 세족을 제자들에게 베풀었습니다. 끝까지 주님의 사랑을 세족으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마귀가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습니다. 베드로도 닭이 울기 전 3번 주님을 배반하였습니다. 베드로는 3번 주님을 부인하고 마귀의 소리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마태복음 26: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울며 회개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로마서 8:5-7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우리에게 날마다 들어오는 마귀의 생각입니다.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잠언 6:10) 마귀의 생각과 함께 하나님의 뜻과 말씀도 함께 우리 가운데 들어오십니다. 우리는 선택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땅의 생각을 선택하는 자는 하나님과 멀어지는 땅의 생각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과 평안인 하나님의 생각을 선택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마귀의 생각이 주님을 팔게 한 것이 아니라 가룟유다는 하나님의 생각과 말씀을 버리고 은 삼십에 마귀의 생각을 선택하였습니다.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3-5절.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신 것과 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제자들에게 맡기시기 위하여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6-11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섬김의 모범을 보이신 것 이전에 우리의 죄를 씻기신 세례입니다. 몸을 씻은 자가 받아야 되는 발 세례입니다.
사람의 죄는 항상 두 가지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둘째는 사랑하고 돌보라고 주신 사람을 미워하게 됩니다.
내가 날마다 하나님께 가까이 더 가까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지 돌아봐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는 지 미워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봐야 될 것입니다.
죄에서 돌이킬 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죄는 물과 물이 쏟아져 땅위의 모든 생명체가 죽었습니다. 죄로 물에 잠겨 죽은 우리를 하나님은 홍해의 물을 갈라 죽은 우리를 물에서 건져 광야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이 몸의 세례입니다.
고린도전서 10: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몸의 세례로 예배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원망하며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않고 애굽을 그리워하며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다시 요단강에서 발을 씻기시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요단에서 발을 씻은 이스라엘백성들은 가나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그 땅의 백성들을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되도록 전쟁을 하였습니다. 발세례는 예배자가 사명자로 세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불타지만 소멸되지 않는 떨기나무 아래에서 모세에게 신을 벗어라 하셨습니다. 거룩한 땅에서 모세의 발을 씻겨 하나님이 사역자로 세우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갈 시간이 된 것을 아시고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아들에게 맡기셨듯이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시기 위해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예수님에게 받은 모든 것을 이제 세상에 전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12-17절.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예수님은 세상에 빠져 어둠의 물 파도가 치는 바다에 빠져가는 베드로를 건지시며 그의 몸을 씻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 저녁 허리에 수건을 동여매시고 베드로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물에 빠진 베드로는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고 이제 발을 씻기시는 주님을 통하여 사명자로 주님의 군사로 세워졌습니다.
18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19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18-19절.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대제사장에게 넘겨줄 기회를 찾느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시편 41:9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발꿈치를 들었다는 것은 나귀가 뒷발질을 해서 주인을 차는 모습을 묘사한 표현입니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24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20-30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모든 제자들이 서로 ‘나는 아니지요’라며 주님께 묻습니다. 그 중에 가룟유다가 묻습니다. ‘주님 나는 아니지요’
‘네가 말하였도다’ ‘네가 말한 것과 같이 네가 바로 나를 팔자다.’ 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예수를 판자일까요?
나는 아닐까요?
네. 그렇습니다.
바로 내가 주님을 판자임을 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을 판다는 것은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에 마음이 팔리고 세상의 높아지고 더 가지고 더 부자가 되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이웃을 섬기지 않는 것이 주님을 파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이들을 구제하지 않고 때를 따라 생명의 떡을 나누지 않는 것이 바로 주님을 파는 것입니다.
나는 가룟유다입니다.
[영광 받으심과 새 계명]
31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32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31-35절. 십자가를 지실 시간이 임박하였음을 아시고 마지막 유월절에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눠주시고 예수님은 허리에 수건을 동여 매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사랑하고 섬기라고 주신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강한 자가 더 많이 가지는 것이 합당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경쟁하며 살아왔던 우리의 발로 지은 죄를 씻겨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그리고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면 그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이르시다]
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37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6-38절.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베드로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들이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주님은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부인하리라’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는 죄인이 있고, 자신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죄인이 있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죄인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의롭다 하는 자는 결단코 십자가의 은혜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은 죄인이 아니고 의인임으로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임을 깊이 인식하는 자는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간절히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면 살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알지 못하고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큰소리 쳤습니다.
스스로 죄인인 줄, 스스로 연약한 자 인줄, 스스로 병자이며, 스스로 맹인임을 알지 못하는 자는 십자가의 크신 은혜를 체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http://cafe.daum.net/happymaker.turkey
이스탄불중앙교회
요한계시록 2장1-7절 -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에베소교회)
에베소(에페소스)
현재 지명은 ‘셀축’입니다. 이즈미르에서 셀축을 지나 데니즐리까지 운행하는 철도는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최초로 놓인 철도입니다.
‘이오니아’의 고대도시로 양 항을 끼고 있어서 상업의 중심지로 꼽히며, 기원전 334년까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알렉산더 대왕의 입성으로 그리스 제국에 편입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 사후 그 휘하에 있던 장군 ‘리시마코스’가 경기장 체육관 원형극장 등을 세우며 소아시아 서부지역의 수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기원전 88년 로마의 ‘실라’ 장군이 초토화시켰고, 다시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재건되었습니다. 현재는 ‘카이스테르’ 강이 운반한 퇴적물로 의해 막혀있지만, 당시에는 만이 시의 안쪽까지 깊이 파고들어 있었습니다.
원형극장 : 수용 인원은 이만 오천 명으로 당시 도시의 10%의 인원을 수용 할 수 있는 시설로 에베소의 인구가 25만여 명이었음을 나타냅니다. 4세기경까지 맹수와 투우사가 결투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지진 등으로 지층이 움직이고 바다가 6km 정도로 멀어져 도시가 멸망하여 오늘에까지 이릅니다.
사도행전 19:21-30
21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원형극장에서 일어난 큰 사건 3가지 : 첫 번째로 데메드리오라는 아데미신상을 만들어 파는 은장색이 사도바울이 전하는 복음으로 인하여 자신의 생업이 위협을 받자 사도바울의 동역자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 큰 소동이 일어났고, 이로 인하여 사도바울은 에베소에서 떠나 2차 선교여행지였던 마게도냐로 이동하였고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기록하였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사도바울이 잡혀 원형극장에서 사자의 먹이로 던져지는 일이 있었지만, 하늘에서 큰 천둥과 지진으로 인하여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디모데후서 4:17-18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세 번째는 디모데가 에베소에서 아데미 여신의 축제 날 우상 숭배하는 군중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성난 군중들로부터 매를 맞고 순교한 곳이기도 합니다. 에베소의 피온산에 디모데 순교교회가 있습니다. 디모데는 사도요한이 오기 전 AD80년경까지 에베소교회의 담임이었습니다.
고대 에페소스의 건립자의 안드로클로스의 전설 : '멧돼지와 물고기가 가르키는 도시를 건설하라'라는 신탁을 받은 안드로클루스가 이곳에서 어부들과 함께 생선을 굽고 있을 때 한 물고기가 튀어오르며 옆의 덤불에 불이 붙었고 그 바람에 덤불에 숨어있던 멧돼지가 도망치자 그 자리에 아데미 신전을 세우고 차례로 도시를 건설했다고 합니다.
도미티안 신전 : 도미티아누스 황제(기원후 81-96년)를 숭배하던 신전. 7m 높이의 황제 동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AD94년 에베소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신전 앞으로 지나는 모든 사람들은 신전을 향하여 절을 하고 지나게 되었습니다. 사도요한은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로마 군인에 잡혀 끓는 기름에 던져지는 벌을 받았지만 아무런 해를 당하지 않고 기름 가마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마 군인들이 사도요한을 밧모섬으로 유배를 보냈습니다.
밧모섬에 있는 18개월 동안 기독교 박해는 절정에 달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인내와 위로와 보낸 편지가 요한계시록입니다.
AD96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죽고 유배에서 풀려난 사도요한은 일곱교회를 순회하며 사역을 하다가 에베소에서 죽었습니다.
셀서스 도서관 : 에베소를 대표하는 상징건물입니다. 로마 시절 소아시아를 통치하던 부집정관으로 에베소 공공건물 관리자 디베리우스 셀서스(AD60-114)입니다. 그의 아들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퀼라가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110-135년에 아버지의 무덤 위에 만든 도서관입니다. 5만 권의 장서가 비치되어있었다고 하며, 지혜, 지식, 우정, 이해의 여신상이 세워져 있었으나 진품은 오스트리아 비엔나 박물관에 있고 현재는 모조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3세기에 지진과 고트족의 침공으로 파손되었습니다.
도서관 옆의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 문이 있는데,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노예에서 해방된 두 사람이 황제를 기리기 위해 지은 문이라고 합니다.
아르테미스 신전 :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첫 신전은 아마존이 건설한 것으로 추측되고, 7세기에 홍수로 첫 번째 파괴되었고, 기원전 550년 리디아의 마지막 왕 그로이소스가 케르시프론과 그의 아들 메타게네스에게 의뢰하여 높이 30미터에 너비 50m*110m(현대 축구장과 비슷한 규모)재건되었습니다. 에게 해 10km 밖에서도 보였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기원전 356년 헤로스트라투스가 "나쁜 짓을 저질러서 내 이름을 역사에 영원히 남기겠다."라고 말하며 방화로 2번째 파괴가 되었습니다.
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재건 명령으로 기원전 323년에 3번째 64.3m*119.175m로 재건되었습니다.
268년 고트족의 약탈로 파괴되었고, 이후 재건과 파괴가 반복되며, 5세기 초 까지는 신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소피아 성당을 지탱하는 주 기둥의 출처가 이곳 아르테미스 신전의 기둥을 옮겨 아야소피아 성당의 기둥으로 사용 했다고 합니다.
대영박물관에서 발굴하고, 유물을 가져가 전시하고 있습니다.
성 요한의 교회 : 6세기경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요한과 마리아를 기념하기 위해 요한의 무덤이라 추정되는 곳에 세운 교회입니다. 오스만 제국 지배하에 있던 14세기에는 모스크로 사용되었습니다. 들어가는 문의 이름은 박해의 문인데 기독교가 공인되자 기독교인들이 순교의 피가 흐르는 에페소 원형극장으로 달려가 그 대리석들을 부수어 지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누가의 묘 : 에베소유적지 입구에 누가의 묘가 있습니다. 본명 ‘루카노스’로 ‘빛을 준다’는 뜻입니다. 수리아 안디옥 출신이며 그리스 사람입니다. 누가의 아버지는 엔자이고 어머니는 이리스입니다. 로마의 판사 크리스쿠스의 종의 신분이었지만, 충실한 성품으로 자유를 얻었지만 주인을 떠나지 않고 섬겼습니다. 이후 크리스쿠스는 의사가 소원인 누가에게 의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알렉산드리아 의술학교에 입학하여 의사가 되었습니다. 누가는 사랑하는 여인이 병에 결려 죽어 갈 때 알지 못하는 신에게 간절히 구했지만 죽었습니다. 그 이후 신을 저주하였는데, 의술을 배우며 만난 유대인 랍비 감리엘을 통하여 예수에 대하여 듣게 됩니다. 감리엘은 헤롯의 유아 살해사건 당시 자신의 아이를 잃은 사람인데 회당에서 12살 난 예수를 만나고 자신의 아들의 죽음에 감사했다고 합니다. 누가는 신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었던 자이었습니다.
이후 누가는 의사가 되어 안디옥을 돌아와 다소에서 의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예루살렘의 소식을 들으며 예수가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후 그리스에서 자신의 사촌이 암으로 죽게 되었는데 예수의 이름으로 병이 나은 것을 경험하고 에베소로 건너와 2차 선교여행 중이었던 사도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사도바울과 동행하며 예수에 관하여 듣고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로 건너가는 일을 도와 함께 빌립보에 머물렀고, 이후 사도바울은 선교여행을 떠나고 누가는 빌립보에 머물며 의사 일을 하였고, 3차 선교여행에 온 사도바울을 빌립보에서 다시 만나 사도바울과 함께 선교여행에 나섰습니다. 에베소에서 사도요한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만나고 여러 이야기를 정리하여 누가복음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만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후 누가는 사도바울과 함께 선교여행을 하였고 사도바울이 로마감옥에 2차로 투옥되어 죽음을 앞두고 있었던 시간까지 함께 하였고(딤후4:11) 사도바울로부터 들었던 선교여행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데오빌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누가는 85세에 그리스 아가야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다고 전해지며, 그 유해를 사도요한이 에베소로 모셨고, 이후 콘스탄틴 황제가 콘스탄티노플로 옮겼다가 나중에 그 머리는 성 베드로성당으로 옮겨졌다고 전해집니다.
누가는 화가이며 작가이며 의사이었습니다. 누가는 성모마리아와 예수의 그림을 그린 사람입니다. 에베소에 있는 누가의 묘는 콘스탄티노플로 이장되기 전의 무덤으로 누가를 상징하는 황소가 그려져 있습니다.
[에베소교회에 보내는 말씀]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1절.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이며 ‘일곱 금 촛대’는 아시아 ‘일곱 교회’를 말합니다.(계1:20)
일곱 교회는 하나님 기뻐하시는 이 땅의 모든 교회를 나타냅니다. 그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 성령을 모시고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일곱 교회를 향한 말씀은 하나님의 성전 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대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기뻐하시는 교회가 무엇인지 깊이 배우고 알기를 원하며, 내가 주님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마태복음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어떻게 십자가 없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울 수 있을까요?
반석은 베드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구원의 반석이 되시는 주님의 십자가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10:4 hepsi aynı ruhsal içeceği içti. Artlarından gelen ruhsal kayadan içtiler; o kaya Mesihti.
이 말씀을 오해하고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가톨릭에서는 베드로 시신의 뼈를 나누어 큰 성당을 지을 때 마다 성당의 바닥에 안치하고 그 위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베드로의 생가 위에 성당을 지어놓기도 하였습니다.
터키에서 보니 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가톨릭은 덩치가 큰 합법화 된 이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내로 신의 어머니로 어머니 신으로 받아들이며 죽지 않고 승천했다 가르칩니다. 터키 에베소에는 사도요한이 돌보다 나이 들어 죽은 마리아의 무덤이 있습니다.
가톨릭은 어린 아기 예수로 아무 힘이 없고 엄마 마리아의 품에 있는 자로 묘사하고 있으며 그 어머니 마리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가톨릭이 대부분의 성화나 조각은 아기예수를 품에 안은 마리아입니다.
교회는 베드로가 고백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그 고백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반석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세워진 성전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2-3절. 에베소교회의 칭찬은 행위의 수고 인내입니다.
‘수고(코포스, κόπος)’는 단순히 육체적인 피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피를 흘릴 정도로 심각한 고통을 뜻합니다. ‘인내(휘포모네, ὑπομονή)’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로 초래된 현실적인 수고 곧 핍박에 대해 견디는 것을 말합니다.
행위는 악한 자 용납하지 아니한 것이며, 그 수고는 자칭 사도라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영지주의)을 네가 드러낸 것입니다. 인내는 참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입니다.
‘참다(휘포모네, ὑπομονή)’는 “휘포(ὑπό, 아래)+”메노“(μένω 내가 머무르다)의 합성어로 배 밑창에서 노를 젓는 노예의 신분을 의미합니다.
‘견디다(바스타조, βαστάζω)’는 “수용하다”, “용납하다”로 감수하다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게으르지 아니하다.’에서 게으름(코피아오, κοπιάω)는 “지치다”, “피곤하다”의 의미로 지치고 피곤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가운데 장자 교회이었던 에베소교회는 사도바울의 가르침이 3년 반이나 있었던 곳입니다. 진리를 구하며 말씀위에 서며 앞장선 교회이었습니다.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4절. 사랑은 두 가지로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말씀과 진리를 추구하는 에베소교회는 성도를 용서하고 이해하며 용납하는 사랑이 없었습니다. 이성적이고 감성이 메마른 교회를 책망하셨습니다.
진리를 구하면 비판과 정죄를 하며 사랑이 없을 수 있고 반면에 사랑을 구하며 용서와 긍휼을 구하면 하나님의 진리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비밀과 모든 지식이 있지만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바로 우리의 사랑 없음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5절. 사람은 지극히 치우진 존재라 진리를 추구하면 냉랭해지고 사랑을 지키려면 진리가 희미해집니다.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촛대는 예수그리스도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주님 오셔서 촛대를 옮기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 사랑을 버리고 회개치 않음으로 주님의 임재 촛대에서 멀리 떠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임재 촛대를 떠나지 말고 돌아오기를 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6절. ‘니콜라주의(Νικόλαος)’는 ‘니카오(νικάω, 정복하다)’와 ‘라오스(λαός, 백성)’의 합성어로 백성을 점령하고 못살게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발람(בלעם, Βαλλάμ, 백성을 삼킨다)’과 동의어로 발람은 모압 왕 발락의 물질 공세에 넘어가 이스라엘을 음행의 범죄에 빠지게 한 선지자이다.
이들 니골라당은 자칭 사도라 하는 거짓 교사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0:29에 보면 니골라당을 “사나운 이리”라고 했습니다. 당시 목회는 순회복음전도자로서 한 장소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였는데 거짓교사들이 많아서 거짓교사에 대한 주의를 주고 떠났습니다. 에베소에는 많은 철학자들이 있어서 철학과 복음을 자기 변증에 열을 올렸습니다. 변증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므로 수단방법을 다 동원하여 괴변을 늘어놓았습니다.
니골라 당은 거짓 선지자 발람과 유사하여 말로는 이스라엘 저주하지 않았지만 발락에게 약속의 자손을 타락하여 저주하는 음란의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일로 24,000명이 죽었습니다. 에베소교회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할 수 있는 것은 교회가 말씀으로 판단하고 진리를 구하는 교회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니골라 당은 말과 행위로 보이는 것은 흠 잡을 때가 없지만, 그 마음에 쫓는 것은 재물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발람의 교훈을 따라 음행을 행한 이스라엘백성과 같았습니다.
비판하고 정죄하지만 그 행위가 순수한 보수적인 신앙 노선을 걷는 에베소교회이었습니다.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7절. ‘이기는 자’란 타협 없는 박해의 결전에서 순교자요, 순교의 정신으로 사는 자를 가리킵니다. 진리의 말씀을 따라 말씀이 그러 한가 날마다 묵상하고 니골라 당과 같이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그 속으로 세상의 재물을 구하는 악함을 구별하고 판단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행위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3:1-3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이 식는 것은 종말의 현상입니다.
우리 안에 용서와 사랑이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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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