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1956년]
- 56년 6월 정식 프로계약
- 56년 9월 7일 데뷔전을 치루었고,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한다. (팀은 7-1로 승)
16세 [1957년]
- 57년 7월 7일 브라질 대표팀으로 발탁되어 첫 경기를 치루었고, 데뷔전 데뷔골을 성공시켰다.
- 57시즌 브라질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득점왕을 차지했고, 공식 통산 38경기 41골을 기록했다
17세 [1958년]
- 58년 브라질 월드컵에 발탁되었고, 1958년 6월 15일 소련을 상대로 월드컵에서 데뷔전을 치룬다.
- 이후 8강 웨일즈전에서 결승골, 4강 프랑스전에서 해트트릭, 결승 스웨덴전에서 2골을 넣으며 브라질을 월드컵 정상에 세운다.
- 그 대회 최우수 영플레이어, 실버볼, 실버부트, 베스트11을 수상했고, 월드컵 결승전 역대 최연소 출전, 결승전 최연소 골, 최연소 헤트트릭 등의 수 많은 기록들을 작성한다.
18세 [1959년]
- 통산 3번째 파울리스타 리그 득점왕의 자리에 올랐으며, 59년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해 MVP, 득점왕을 차지한다.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
- 1959년 비공식 통산 83경기에 출장해 100골을 넣었다.
- 일부에서는 비공식으로 127골을 넣었다고 이야기한다.
19세 [1960년]
- 펠레는 15세부터 19세까지 공식 기록 160경기 193골, 비공식 기록 278경기 298골을 기록했다. 참고로 국가대표는 제외
- 1960년 19세의 나이에 파울리스타 리그 득점왕 4연패에 성공했고, 팀은 통산 2번째 파울리스타 리그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
20세 [1961년]
- 공식 통산 38경기 62골을 기록했으며, 비공식 통산 74경기 110골을 기록한다
- 펠레는 브라질 세리에A 트로피를 처음 따냈으며, 세리에 득점왕, 파울리스타 리그 득점왕을 따낸다.
- 비공식 시즌 110골을 기록
- 펠레에 반한 유럽의 많은 명문들이 펠레의 영입을 위해 산토스에 제의하나 브라질 정부는 펠레를 브라질 국보 로 선언한다.
21세 [1962년]
- 21세의 나이에 2번째 월드컵에서 우승하다.
- 또한 팀은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는데, 남미의 챔피언스리그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과 더불어 브라질 세리에, 파울리스타 리그, 인터컨티넨탈컵 등 총 5관왕을 달성한다.
- 펠레의 활약에 힘입은 산토스는 1962년 축구 역사상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한 팀으로 기록되다
(리그 + FA컵 + 대륙 대항전)-(대륙 대항전 : 유럽 챔피언스 리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등)
- 인터컨티넨탈컵에서 에우제비우의 벤피카를 완전히 박살 내놓다.
1차전은 3-2, 2차전은 2-5로 산토스가 통합 8-4로 승리
에우제비우는 1골에 그쳤고, 펠레는 1차전 2골, 2차전 3골로 통합 5골을 넣었다.
22세 [1963년]
- 전대회 우승팀의 자격으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 참가한다.
4강에서 가린샤가 버티던 보타포구를 만났는데, 1-2차전 통합 5-1로 산토스가 완승한다.
펠레는 1차전 1골, 2차전 3골로 총 4골을 넣었다.
결승에서 보카 주니어스와 붙게 되었고, 펠레의 산토스는 5-3으로 보카 주니어스에게 승리한다.
- 같은 해 1963 인터컨티넨탈에 참가했는데, 당시 상대는 유럽 챔피언이던 AC밀란이였다.
체사레 말디니, 호세 알타피니, 지안니 리베라,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등이 버티던 밀란을 상대로 1차전에서 2골을 넣었다.
그러나 팀은 4-2로 패배
- 2차전에서는 지오반니 트라파토니에게 완벽히 차단당하면서 아쉬운 활약을 남겼으나 팀은 4-2로 승리
3차전에서 산토스가 최종 승자가 되며 통산 2번째 인터컨티넨탈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
- 22세의 나이에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다.
23세 [1964년]
- 프로 데뷔 9년차
- 공식 기록 : 302경기 398골, 비공식 기록 : 503경기 598골
- 통산 8번째 파울리스타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57, 58, 59, 60, 61, 62, 63, 64 8연패
- 또한 통산 3번째 브라질 세리에 득점왕을 차지했다.
24세 [1965년]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8골을 기록, 통산 첫번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을 차지했다.
공식 기록 48경기 64골, 비공식 기록 66경기 97골
25세 [1966년]
- 1966년 펠레 인생 최악의 월드컵
- 펠레는 1차전 불가리아전에서 1골을 넣으나 2차전에서 부상당했고, 3차전 부상인채로 출전하나 포르투갈의 수비수 모라이스의
미친 태클로 엄청난 부상을 입게 된다. 후에 펠레는 이때 당한 태클이 자신 인생 최악의 태클이라며 이야기했다.
- 25세의 나이에 영국 여왕으로부터 훈장을 받다.
26세 [1967년]
- 브라질 국대에서 57골, 클럽에서 통산 401경기 503골을 기록
- 펠레가 나이지리아에서 친선전을 가지다.
당시 나이지리아는 내전중이였는데, 펠레의 친선전을 위해 48시간동안 휴전했다.
27세 [1968년]
- 상대의 거친 플레이에 큰 부상을 여러번 당한 펠레에게 예전같은 모습을 찾기 힘들어지다.
- 펠레의 아쉬운 모습은 계속되었고, 기록은 공식 38경기 28골, 비공식 73경기 55골로 초라(?)했다.
- 펠레는 통산 6번째 브라질 세리에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000호골 기념 우표)
(1000호골 당시)
28세 [1969년]
- 909경기에 나서 1000골을 넣다.
- 1000호골을 취재하기 위해 무려 1500명이 넘는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브라질에 출동했다. 1000호골 당시 관중은 무려 17만명
- 브라질 정부는 오스트리아의 프린츠 바인더, 브라질의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에 이어 역사상 3번째 1000호골의 주인공이라고 발표했다.
- 1000호골을 기념하기 위해 브라질 우정당국에서는 우편을 2백만장 발행했으며, 브라질 정부에서 공휴일로 선포했다.
VIDEO (1000호골 당시)
29세 [1970년]
- 선데이 타임지에서 70년 브라질이 월드컵에서 우승하자 다음날 신문 헤드라인에 이렇게 작성했다.
How Do You Spell Pele? : G-O-D
- 축구의 왕, 축구 황제를 넘어 신으로 불리게 되다.
- 통산 3번째 월드컵에서 우승했으며, 월드컵 베스트11에 선정되었고, 월드컵 골든볼을 수상했다.
70년 월드컵에서 6경기 4골 7도움을 기록했다.
30세 [1971년]
- 약 14년간의 브라질 국가대표 생활을 끝내고, 브라질 국가대표에서 은퇴하다
펠레 인생 부진의 시기였으며, 당시 비공식 기록은 72경기 29골이였다.
- 공식 기록은 40경기 9골
- 펠레는 자신의 커리어 중 유일하게 10골 이상 득점하지 못한 때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첫 데뷔 시즌인 1956년도와 30세가 되던 1971년이였다.
- 프랑스 스포츠 아카데미에서 초대 수상자가 되다.
- 같은 해 프랑스 레드 훈장을 받다.
31세 [1972년]
- 31세의 나이에 공식 통산 580경기 603골을 기록했다.
- 비공식 기록은 1010경기 1017골
32세 [1973년]
- 공식 49경기 30골, 비공식 66경기 52골을 기록
- 첫 번째 올해의 남아메리카 축구왕에 선정되었고, 통산 11번째 파울리스타 리그 득점왕의 자리에 오르다.
33세 [1974년]
- 브라질 리그 마지막 시즌
- 공식 기록 656경기 643골, 비공식 기록 1115경기 1088골
34세 [1975년]
- 미국 축구리그 부흥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다
- 펠레를 보기 위해 미국의 관중이 늘기 시작했고, 펠레 등장이후 무려 80% 이상의 평균 관중이 상승했다.
35세 [1976년]
- 미국 리그에서 2시즌동안 65경기 41골을 기록
(앤디 워홀의 펠레 그림)
36세 [1977년]
- 미국 리그 공식통산 43경기 27골을 기록, 비공식 통산 107경기 64골을 기록했다.
- 그리고 1977년을 끝으로 펠레는 현역에서 은퇴한다.
- 현대 미술의 아이콘인 앤디 워홀이 펠레의 초상화를 그리다.
39세 [1980년]
- 아타리 2600 비디오 게임에서 펠레를 만들다.
40세 [1981년]
- 프랑스 르퀴프지에 의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선정 되었다.
43세 [1984년]
- FIFA에서 명예 훈장을 주다.
48세 [1989년]
- 북한에서 펠레 우표를 발행
51세 [1992년]
- 유엔 환경대사로 공식 임명 되었다.
52세 [1993년]
- 미국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입성
53세 [1994년]
- FIFA 선정 월드컵 올타임팀
56세 [1997년]
- 대영제국에서 2등급 작위를 수여했고, 역사상 모든 스포츠스타들 중에서 가장 높은 작위를 받은 사람이 되었다.
57세 [1998년]
- 20세기 최우수 팀에 선정되다.
58세 [1999년]
- UNICEF 선정 20세기 최고의 선수
- 로이터 통신 선정 20세기 최고의 선수
- IOC 선정 20세기 최고의 스포츠스타
- FIFA 선정 20세기 최고의 선수
- IFFHS 선정 20세기 최고의 선수
- IFFHS 선정 20세기 최고의 남미 선수
- 프랑스 풋볼지 선정 20세기 최고의 선수
- 세계 스포츠 어워드 20세기 최고의 스포츠인 11인
- 타임지 선정 20세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100인
등등에 선정되다.
59세 [2000년]
- 넬슨 만델라가 '넬슨 만델라상'을 수여하다.
63세 [2004년]
- FIFA에서 100주년 기념 FIFA 센테니얼 상을 수여하다.
64세 [2005년]
- BBC에서 펠레에게 평생 공로상을 받다.
71세 [2012년]
- 골든 풋 선정 역대 최고의 레전드로 선정
- 영국 애딘버러 대학에서는 애딘버러 대학 명예 학위를 수여하다.
이유는 '인류의 환경에 대한 기여 및 위대한 스포츠 업적'
(기네스에 오른 펠레)
72세 [2013년]
- 월드사커지 선정 역대 베스트11에 선정
- 통산 1363경기 1283골이라는 대기록이 기네스북에 등재되다.
74세 [2015년]
- 프랑스 르퀴프지 선정 역대 최고의 남미 선수로 선정되다.
75세 [2016년]
- 국제 올림픽 위원회인 IOC로부터 훈장을 받다.
77세 [2018년]
- 잉글랜드 FWA에서 펠레에게 공로상을 받다.
(1980년대부터 매년 뽑기 시작한 공로상으로 펠레는 FWA 공로상 역사상 유일하게 잉글랜드 리그에서 뛴 적이 없는 선수이다.)
"제 이름은 로널드 레이건, 미합중국의 대통령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본인이 누구인지 밝힐 필요가 없습니다.
펠레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 로널드 레이건 [前 미국 대통령]
첫댓글 이 아저씨는 그냥 올타임랭킹에서 다른 존재라고 보는 게 속편하다봅니다
펠레랑 플리이 비슷한 선수가 누가 있나용?
글쎄요.. 꽤 작은 키였음에도 헤딩을 엄청 잘했고, 골 결정력도 좋고 드리블에 개인 기술도 좋았으며 민첩했고
플레이메이커까지도 했던 그런 선수라...
과거에도 딱히 없었던 것 같고 현재에도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전문가들은 종종 가장 완벽한 선수 중 하나로 펠레를 뽑기도 하더라구요.
@AC 밀란 절대적인 공격수 그자체군요
호비뉴가 비슷하긴함
이렇게 정리된거 보니까 더 쩌네요 ㄷㄷ 비교할만한 선수가 없네
이렇게 보니깐, 넘사긴 하네요. 날두도 비비기 어려워 보이네요.
펠레 = 축구황제
역시 역대최고선수네ㄷㄷ
실질적인 전성기는 8년정도(58~65) 70월드컵 끼면 9년
그 9년이 어떤 선수보다 충격적인것.. 말 그대로 독보 그 자체..
@Cloudy 호날두는 12년째
@돈프라이 날두나 메시도 한수 아래수준임..
축신 축황
1000호골 동영상에서 키퍼 공잡고 왜 뒤로일어나지 ㅋㅋㅋㅋㅋ
17살에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캐리했단거부터가 그냥 차원이 다름
그냥 원탑
축구 그 자체죠
메시가 계속 전성기를 구사해서 저번에 월드컵 우승
이번에 우승했으면 비벼나 볼 클래스
날두고 메시고 펠레는 다른 차원
Fm에서도 이렇게커리어를쌓을수없을듯
17살에 월드컵 우승 끝.
17살에 저렇게 해서 우승했는데도 실버볼이네요??
저 당시 골든볼 수상한 선수가 중미 역대 1,2위를 다투는 지지 선수였죠
잘함.
펠레 미국리그에서도 뛰엇군요ㅎㅎ오늘 새로알게된사실ㅋ
역시 황제란 칭호를 가지고있는 모든 스포츠분야의 각 선수들은 어지간해서는 넘기 힘든 느낌이네요;;;;
17세에 월드컵 해트트릭
이걸로 펠마 원톱논쟁은 끝나는거 아닌가
원탑
와,,,
메시 시대에 살면서 메시도 범접할 수 없다고 느꼈지만 이렇게 보니까 펠레야말로 진정한 신이네요
이렇게보니 ㅎㄷㄷ하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