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없는 이승만 꼬라지
진작부터 알았다
상해 임정 때도
이승만 노는 것 미워했다 싸웠다
이 싸움 내내 시들지 않아서
1950년대 성균관 관장 자리도 쫓겨나게 되었다
긴 세월
16년 감옥살이
고문으로 다리병신 되어
제 걸음 걷지 못하는 세월
조선 유교
이만한 사람 있기 위하여
5백년 수작 헛되지 않았다
그에게는 사나이 눈물 있고
사나이 노기 있고
사나이 쓰라린 기상 있다
그의 노래
저기 저 사이비 군자들
맹세코 이 땅에서 쓸어버리리
길에서 죽기로니 무슨 한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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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은 시인이 '만인보' 대장정을
30여년만에 마무리했다고 한다.
대부분 실명이 제목 자체인 '만인보'는
등장인물이 5600여명에 달한다니
보통사람으로선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과연 '고은'이다.
심산 김창숙 선생의 시 '김창숙'은 연보를 살펴보니
1983년 작품으로 '만인보 1'편에 나온다.
이 시구의 구절처럼,
김창숙 선생의 일생을 이토록 짤막하게
정곡을 찌른 운문이 있었던가.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일 듯싶다.
시 구절 '저기 저 사이비 군자들/맹세코 쓸어버리리/
길에서 죽기로니 무슨 한이랴'는
심산의 '반귀거래사'에 나오는 시구에서 따온 것이다.
성균관대 중앙도서관 앞 동상에 새겨져 있는 시
'평화는 어느 때나/실현되려는가/통일은 어느 때에/이루어지려는가/
밝은 하늘 정녕/다시 안 오면/차라리 죽음이여/빨리 오려무나'가
떠오르지 않는가.
시대가 흐를수록 빛나는 인물이 있는가하면,
빛이 흐려지는 인물이 있다.
백범과 심산이 전자의 인물이라 하면,
우남 이승만과 박정희는 후자의 인물일 것이다.
인물은 인물을 알아보는 법.
백범과 심산이 그랬다.
보라. 시인 고은은 말한다.
"조선 유교 이만한 사람 있기 위하여
5백년 수작 헛되지 않았다"고.
대체 얼마나 훌륭한 분이셨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성균관의 맥을 잇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백범이 성균관대학 초대 육성회장 자리를 두 말 없이 받아주었다.
미군정청 유억겸 문교장관에게 설립인가를 빨리 내달라고 재촉했다.
성균관, 성균관대학 그리고 심산과 관계되는 일이라면 언제나 앞장섰다.
심산에 그에 못지 않았다.
이승만 독재 대통령은
1959년 아시안게임 운동장을 조성한다며 효창원을 이전시키려 했다.
"이곳이 어느 분들이 잠든 유택인 줄 아느냐"며
불편한 다리를 끌고 날마다 1인시위를 벌이며 반대했다.
아, 앉은뱅이 그분이 '1인시위 원조'라니?
의열단 김원봉 단장이 해방이후 남조선에서
친일경찰에서 뺨을 맞고 3일 동안 통곡했다는 비극적인 일화가 떠오른다.
심산 덕분에 오늘날 백범과 윤봉길의사, 이봉창의사, 백정기의사가 잠든
효창원이 그나마 존속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자,
몇몇이나 될까.
겨레의 스승, 두 분의 우정이 죽어서도
빛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