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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세 시대,
21세기 현대인의 무술 수련은 - 1부
https://m.cafe.daum.net/enlightenment-k/dcM5/184?svc=cafeapp
B. 무술 수련의 본질이, 곧 인간 삶의 이치다.
본 장은 인간 삶의 이치가 곧 무술 수련의 본질이고, 핵심이 된다는 말인데, 여기서 언급되는 무술 수련이란 단어 대신 각자의 필요한 혹은 관심있는 말로 바꾸어도 그 내용은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령, 무술 수련 대신 어떤 스포츠 종목이건, 어떤 수행이든, 어떤 종교나 철학이든, 그 표현에서 다소 다르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 기본 이치란, 인간 유사 이래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인간도 자연의 지극히 작은 한 부분으로서 똑같은 이치 하에, 나타나고 변화하고 사라지는 한정된 굴레 아래 존재하기에,
동일할 수밖에 없다. 아니라면, 여기서 본인이 말하는 기본은 잘못된 것이 된다.
따라서 본인이 출간한 영문판, "잃어버린 무술의 반쪽을 찾아서"라는 말도 무술의 반쪽 대신, 마음의 반쪽이라든지 적절한 말을 넣으면, 그것은 인간 삶의 영위에서 부족하거나 빠져있는 부분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설사 그 기본을 안다하더라도, 그렇게 배우거나 가르쳐보지 않았기에 모든 사물을 연결해서 볼 수 있는 부분이 부족함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알게 된다면, 세상을 보는 눈이 공정하고, 치우지지 않으며, 마음의 나와 육체의 나가 함께 갈 수 있게 되며,
그게 자연과 내가 하나 된다는 말로 체험해 볼 수도 있게 된다.
자연과 내가 하나 된다는 말은 다음 장 3부에서 조금 더 설명해 보기로 한다.
"체험한다는 말"은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그 기본이 체득되어 있기에, 순간순간 그때그때 즉시즉시, 부족함이나 잘못함이 있더라도,
올바르게 가는 기운의 흐름을 쫒아가도록 더 효율적으로 노력할 수 있다는 말이다. - 삶, 즉 수행
암튼, 여기서는 이렇게도 생각해 보면서, 각자 생각을 나름대로 가져보는 것이지, 본인의 생각이 꼭 맞다고 하지 않는다.
왜냐면,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것을 증명할 수도 없으며, 설사 설명한들 본인만 어리석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자 생각 속에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자신의 의식 수준과 정도에 맞는 깨달음만이
현재의 자신을 자신에 맞는 올바른 길로 가게 할 것이다. -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1. 삶, 즉 수행
참조 :
■ 한국어 강의
2019년 4월 18일 Youtube channel (한국어 강의) – 무술과 수행
제4차산업혁명시대에서 "인성"을 강조해야 하는 이유는?
http://www.haedongkumdo.co.kr/?p=1970
■ 영어 강의 두 편
http://www.haedongkumdo.co.kr/?p=1963
http://www.haedongkumdo.co.kr/?p=1959
1) 무술 수련 (인간 활동)의 기본 핵심은 기운의 흐름이다. - 무술 철학 (삶의 철학)
세상 만사 모든 이치는 하나로 흐른다고 하였다.
즉 만물은 하나의 이치 아래 놓여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하나의 이치란 가장 근본이 되는 핵심을 말하는 것이며,
모든 동작의 근간을 의미하며,
그게 기운의 흐름이다.
그것은 비단 무술 수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을 움직이는 모든 기운을 말한다.
따라서 그 움직임의 실체를 알아가는 것,
그것은 보이지 않고, 알 수없기에,
끊임없이 알기 위해 노력하고 전진하면서
엎어지고 깨닫고, 돌아서니 잊어먹고, 부딪쳐보니 또 아닌게 되니, 다시 또 깨달아
끊임없이 바른 길로 정진하는 그 자체, 그 모습이 인간 삶, 즉 수행이다.
수행, 혹은 도를 닦는다는 등의 말은 인간의 실생활 속에 있다는 것이며,
지극히 현실적이며, 실용적이고, 유용한 한 것을 말하는 것이니,
비현실적이거나, 미신적이거나, 기복적이거나, 신비적인 것들에 현혹되지 말라는 것이다.
즉 올바른 무술 수련이란,
모든 삶의 일상적 행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듯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움직임 (행동) 속에 고쳐가면서, 성숙, 발전하는 것에 있다.
그 올바른 수련 이치의 근본적인 본질은
기운 그 자체이며, 사랑이고, 빛이며, 삼라만상 생동력의 근간이 된다.
너무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다. 그게 진리이며, 법이고 이치라는 것이다.
삭발하고 새 마음 새 뜻으로 어디엔가 가본들,
목줄 맨 까만 칼라 정장 입어본들,
경전 가슴에 안고 보배로 여겨본들,
본래 인간이 순간순간 깨달아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 하고는
사실상 거리가 한참 멀다.
왜냐면, 21세기 현대인의 현재 생활의 관점,
즉 현대인들의 의식과 가치관에서
본다면, 수준이 한참 뒤떨어져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손바닥 위 폰 하나로 클릭 한 번이면
보고 싶고 알고 싶은 것 순간 다 알게 되는 가속화되고 있는
세상이라는 말이다.
올바른 수련 (생활)의 이치를 배운다는 것은
삼라만상을 움직이고 살아있게 하는 기운의 흐름에 대한 실체를 알아차리고
거기에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 모든 수련의 기본이자, 핵심이 된다.
모든 경전과 모든 수행 시스템의 기본이 되며, 모든 심신 수련의 근간이 될 수밖에 없다.
아니면 잘못된 것이다. 왜냐면, 기본이란 인간 유사 이래 변치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인은 글을 쓰는 전문가도 아니며, 종교나 철학을 연구하는 학자도 아니며,
불경, 성경을 공부한 박식한 사람도 아니다. 단지 인간 삶의 바탕이 되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가장 핵심적이며 가장 기본이 되는
하나의 이치를 안다는 것에 사명감을 가지고 이렇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것은 남보다 좀 더 많은 관심과 지속적인 노력으로 알게 되는 것이지
뛰어난 그 어떤 것도 없다. 알게 되면,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나름의 가치관과 의식을 가지고,
하고자 하는 바에 열심히 평범하고 여유롭게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게 된다.
■참고:
https://cafe.daum.net/enlightenment-k/dcM5/170
2) 무술 수련 (일상생활) 기본의 깨달음
무술 수련 (일상생활) 기본의 깨달음이란,
학문과 상관없으며, 아무리 유명한 그 어떤 경전과도 상관이 없다.
즉 가방 끈 길이나 그 어떤 스팩과도 상관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본인의 말이 아니라, 수많은 선각자들에 의해 수 천년 전부터 그렇게 회자되고 있다.
무술의 창시자나 어떤 종목의 스포츠 지도자라도,
특히 어떤 종교나 철학의 유명한 지도자나 학자라도
여기서 이야기하는 기본, 즉 기운의 흐름을 내가 느끼거나 보거나 듣거나 하여
스스로 체득하여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모래밭에 성을 쌓아갈 뿐이며,
자신도 모르게 높아지는 아상을 스스로는 결코 볼 수 없게 된다.
이 세상에 올 때도 정신없이 왔지만 갈 때도 오리무중이 된다는 말이며,
빈깡통 소리가 요란하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가끔 유튜브에서 유명 철학자나 종교인들의 강좌를 통해
이러한 기본의 바탕 여부를 기준으로 각자 나름대로의 주관과 판단을 해 볼 수도 있다.
왜냐면, 그 기본을 바탕으로 한 무술 수련 (일상생활)이란
몸 움직임의 이치를 알게 하고, - 지혜 - 깨달음 - 새로움에 대한 도전
몸 에너지의 막힘과 열림을 알아차리게 하며, - 알아차림 - 조화와 균형 - 실천
상대의 불편한 곳을 바로 잡기도 하면서 - 마음챙김 - 반성과 다짐
모든 삶의 이치와 연결되어 있음을 공부할 수 있기때문이다. - 깨달음과 감사
움직임의 기본이 된다는 실체를 찾아 보려니,
보이지도 않고 닿을 수도 없으니, 알 길이 없고,
인간사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으니
나도 고생, 너두 고생,
고행이란다.
고행!?
모르니 고행이고,
그렇게 배우고 가르쳐본 적이 들은 적도 없으니
다들 고행이라고 한다.
모두 다, 본인이 그렇게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용 써다 힘드니, 수명이 다하면
몽롱해져서 정신없이 그저 갈 뿐이다.
여기가 좋다, 저기가 좋다하여 막상
쫒아다녀보니, 결국은 거기서 거기다.
가는 곳마다 공짜가 없으니
전부 다 돈 달랜다.
복 준다고,
건강 준다고,
행복준다고.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니
신세 타령, 팔자 타령
이판사판 열내봐도,
변하는 건 없고,
양손발과 마음만 고생할 뿐이다.
니 편, 내 편, 싸잡아 돌더니
권모술수와 시시비비에 고래싸움 새우등 터진다.
결국엔 모두 등을 돌리게 되니,
지질이도 못난 자기 탓은 알 길이 없고
남의 탓만 늘어놓는다. 그게 아프게 한다.
기본 바탕이 없으니,
군중심리에 부하뇌동하여
간이고 쓸개고 다 녹아도, 남는 게 없다.
믿을 이 없고, 피해의식만 잔뜩 부풀어지니
아프기까지도 한다. 결국 산으로 간다, 자연인이 된다라고 한다.
아무리 학식이 높고 고명한 사람이라도
그 기본이 체득되지 않으면
뭔가, 그 뭔가가 있을 법한 그걸 못찾으니, 항상 정신적으로 허기가 지고,
가까운 이들이 아프거나 병들어 가는 모습에 고민과 생각도 해 보지만,
나 자신을 알 수가 없으니, 종교에 귀의도 하는 등 여러 현상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모두 다가, 기본 이치를 몸과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한
"인간의 욕심과 무지"에서 기인된다.
삼라만상을 통털어 제일 말 안듣는 동물이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지질이도 못난 게 인간이라고 한다.
3) 무술 수련 (일상생활)의 본질 - 스스로 깨달아, 삶 속 유용하게 써 먹는 것
삶, 즉 수행, 즉 무술 수련에서 핵심은 "기운의 흐름"이라고 했으며,
그 수행의 원천적 본질과 실체는 "기운" (사랑, 빛)이다.
그 기운의 흐름을 느끼거나 보거나 하여 따라가는 것,
즉 내 몸을 자연의 기운에 맡기는 것, 혹은
자연의 기운이나 빛 속에 머물게 하는 것,
자연이 나를 빛으로 감싸 데려가는 것 등 여러가지 표현을 해 볼 수 있다.
암튼, 그것은
스스로 찾아서, 스스로 부딪쳐서, 스스로 체험하여, 스스로 깨달아, 스스로 지혜를 가지고,
스스로 바른길을 찾아가는 것이 수련의 정도가 되며, 삶의 바른 길이 된다.
무술 수련 자체가 인간 삶의 일부분이며,
인간 삶 그 자체가 수행이기에, 그것은 내 속에서 찾아야 된다.
그래서 수행을 깨달음의 길, 중도의 길, 지혜의 길 등으로 표현하기에
자칫 비현실적으로나 신비적으로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근데, 재미난 것은 불경, 성경을 비롯한 모든 경전에서 그 기본의 체득에 대해서 언급되고 있음에도,
그렇게 읽고 배워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누가, 혹은 무엇이, 나 자신을 비롯한 이 세상 만물을 움직이느냐를
알아차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공사상의 핵심이 되며,
모든 종교에서 찾고있는 믿음과 사랑의 실체에 다가서는 모든 행위가 각 종교의 핵심이 된다.
그 기본이 기운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며, 그 기운의 실체가
이 세상을 움직이는 기운, 즉 자연의 사랑, 혹은 자연의 빛,
종교적으로는 하느님 혹은 부처님의 사랑 혹은 믿음 등으로 표현한다.
결국 모든 이치는 하나로 움직이고 있다는 너무나도 보편적 사실을 체득하게 된다면,
종교에서 종파란 그 역시 인간의 무지와 욕심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실체는 누가 보여주거나 증명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찾아서, 스스로 보아서, 스스로 체험하여,
스스로 깨달아, 스스로 실생활에 실용적으로 유용하게 써 먹어야 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찾을 이유가 없다.
그것은 스스로의 몸과 마음의 경험을 통해 이해되고, 깨달아 알아차리게 된다.
매사 모든 일이 그렇듯이, 뭔가 이해하고 나면 겨우 시작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도 모르고 가는 것이 다반사다.
결국 "무술 수련 (인간 삶)의 기본 핵심"은
한 동작 ( 한 마디의 말과 생각과 행동 - 마음씀씀이)에 다 포함되어 있으며,
그 기본이란 밤낮으로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든 일에 있어서 기본기를 외치는 것이다.
"무술 철학 (인간 삶의 철학)"이란
수련의 한 움직임 (한 마디의 말과 생각과 행동 - 마음씀씀이)을 통해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찾아 - 최선의 노력
사유하면서 올바른 생각을 이끌어 내고, - 깨달음
그것을 바탕으로 무술 고유 (각자 나름)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 올바른 의식과 가치관
내가 하는 그 무술 (나 자신과 주변)을 좋게 만들 뿐만 아니라, - 실천
나 자신을 성숙,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기에 - 인간 삶의 목적
그게 필요한 것이다.
4) 무술, 그리고 종교와 철학 - 세상 모든 이치는 하나로 움직인다.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 할 것이다. 아니, 무술 수련을 이야기 하면서 왜, 자꾸 종교나 철학을 꺼집어내냐고.
그것은 인간 삶 자체의 기본은 전부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며, 즉 똑같은 이치 아래 있기에 기왕지사 한 가지를 기준으로 두루 설명하여 이해의 폭을 높이고 다양한 생각을 통해 각자의 생각 속에 나름의 깨달음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인간사에 대한 진리를 찾는 것이 종교이고, 철학이고 인문학이기, 거기에는 인간 유사 이래 수많은 이야기들이 함축되어 있기에, 그런 예를 가지고 설명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종교나 철학이나 어떤 인문학에 있어서도, 사람이 가장 먼저다.
그래서 필요에 의해 그것들이 나온 것이며,
사람의 무지와 욕심에 의해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지고,
삶의 기본이 되는 이치와 진리와 법들을 스스로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더 돈독히 하기 위해
학문화되고 정치와 권력에 악용이 되어왔기에,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는 기본이 가려져 버렸다.
글을 몰랐던 시절의 사람들이 그것을 배워,
후에 글을 배운 사람들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수많은 경전들에도 그 헛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본인은 수없이 이야기한다.
종교나 철학 속 수많은 경전을 공부하고 싶다면, 인간 삶의 핵심과
세상 돌아가는 이치의 기본을 먼저 알고 배우라고 한다.
왜냐면, 무술 뿐만 아니라 종교, 철학 등에서 인간사 모든 것의 기본을 바탕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즉, 세상 모든 이치는 하나로 돌아가기에 그 기본을 먼저 알아야, 이해가 쉬워지며
자신의 공부를 앞서가게 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지극히 간단, 명료하며,
그 핵심이 곧 진리이며 법이고 이치다,
삶, 즉 수행의 알파요 오메가다.
그래야 경전 속 모든 말들이 보다 쉽게 이해되고,
잘못된 부분도 나름대로 짚어볼 수 있게 되며,
그 시대에 맞게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으며, 샛길로 빠지지 않는다.
즉 스스로 성숙하고 발전시키는 공부가 되며,
자기가 믿는 종교를 더 좋게 만들 수있게 된다.
아니라면, 십중팔구 엉뚱한 길로 빠진다.
왜냐면 자기 우물을 벗어나지 못하기때문이다.
2. 삶의 핵심 - 추세 부응
1) 삶의 핵심과 사랑해야 하는 이유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는 말은
마지막까지 돈을 벌어야 된다는 말과 유사하게 설명해 볼 수도 있다.
왜냐면 죽을 때도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 물질적인 것은 죽을 때까지
같이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다. 단지 분수에 맞게 각자의 조건과 상황에 맞게 해야 되기에,
근검 절약, 혹은 중용이나 중도라는 말이, 각자 자신을 마지막 생의 목적지까지 올바르게 데리고 가는 것에
참 좋은 말이기도 하다.
아무리 훌륭하고 존경받는 철학자나 종교 지도자라 할지라도,
아무리 오래되고 귀한 책자의 내용이라도, 가장 기본이 되는 핵심으로 잣대를 대고 살펴본다면,
그 수준의 높고 낮음과 진위 여부는, 본인의 수준과 정도에 따라,
다소 쉽게 나름의 판단을 가질 수 있다.
즉, 하지 않아도 될, 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행하는 수많은 예식과 예법들,
사람들을 허상과 허구에 몰아넣는 수많은 지식인들과 정치인,
그들의 하고자 하는 바를 나름 꿰뚫어 볼 수도 있다는 말이며,
거기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느 절이 좋고,
어느 교회가 유명하고, 기가 세다는 소문난 어떤 장소에든 가본들,
그게 나를 깨우쳐주는 법은 없다.
밤을 새워하는 기도나, 뭔가를 돌리고, 뭔가를 암송하고,
기이한 행동이나 비상식적 예식이나 돈을 받친다거나 해서
하고 싶은 것을 얻고, 소원을 이루어지는 그런 세상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다 인간의 욕심과 무지에서 나온다.
즉, 삶의 핵심은
그냥 건강하게 - 마음씀씀이
잘 먹고 잘 자고 - 조화와 균형 - 건강
주변과 잘 지내고 - 이해와 소통 - 추세 부응
여유되면 서로 돕고 베풀고 - 베풂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 최선
사는 날까지 반성하고 다짐하고 감사하면 된다. - 기도
그게 나를 아프지 않게 하고,
그게 나를 덜 불편하고, 덜 어렵게 하며,
일이 술술 풀린다는 것도
내 스스로가 미리 그렇게 만들어야 된다는 그 이치가 거기에 담겨져 있다.
내가 왜 남을 사랑해야 되며,
내가 왜 남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며,
내가 왜 남에게 베풀어야 하는가는,
전부 다 나 자신을 위해서다.
2) 진정한 깨달음과 백세 시대의 무술 수련
종교 속 믿음의 틀 안에서는
그것을 현실화하고, 내 의식을 우주의식으로 승화,
혹은 뭘 깨닫는다고 한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 기만이고 술책일 수가 있다.
그것은 지나온 역사 속에서 그러한 예는 쉽게 찾아진다.
그래서 진정한 깨달음은
기존 믿음의 틀에서 벗어나야 하며,
그래야 나의 현재 의식이 움직이고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게 아니라면, 허상 속에서 헤매이는 것이며, 꿈 속에서 유토피아를 찾는 격이 된다.
세상 이치가 그렇게 돌아간다는 것이지, 그것은 결코 본인의 말이 아니다.
만물이 생동하고 변화하여 열매를 맺는 것이나, 인간이 생로병사를 겪는 것이나
똑같은 하나의 이치대로 가는 것이며, 그것은 기운이 나타나서, 변화의 과정을 거치고,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 호흡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숨이 들어와서 (나타남), 과정을 거치고 (변화), 다시 나간다. (사라짐)
많은 무술 수련인들이 여기 기본을 간과했다면, 한평생 노력한들, 똑같은 자리에 맴돌 뿐이다.
각자가 원하는 그런 꿈, 무술 영화나 드라마 속 진기명기 같은 초월적, 비현실적 상황에 세뇌되지 말라는 것이며
그같은 현실은 결코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이며, 나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마지막 갈 때 손익분기점 따지는 것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멋있게 폼 잡고 싶어서라면 자기 기량에 맞추어 즐기면 된다.
그게 취미 생활이며, 그것 또한 세월이 감에 나의 몸 상태와 상황을 잘 알아야 하니,
여기서 언급되는 그 기본을 간과하면 결국 내 몸이 힘들거나, 결국 아프게 된다.
백세 시대의 무술 수련 (일상생활)이란,
결국 현재 자신의 건강과 상황을 잘 살피고
올바른 양심과 이성을 가지고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수시로 잘 챙기고 알아차려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있다.
결국 그것은 기본 이치를 말하는 것이며, 그 기본을 간과한 그 어떤 것도 미래에 바라는 소망은 헛된 욕심과 무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기본은 비단 육체적 기술의 연마 뿐만이 아니라, 자기 생활 속 말이나 행동, 생각에 까지 기운의 흐름에 의한 각 동작들과 신체 장기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다면, 좀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이며, 그게 힐링과 연결됨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것을 알게 되면 결국 무의 동원과 일체유심조라는 말의 의미가 실감나게 들리게 될 것이다. 그것을 모른다는 것은,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며, 한평생 지도자로서 가르쳤다해도, 처음 들어보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들은 적은 있지만, 모르니 무시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3) 기본의 체득 - 기무체
본인이 최근 영문판으로 ,"Searching for the Forgotten Half in Martial Arts (잃어버린 무술의 반쪽을 찾아서)" 를 출간하였다. 21세기 처음으로 나타내는 무술의 비밀을 밝힌다라고 책소개를 하고 있다.
사실 그 무술의 비밀이란 위에서 줄곧 설명하고 있는 그 기본의 체득을 말한다.
(Self-Acquirement - Body-Magnetization)
본래 진리란 지극히 간단하고 명료하며 복잡지 않다.
항상 인간 세상 속 진리란 인간 욕심과 무지에 의해 항상 장막이 쳐져있다.
그래서 인간은 공부해야 올바른 이성적, 합리적, 판단이 가능하며,
그것 역시 충분함이 없기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인간은 본래 그렇게 만들어져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둘 중 하나다.
정상적인 사람과 비정상적인 사람, 된 사람과 덜 된사람.
무술 수련은 곧 수행이다. 모든 세상만사 이어져 있기에, 종교나 철학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구석구석 살펴볼 수도 있다.
왜냐면 내 공부이기 때문이며, 그게 나를 키우기 때문이다.
특히 대선을 앞둔 지금의 현실을, 정상과 비정상, 합리와 비합리, 이성과 비이성을 바탕으로 직시해 보면
혼돈의 세상인 건 완연하다. 더 심하게 말해본다면, 수성을 가진 *과 이성을 가진 자로도 구분이 가능해진다.
암튼, "잃어버린 무술의 반쪽을 찾아서"의 한글판은 이미 다 정리되어 있으나, 아직 출간되지 않은 상태다.
여기 저기 지구촌 곳곳에 책 (영문판)이 배달되고 있다. 오늘은 유럽의 어느 나라, 어제는 아프리카 대륙, 남미, 북미, 호주, 어제도 호주에 책을 보냈다. 넘 재밌고 보람을 솔솔 느끼는 매일 매일의 순간들이다.
받은 사람은 거의가 질문이 시작되고 대화가 시작된다. 그래서 요즘은 온라인상으로 유난히 바쁘다. 코로나로 거의 매달 나가던 해외 순방을 못하니 온라인으로 하게 되지만, 오늘도 보람을 느끼며, 아침부터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교감이 시작된다.
해동검도를 통해 알게 되고 배우고 생각하고 경험했던 여러 가지 것들이 많은 지구촌의 많은 무술인들에 의해 읽혀지고 있다.
사실, 그 내용들은 무술인들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기존 의식을 새롭게 하면서, 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고,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많은 도표와 설명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기에, 누구나다 읽어서 도움이 되는 책이다.
특히 무술 지도자뿐만 아니라 종교나 철학을 지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사람들에게 배워야 할 가장 기본을 이렇게도 설명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통해
각자의 생각을 폭넓게 해주는 책으로서 본인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펴낸 책이기도 하다.
무술 수련에서 기본이란 에너지 흐름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을 가지고 오랜 수련을 거치면서 몸과 마음을 가꾸어 가는 수행의 바탕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기운의 흐름을 이해하고 체감하면서, 오랜 세월을 통해
몸자체를 기운과 함께 가게 하는 몸체,
기운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몸체,
자연의 기운으로 데리고 갈 수 있는 몸체,
자연의 기운으로 공부할 수 있는 몸체,
자연의 파장 혹은 사랑으로 수행하는 몸체로 닦아가는 것.
상기 모두 다 같은 의미다.
그 본질을 알아차리면 더 많은 표현도 가능하며
종교적 표현의 단어도 실재한다. - 본인은 그것을 기무체라는 단어로서 설명하고 있다.
무술이나 종교나 철학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과거 그렇게 배우고 가르쳐보지 않았고,
설사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본 적이 있다 한들 본인이 체험해 보지 못한 이상,
결코 그 단어를 앞에 내놓지 못할 것이다.
결국 교회고 절이고, 인간사 매사 일들이 그냥 답습되는 메뉴얼대로 하게 되며,
그렇게 대물림되고 있는 많은 부분들을 볼 수가 있다. (글쓴이 : 김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