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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장입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자신을 밝히고 놀라는 형제들을 위로하며 아버지께 올라가서 자기에게 내려오게 하라고 부탁하며 형제들의 목을 안고 우는 내용입니다(1-15절).
유다의 가족 이야기를 들은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습니다(1절).
요셉은 유다의 가족 이야기와 함께 간청함을 듣고 자신이 형제들에게 정탐꾼과 도둑으로 시험한 모든 계획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고서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과 이스라엘을 위해 억제 하였던 사랑의 감정이 터지고 맙니다.
그리고 그는 형제들에게 지금까지 감추어 왔었던 자신의 신분을 밝히 드러냅니다. 요셉이 소리 높여 우니 “애굽 사람들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2절)
자신의 신분을 알린 요셉은 형제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나이까”라며 아버지의 생존을 묻지만 형제들은 놀라서 능히 대답하지 못합니다(3절). 그것은 그들이 그동안 철저히 숨겨 왔던 범죄 사실이 다 드러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먼저 형들의 숨겨둔 범죄 사실을 드러내어 말하는데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4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형제들이 지금까지 은밀하게 누구에게도 밝히 말하지 못하고서 숨겨둔 자신들의 범죄 사실이 드러나고 맙니다. 유다는 창세기44장16절에서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라고 회개했으나 그 죄악에 대해 소상히 드러나지는 않았던 것을 요셉 스스로 드러낸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중심을 아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사역입니다. 요셉은 이스라엘 안에서 벌어진 모든 행위의 주체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 자리까지 있게 되었음을 설명합니다.
형제들의 가슴 은밀한 곳에서는, 동생 요셉을 은 이십에 팔아버렸고 그리고 그것을 아버지께는 동생 요셉이 죽었다고 거짓말한 것이 지워지지 않고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라고 회개하면서도 자신들의 입으로는 결코 소상히 말하지 못하는 것을 당사자인 요셉이 직접 말하면서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되었다는 설명을 듣게 되는데,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5절)라고 말입니다.
자기들의 죄가 밝혀지므로 두렵고 놀라서 말도 못하는 형들을 위로하며, 자신이 어릴 적 꾼 꿈으로부터 시작하여 이 모든 일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셨음을 설명해 줍니다.
이 말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께서 한시도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셨으며, 그가 하신 언약으로 말미암아 요셉 자신을 앞서 애굽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백성된 우리가 서로 잘잘못을 가릴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향한 뜻을 드러내시고자 자신을 팔게 두셨고 그리고 애굽에서 종살이와 옥살이를 감당하게 하시는 가운데에 총리가 되게 하셨고 그리고 형제들을 왜 시험하게 되었는지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한탄하지 마소서’라는 말의 뜻은 ‘당신들 스스로에게 화내지 마소서’입니다. 자신들이 팔았던 동생 요셉이 애굽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총리가 되었으니 죽을 죄를 지은 것이라고 스스로 비관하지 말라는 권면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화내지 마소서’와 함께 일시적인 금지를 나타내는 것이며 일단 마음을 진정하고 자신의 설명을 들으라는 의미입니다.
위의 본문에서 ‘~보내셨나이다’라는 동사가 참 중요합니다. 이는 요셉이라는 자신이 스스로를 알고 설명하는 핵심적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보내셨나이다’에 해당하는 ‘쉘라하니’의 기본형 ‘솰라흐(שׁלת)’는 ‘보내다’라는 뜻을 지니나 성경에서는 많은 경우 하나님의 말씀 곧 ‘구원’이나, ‘재앙’에 관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사자를 보낼 때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약 성경의 헬라어 번역본인 70인역은 ‘솰라흐’를 ‘아포스텔로(ἀποστέλλω)’라고 번역하였는데, 이 말이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 전파를 위해 보내신 ‘사도’를 의미하는 ‘아포스톨로스’ 곧 ‘보냄을 받은 자’의 어원이 되었습니다(마10:2,눅17:5,롬1:1).
따라서 요셉이 ‘당신들 앞서 나를 보내셨나이다’라고 한 말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먼저 애굽으로 ‘보냄을 받은 자’가 되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실제로 요셉을 애굽으로 판 자들은 형들이었으나 본문의 주어가 ‘하나님(엘로힘)’으로 나오는 데서도 확인됩니다.
즉 요셉의 형제들이 시기심 때문에 요셉을 미디안 사람들에게 팔았던 이 사건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될 야곱(이스라엘) 일가의 생명을, 열조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언약대로 보존시키고 생육 번성하게 하기 위하여 먼저 요셉을 애굽에서 준비시키는 과정으로 사용하셨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어 6절에서 요셉은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고 하며 미래적인 일을 확정적인 것처럼 확신을 갖고 형제들에게 말을 합니다.
요셉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오 년’은 더 흉년을 주실 것이므로 ‘농사가 안된다’라고 형제들에게 말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흉년이 아직 오 년은 더 계속된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7,8절)고 말합니다.
요셉은 하나님 절대 의존적 신앙자입니다. 하나님 계시에 대한 절대적 믿음의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고난과 고통이 형들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의 생명을 보존하시려고 먼저 보내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셉의 신앙에는 ‘자아’가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시작과 끝의 주체가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셉과 형제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해야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보내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이며 예표입니다. 그는 형제들로 말미암아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죽음의 구덩이에 들어가서 다시 살아나 애굽으로 들어갔으며, 그 애굽 역시 쇠풀무 즉, 용광로와 같은 곳입니다(렘11;4). 곧 죽음의 자리이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 용광로에서 살아나 애굽과 온 땅의 주인이 되었고 그리고 양식을 공급하는 자가 되었으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보존하는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다음은 형제들입니다. 이들은 요셉에게 범죄했습니다. 요셉을 구덩이에 죽였다가 용광로와 같은 애굽으로 팔았습니다. 이 역시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을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형제들을 용서를 해야만 진정한 용서가 되어 화목이 됩니다.
요셉은 자신이 당한 모든 고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깨달아서 이미 형제들을 용서했습니다. 그러나 그냥 용서하지 않습니다. 저들에게 징계를 가하여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세우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가능 여부가 없습니다. 그는 전능자로서 오직 하나뿐입니다.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은 고난가운데 깨닫게 되고 요셉의 계획대로 돌아섭니다.
7절에서 요셉은, 우리 가족뿐 아니라 형제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애굽으로 보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를 애굽으로 보낸 이는 나를 판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다는 것입니다.
또한 요셉 자신이 총리가 된 것은 자신의 뛰어남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위하여 자신을 사용하셨음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적 신앙입니다】
요셉뿐만이 아닙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왕궁과 광야로 몰았습니까? 모세가 의도적으로 왕궁으로 들어갔나요? 모세가 작정을 하고 광야로 도망갔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도구로 사용하신 것뿐입니다. 또한 바울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복음의 일꾼으로 삼으시고자 먼저 예수를 핍박하는 자가 되게 하신 가운데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를 도구로 삼으셔서 자기 백성을 온 땅에서 일으켜 세우십니다.
지금도 목회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 소속되어서 주의 복음의 일을 하는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자기의 이름만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능력과 지식 그리고 이름을 드러냅니다. 인간 자신과 교회는 있는데 예수와 그의 십자가는 없습니다. 요셉에 관한 내용을 읽지 않았나봅니다. 바울의 삶을 공부하지 않았나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작정가운데 전부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도구로 사용되어지는 것뿐이요 주께서 시작하시고 마침이 되십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렘33장2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장9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11장36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