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절에서 15절은 요셉이 형들에게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 자기의 말과 형제들이 본 모든 것을 고하여 속히 모시고 애굽으로 내려오라고 하면서 목을 안고 우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요셉의 태도는 형들의 잘못을 깨끗이 용서하였다는 표현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에게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9,10절)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자신이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세우셨으므로 된 것이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되었다면 아마도 끝없는 교만으로 가득하겠으나 하나님께서 세우셨음을 알고 믿기에 그는 겸손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평가합니다.
일반 사람들은 조금 무언가 자신이 기대하는 바대로 잘되면 우쭐하여 교만하고 그리고 무언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 망하거나 가세가 기울면 세상 무너지듯이 축 늘어지곤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모두 입으로는 하나님이 하신다라고 말하면서도 결국 모두 자신 스스로가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눈앞에 놓여진 결과에 따라 감정의 기복이 변하고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사를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라는 사실을 믿는 자는 자신의 눈앞에 되어진 결과 여부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에 상관없이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본문 9절에서는, 형태상의 대구를 이루는 두 부분이 하나의 뜻으로 연결된 것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속히...올라가서’와 ‘지체말고...내려오사’입니다. 꼭지점은 ‘가나안 땅’의 ‘아버지(집)’입니다. 이는 총리 요셉의 강조 형태이면서도 단호한 명령형입니다.
이것은 형제들이 동생 요셉에게 저지른 범죄가 밝혀진 것으로 인해 두려워하여 차일피일 미루거나 그리고 앞으로 남은 흉년의 심각성 때문이지만, 이면적 의미는 하나님의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간 동안 애굽에 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위의 본문에서 눈여겨 볼 지명 하나가 나오는데 그곳은 바로 ‘고센 땅’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아버지와 온 가족과 가축들이 있을 장소를 사전 지정한 것입니다. 요셉은 이 땅과 관련하여 바로에게는 목축하는 자들이라고 소개하라고 합니다(창46:34).
하지만 요셉의 본심은 그것이 아닙니다. 때가 되면 나갈 때에 신속하게 나가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함입니다. 야곱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창46:28)
요셉은 이어서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 당신들의 눈과 내 아우 베냐민의 눈이 보는 바 당신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입이라 당신들은 내가 애굽에서 누리는 영화와 당신들이 본 모든 것을 다 내 아버지께 아뢰고 속히 모시고 내려오소서”라고 말을 합니다(11~13).
요셉은 앞선 6절에서도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추수도 없다’고 하였고, 본문에서도 역시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계획을 믿음으로 분명하게 형제들에게 전달하며 고센 땅에서 아버지와 아버지의 모든 가족을 봉양할 것임을, 형제들이 눈으로 본대로 아버지에게 전하여서 속히 애굽으로 내려오라고 말합니다.
말을 마친 요셉은 또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을 하게 됩니다(14,15절).
요셉이 형들과 동생 베냐민을 만난 감정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온 가족으로 속히 오라는 당부와 함께 또 베냐민과 형들과 목을 안고 우는 것입니다.
요셉이 울며 베냐민과 형제들에게 아버지의 안부와 함께 온 가족으로 애굽으로 속히 내려오라는 당부가 끝나자마자 그는 베냐민과 함께 모든 형제들의 목을 안고 더하여 웁니다.
지금까지 형제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의 상태에서 꼼짝달싹도 하지 못한 채 있다가 그제서야 요셉과 함께 말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요셉이 형들과 입을 맞추며 안고 한 것이 자신들을 향한 용서와 화해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형들은 요셉의 태도를 보고서 자기들의 잘못을 용서하였다는 것을 알고 그제야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과거의 잘못에 대하여 아무런 질책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형들 역시 아무런 변명 한 마디 없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이미 다 용서하였기 때문이고 형들은 자기들의 잘못이 다 용서되었기 때문입니다. 용서가 있는 곳에는 질책도 변명도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사랑과 감사와 감격의 눈물만이 있을 뿐입니다. 사랑은 죄인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여 그 허다한 죄를 용서하고 덮어 줍니다.
마치 둘째 아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온갖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고 다시 아버지 품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아무런 질책없이 사랑으로 용서하여 품에 안아주듯이 말입니다.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는 사건은, 하나님께서 긍휼과 자비로써 언약자손 곧 택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는 섭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언약자손의 죄는 그 열조들에게 세우신 언약을 이루어 주시려고 모든 용서와 보호하여 주신다는 확실한 증거를 계시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언약대로 오시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약 자손인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대신 지신 십자가로 말미암아 확증됩니다.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이 바로의 궁에 전해지자,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기뻐합니다(16절). 그리고 바로는 요셉에게 “네 형들에게 명령하기를 너희는 이렇게 하여 너희 양식을 싣고 가서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너희 아버지와 너희 가족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17,18절)고 말합니다.
당시 온 세상이 기근으로 인해 불안정한 가운데 애굽은 요셉으로 인해 태평성대 해지니 요셉의 가족들마저도 귀하게 여기는 바로와 그의 신하들입니다.
그래서 바로는 요셉으로 명하여 아버지와 모든 가족으로 애굽으로 오게 하라 하며 그리고 애굽의 좋은 땅과 기름진 것으로 맞이할 것을 약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