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이스라엘에게 언약의 보증을 하시는데,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고 하십니다(4절).
4절은 앞의 3절을 뒷받침하는 약속입니다. 보통 히브리어 문장에서는 인칭 대명사가 잘 사용되지 않은데도 본문에서는 특별히 ‘내가(아노키)’라는 단어가 문장의 서두에 나와 하나님 바로 자신이 행동의 주체가 되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너와 함께’에 해당하는 ‘임메카(עמך)’는 행동을 같이 하며 운명을 같이 하는 데도 사용되는 전치사 ‘임’에 2인칭 대명사 접두어 ‘카’가 결합된 형태로 하나님께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며 야곱을 지켜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즉 야곱으로 하여금 애굽으로 향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임마누엘’을 말씀하시며 ‘내주하시는 성령’을 뜻합니다.
이보다 더 큰 보증과 위로 그리고 확증은 없습니다. 이는 모든 주의 백성들에게 한결같고 변함없이 하신 약속이셨으며 그리고 행하여 주셨습니다. 주의 백성들의 행위나 형편 따위는 상관없이 말입니다. 야곱 이전에도 언약 백성들에게 동행해 주셨으며 야곱 이후의 자기 백성들과 동행해 주셨습니다.
이전 아브라함과 이삭과도 행위와는 상관없이 함께 하심으로 보증과 위로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 이전의, 아담과 셋과 에녹과 노아와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41장10절에서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고 하셨고 예수께서는 마태복음28장20절에서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사도행전18장10절에서 고린도 성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으로 살든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모든 일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뜻을 이루십니다. 그래서 인생은 우리가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항상 ‘꼬일 대로 꼬인다’는 느낌이 들도록 뒤틀면서 끌어가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낮추시고 나의 뜻을 포기하게 하시면서 하나님의 뜻과 일하심에 모든 것을 맡기는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야곱의 인생도 다르지 않습니다. 야곱의 인생에는 애굽으로 이주할 계획이 없었습니다. 요셉 역시 애굽의 총리가 될 계획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의해서 모두 애굽으로 모이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해 가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세상의 문제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 생각처럼 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믿음이 적어서 그런가’‘기도를 하지 않아서 그런가’라는 생각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으로 성도의 인생은 형통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라고 약속하시며 아들 요셉의 손으로 하여금 야곱의 눈을 감기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두 가지의 약속 모두 훗날 성취됩니다. 야곱은 요셉에 의해 장례가 되고 소원대로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되는데 이곳은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주고 싼 땅입니다(창50:1~5,23:8~23).
또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백 년의 섬김이 끝나는 기한에 모세와 함께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올라가게 됩니다(창15:13,출12:40~41). 출애굽기 12장에서의 430년은, 요셉과 함께 귀족 생활 30년과 종살이 400년을 합친 기간입니다.
‘내가...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에 해당하는 원어는 ‘웨아노키 아알르카 감 알로(ואנכי אעלך גם־עלה)’인데, 여기서 ‘웨아노키’는 ‘그리고’라는 뜻의 ‘와우(ו)’ 접속사와 1인칭 공성 단수형에 2인칭 남성 단수 접미어가 붙은 것으로 ‘내가 너를 올라오게 할 것이다’는 뜻입니다.
‘감’은 ‘또한’이란 뜻을 지닌 부사이며 ‘알로’는 어근 ‘알라’의 부정사 절대형입니다. 이와 같이 같은 동사의 히필형(아알르카)과 부정사 절대형(알로)이 연결되어 사용되면 결과의 확정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본문은 ‘내가 너를 확실히 올라오게 하고 올라오게 할 것이다’는 강조의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올라옴’에 대한 약속의 절대적인 성취를 강조하는 것이 됩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을 떠나기 전 브엘세바에서 여호와께 희생 제사를 드리는 그 밤에 하나님께서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셔서(1,2절) 위로와 약속의 말씀을 하시는 것은(3,4절) 선택하신 언약백성을 향한 일방적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찾아오심’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하나님께서 언제나 때를 따라 찾아오시고 다가오십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브엘세바에서의 하나님의 위로와 약속의 말씀과 함께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날새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바로가 그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에 자기들의 아버지 야곱과 자기들의 처자들을 태우고 그들의 가축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재물을 이끌었으며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다함께 애굽으로 갔더라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야곱으로” 떠났습니다(5~7절).
서두의 ‘떠날새’에 해당하는 원어는 ‘야캄(יקם)’인데 반해 1절의 ‘떠나’는 ‘나싸(נסע)’입니다. 한글성경은 같은 뜻으로 번역했으나 원문은 다릅니다. 1절의 ‘떠나다’는 야곱이 두려움가운데 떠나는 것을 말하지만 5절의 ‘떠나다’는 하나님의 확실하고도 든든한 언약을 받은 상태의 떠나는 모습을 뜻합니다.
즉 야곱이 이전 상황과 판이하게 달라진 상태를 나타내는 박진감 있는 표현인 것입니다. 야곱은 이제 단호히 가나안 지역의 경계인 브엘세바를 떠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 어법에서 본문에서와 같이 ‘와우(ו)’가 미완료형(야캄)과 함께 쓰이면 과거에 이미 완료된 동작을 나타내게 됩니다.
8절에서 27절까지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내려간 그의 가족들의 명단과 그 숫자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야곱의 자손이 빠짐없이 이방 땅 애굽으로 내려간 사실과 그 숫자를 분명히 밝히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애굽으로 내려간 자들의 숫자에 대한 것입니다.
본문에는 그 숫자가 야곱의 자부 외에 육십 육명과 애굽에 있는 요셉 부부와 아들 두 명을 더해서 도합이 칠십 명이라고 하였는데, 사도행전에는 스데반이 ‘요셉이 보내어 그 부친 야곱과 온 친족 일흔 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행7:14)라고 말한 내용과 숫자에 차이가 있습니다.
이에 관하여 주경학자들 간에 여러 가지의 견해들이 있으나 정확한 결론은 없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성급한 어떤 학자들은 성경의 정확무오성을 부정하는 근거로 삼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살펴보면, 요셉이 있는 애굽으로 내려온 자는 야곱의 아내들과 자부들을 제외한 육십 육 명이며, 애굽에 이른 자 칠십 명이라는 것은 육십 육 명에 야곱과 요셉 그리고 두 아들을 합한 숫자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전통에 따라 민족의 대표수로서 칠십 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언약 백성의 시조라는 것이며, 그들의 후손이 사백 년 후에 출애굽하여 장엄한 하나님의 구원사에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요셉이 보내어 그 부친 야곱과 온 친족 일흔 다섯 사람’이라는 것은, 당시 살아서 애굽으로 내려온 모든 친족 숫자‘를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