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장~50장까지와 출애굽기 1장~2장의 의미분석 |
언약자손들의 형통 | 자손의 생육과 시련 |
46장~47장 야곱 가족의 이거 48장~49장 야곱의 축복과 예언 50장 요셉의 위로와 약속 | 1장 자손의 생육과 애굽의 학대 2장 모세의 출생과 광야의 시련 |
47장1절부터는 요셉이 바로에게 형들을 소개하고 그로부터 땅을 주도록 하라는 허락을 받은 후에 아비 야곱을 소개하고 아비와 형들에게 땅과 식물을 주어 공궤하는 내용인데, 1절부터 6절까지는 먼저 요셉이 바로에게 아비와 형제들이 온 것을 보고하고 선택한 다섯 명의 형들을 소개하며 인사를 시키고서 고센 땅을 주도록 허락을 받는 내용입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1절)라고 보고합니다. 요셉은 고센 땅을 얻고자 바로에게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왔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목축업을 한다는 것을 바로가 인지하도록 한 것입니다.
앞서 바로는 요셉의 아버지와 형제들을 애굽으로 속히 올 것을 명하며, 애굽의 좋은 땅과 물건들이 있으니 기존의 집에 있는 물건들을 미련없이 버리고 오라고(창45:17~20) 했습니다. 물건들을 챙기다보면 지체가 되며 총리 요셉으로 인해 무엇이든 필요한 것을 공급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집에서 기르며 생업으로 하였던 ‘양과 소와 모든 가축’을 이끌고 왔습니다. 이는 애굽 땅에서 잘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때가 되면 본향을 향하여 출애굽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바로에게 가족들의 거주지로서 ‘고센 땅’이라고 지정하여 보고합니다. 그리고 그는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2절)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3상절)고 묻습니다. 이는 앞서 요셉이 형들에게 미리 바로의 물음을 예측하여 일러 준 질문입니다(창46:33).
이에 형제들은 바로에게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데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3하,4절)라고 대답합니다. 앞서 46장34절에서는 요셉이 아버지와 형들에게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라고 사전에 일러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면 목자의 신분을 숨기고 애굽인들이 좋아하는 생업을 가지려고 해야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라고 바로에게 자신들의 생업과 신분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형들은 동생 요셉의 총리직에 자신들을 기대지 않고 단지 바로에게 나그네로서의 간청하는 형식으로 대답을 한 것입니다.
또한 형제들이 애굽에 머무는 것에 대하여 위 본문은 ‘~거류하고자’라고 표현하는데 원문은 ‘라구르(לגוד)’라고 하며 뜻은 ‘잠시 동안 머물기 위하여’입니다. 즉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에 온 목적이 잠시 동안만 머무는 것임을 밝히는 말입니다. 한편 히브리어 ‘구르’는 특히 혈족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것, 즉 나그네로 낯선 지역에서 머무는 것을 뜻합니다.
위의 내용들이 확인시켜 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창15:13)이,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믿음이 되었으며 삶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 야곱과 모든 아들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요셉을 중심하여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고센 땅’이라는 것으로 분명해졌고 ‘목축’이라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형제들의 신분과 간청을 들은 바로는 요셉에게 “네 아버지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5,6절)고 하며 요셉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여 줍니다. 여호와께서 작정하신 뜻대로 섭리하여 가시는 일이기 때문에 언약자손들의 일이 모두 형통하게 잘 풀려가는 것입니다.
7절에서 12절까지는 요셉이 자기 아비 야곱을 바로에게 소개하여 인사를 하게 한 후에 아비와 형들에게 좋은 땅 라암셋을 주고 식물을 주어 봉양하는 내용입니다.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모시고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합니다(7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지자라고 하십니다(창20:7).
열조의 조상 중 아브라함이 선지자라면 이삭과 야곱 역시 선지자입니다. 선지자 야곱이 바로에게 하나님의 복을 빌어 준 것입니다. 또한 야곱은 하나님께 제사하는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지상의 군주에게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축복을 한 것입니다.
세상의 군주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없다면 그는 아무것도 없는 자요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만 하는 자입니다. 그러기에 야곱은, 비록 양식을 얻고 애굽의 총리로 있는 아들로부터 봉양을 받는 처지에 놓였어도,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한 애굽의 왕이라지만 하나님이 없는 그에게 만나자마자 처음으로 한 일은 하나님의 복을 기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바로는 야곱에게 “네 나이가 얼마냐”며 물을 때에(8절) 야곱은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9절) 바로에게 답하며 그에게 축복하고 나옵니다(10절).
이 말은 야곱이 살아온 지난 날을 회상하며 하는 말입니다. 지난날 야곱이 ‘험악한 세월을’ 보냈으나 이제는 요셉을 만나 형통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위의 본문에서 ‘나그네 길의 세월’은 ‘예메 쉐네 메구라이(יםל ני ימי)’인데, 뜻은 ‘머무름의 년들의 날들’로 표현됩니다. 여기서 ‘머무름(메구라이)’는 야곱이 이 세상에서의 삶도 잠시 머무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는 야곱이 생의 말년에 와서 그의 인생관의 변화를 뜻합니다(잠16:31 참조).
야곱은 세상의 모진 풍상을 경험한 후 말년에 와서 인생이란 이 땅에서 잠깐 ‘머무는 곳’이라는 순례자로서의 삶에 대한 인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고후4:18 참조).
실로 야곱이 깨달은 바와 같이 인생은 이 땅에서 영원히 지속되는 것도 아니며 이 땅의 삶만으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잠시 머무는 것에 불과하며, 인생은 순례자의 여정과도 같은 것입니다(히11:9,13 참조).
이어서 야곱은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여기서 ‘험악한 세월’은 단지 고생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이 아닌,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의 뜻에 의해 산 인생임을 의미합니다.
인생이 우리의 뜻대로 된다면 그것처럼 편안한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인생이 힘든 것은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험악한 인생입니다.
그런데 험악한 인생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고 세상을 제대로 보게 한다면 험악한 인생은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을 바라보는 야곱의 새로운 시각이었기 때문에 바로의 존재 위치나 힘을 초월하여 축복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가졌다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그 인생은 저주로 끝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바로에게 축복을 하고서 나옵니다(10절).
요셉은 바로가 지시한 대로,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살 곳을 주었는데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습니다(11,12절).
‘라암셋’은 ‘왕의 집’이라는 뜻인데, 고센 땅에 있는 한 도성 이름입니다. 이곳이 애굽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자손의 중심 거주지가 되었으며 또한 출애굽을 위하여 집결한 장소이기도 했습니다(출1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