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절에서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요셉의 소개를 받은 그의 두 아들에게 축복하기 위하여 오른손은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왼손은 장자 므낫세의 머리에 어긋맞겨 얹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이 자기에게 다가온 요셉의 아들들을 향하여 ‘이들은 누구냐’고 묻습니다(8절). 이스라엘도 아버지 이삭처럼 눈이 어두운 상태였습니다(10절상).
아버지의 물음에 요셉은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9절)고 대답합니다. 본문에서 요셉은 아들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주셨다’는 말을 히브리어로 ‘나탄(נתן־)’이라고 하는데, 뜻은 ‘주다’, ‘맡기다’, ‘위임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또는 위임하신 자들이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은 요셉이 데리고 온 아들들에게 복을 빌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은 늙어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요셉의 아들들에게 입맞추고 안고서(10절) 요셉에게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자손까지도 보게 하셨도다”(11절)라고 말합니다. 눈이 어둡다는 것은 자신을 의지하지 못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삭도 장자인 에서에게 축복을 하고자 할 때도 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손의 촉감만으로 아들을 판단하게 되었고 때에 에서의 팔처럼 위장한 야곱을 축복하였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이삭의 아내 리브가 태중에 쌍둥이가 있을 때 언약하신(창25:23 참조) 그대로 축복을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과 계시를 드러내시고자 열조의 조상들을 사용하신 섭리요 역사입니다.
위의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요셉과 그의 두 아들을 만나고 보게 하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보게 하셨도다’라는 표현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즉 야곱은 스스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은혜를 강권적으로 베푸셨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에 요셉은 이스라엘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이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서 절을 합니다(12절). 그런 다음에 요셉은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갑니다(13절).
여기서 ‘오른손으로 축복한다’는 것은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하나님의 권능과 축복이 부여되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장남이 누려야 하는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요셉도 이러한 히브리적 사고를 따라 장남인 므낫세를 야곱의 오른손 앞에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위의 본문 내용에서 요셉은 이스라엘이 장자를 오른손으로 축복하도록 하게 합니다. 그러나 요셉의 뜻과는 반대로 이스라엘은 손을 수정하여 아들들의 머리에 얹는데,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14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축복은 인간의 생각과 질서 그리고 자격과 조건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당연히 므낫세가 집안의 장자였으므로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것이라 생각했으므로 야곱이 아들의 머리에 손을 바꾸어 얹은 것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야곱 자신도 하나님에 의한 축복의 비밀을 알기 전에는 요셉과 동일한 생각이었기에 팥죽 한 그릇으로 형 에서의 장자 명분이라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적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