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설에서 가장 짧은 내용으로 가장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단편을 하나 들자면, 단연코 『삼포 가는 길』을 꼽을 수 있다.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주인공도 3인. 막노동꾼 노영달, 전과자 정씨, 술집 작부 백화가 고작이다.
작가가 주관적 의식을 배제한 채 절제된 문장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 소설의 스토리 역시 간결하다. 막 출소한 정 씨가 고향 삼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연히 영달과 백화를 만나게 되고, 잠시 동행을 하는 것이 전부다. 손에 땀이 나게 하는 긴장도, 재미난 에피소드도 없다. 눈길을 걸으며, 또 쉬어 가며 몇 마디 나누는 것이 고작이다.
“노형은 어디루 가쇼?”
“삼포에 갈까 하오.”
“방향 잘못 잡았수. 거긴 벽지나 다름없잖소. 이런 겨울철에.”
“내 고향이오.”
“같이 갑시다, 나두 월출리까진 같은 방향인데”
해전까지만 해도 삼천 원짜리 월세방에서 작부와 살림을 했던 영달은 엉겁결에 정 씨의 동행이 되고, 얼큰한 해장국과 막소주 한 병의 기운을 빌어 나선 길 위에는 성긴 눈발이 흩날린다. 언덕을 넘고, 강변을 따라 먼 산을 돌고, 인가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들판을 지나면 성긴 눈발은 함박눈이 된다. 감발 친 새끼줄이 꼬여 올 무렵, 술집에서 도망친 백화를 만난다.
“개새끼들 뭘 보구 지랄야.”
“외눈 쌍꺼풀인데 그래.”
“이거 왜 이래? 나 백화는 이래봬도 인천 노랑집에다, 대구 자갈마당 모두 겪은 년이라구. 조용히 시골 읍에서 수양하던 참인데……. 내 배 위로 사단 병력이 지나갔어. 국으로 가만있다가 조용한 데 가서 한 코 달라면 몰라두 치사하게 뚱보 돈 먹자구 나한테 공갈 때리면 너 죽구 나 죽는 거야.”
나이 열여덟에 가출한 백화는 이제 겨우 스물두 살. 그렇지만 삼십이 훨씬 넘은 여자처럼 조로해 보이는 관록이 붙은 술집 작부다. 매일 밤 귀향을 꿈꾸지만 정작 고향을 향해 나선 건 두 번뿐인, 그나마도 먼발치에서나 동리 모습을 지켜보는 생채기 많은 여인이다.
눈보라 속을 묵묵히 걷고 있는 3인에게 부여된 최초이자 마지막 파격은 ‘지붕 한쪽이 허물어져 입이 벌어져 있고 반쯤 토담이 무너진 폐가’다. 누군가가 살다가 먼 곳으로 떠나 버린, 구들장은 모두 주저앉았으나 봉당은 매끈하고 딴딴한 흙바닥이 그런대로 쉬어 가기에 알맞은 그곳에서 일행은 젖은 옷을 말리고, 툭툭 튀어 오르는 청솔 모닥불에 언 발과 마음을 녹인다.
“처음 잘못 소개를 받아 술집으로 팔려갔지요. 거기 갔을 땐 벌써 될 대루 되라는 식이어서 겁나는 것두 없었구요. 나이는 어렸지만 인생살이가 고달프다는 것두 깨달았단 말예요.”
“세상이란 게 따지면 고해 아닌가…….”
“그래 이젠 어떡할 셈요, 집에 가면.”
“시집가야지 뭐.”
“시집은 안 가요. 이제 와서 무슨 시집이에요. 조용히 틀어박혀 집의 농사나 거들지요. 동생들이 많아요.”
3인의 동행은 감천역에서 끝난다. 영달은 뒷주머니에서 나온 꼬깃꼬깃한 오백 원짜리 두 장으로 기차표와 삼립빵 두 개와 찐 달걀을 사서 백화에게 건네준다.
“아무도… 안 가나요.”
“우린 뒤차를 탈 텐데, 잘 가슈.”
“내 이름 백화가 아니에요. 본명은요… 이점례예요.”
5.16 쿠데타에 의해 탄생한 군사정부는 수출지향적 공업화정책을 위해 1962년부터 5개년을 단위로 경제개발계획을 실시한다. 농업중심의 산업구조를 수출주도형 공업구조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도로, 항만, 댐, 전력 등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이 최우선 순위로 결정되고 국가의 모든 가용자원이 생산부문에 집중된다. 또한 식량자급화 전략에 따라 곳곳의 해안이 메워지는 간척사업이 실시되고, 정 씨의 고향 삼포도 이를 비껴가지 못한다. 백화가 떠난 대합실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정 씨와 영달은 노인으로부터 고향소식을 듣는다.
“말두 말우. 거긴 지금 육지야. 바다에 방둑을 쌓아 놓구, 추럭이 수십 대씩 돌을 실어 나른다구. 뭐 관광호텔을 여러 채 짓는담서 복잡하기가 말할 수 없대. 맨 천지에 공사판 사람들에다 장까지 들어섰는걸.”
“그럼 나룻배두 없어졌겠네요.”
“바다 위로 신작로가 났는데, 나룻배는 뭐에 쓰오. 허허 사람이 많아지니 변고지, 사람이 많아지면 하늘을 잊는 법이거든.”
작가의 지인 이시영 씨가 ‘동해안의 감포를 떠올리면서 쓴 것 같다’고 말하는 삼포는 지도상에 없는 허구의 지명이다. 해남일 수도 있고 강진일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근대화의 뒤안으로 사라져 버린―유랑민들의 마음속에나 존재하는 고향……. 그래도 정 씨와 영달은 삼포행 열차에 오른다. 이제는 아득한 기억 속에서나 가물거리는 고향일지라도.
“그런데 삼포는 어느 쪽입니까?”
“남쪽 끝이오.”
“사람이 많이 사나요, 삼포라는 데는?”
“한 열 집 살까? 아름다운 섬이오. 비옥한 땅은 남아 돌구, 고기두 얼마든지 잡을 수 있구.”
첫댓글 울 식구분들, 즐거운 명절 되세여~~~
감포는 포항에 있고 삼포는. .'나도따라 삼포로 간다네~ ' 라는 노래자락에 숨어 있지요. ㅋ ㅋ
@Haemil-지훈 감포 포항 아녀라. 경주지라~~ㅋ
@andrew 아. .경주였나요? ㅎ ㅎ 딱 한번 가봤던 기억이 있는데 참 좋았어요. 등대 숲에서 차박하면서 즐거웠던. . 그때는 어딘지도 모르고 갔었죠.
@Haemil-지훈 그곳 근처에는 대왕암, 이견대, 감은사지3층석탑... 카페 지중해 그리고 전촌할매회국수!!! 할아버지가 잡아온 고기를 가지고 동네 할머니 세분이서 회국수를 만들어 파셨는데... 저는 한 25년 전부터 다닌 식당인데 지금은 할머니 한분만 남고 모두 돌가가셨어라. 그 할머니도 90이 넘으셨고예. 지금은 다른분이 하시는데 그래도 여전히 맛은 비슷해예.
책으로도 영화로도 못 봤는데, 아무래도 책으로 읽을까 봅니다.
명절 잘 보내세요~~^^
모야, 두 분만 떠들고 이짜나.^^
드시다 남은 송편, 택배 받아여~
아 여긴 추석이 아니라 11월 추수감사절만 기다리며 일합니다
생스 기빙 송편이 남으면 택배로 부칠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