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멀다고 꼭 마음까지 먼 건 아니다.
주차장 한구석 노상 세워두기만 하는 붕붕이에겐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다. 생각난 김에 위로 차 방문을 해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노랗다. 매일 DNA를 뿜어댄 나무&풀 놈들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샷-건! 셀프 세차장 샷-건은 언제나 손맛이 있다. 이런 손맛 때문에 조사들이 주말이면 가족들을 내팽개치고 강으로 바다로 달려가는 모양이다.
세차를 마치니 공연한 의무감이 생긴다. 어디든 가야할 것 같다.
“엄마는 꽃 중에 카네이션이 젤 싫더라. 봉투 사는 것도 일일 테니 서로 편한 계좌이체로 해라.”
지난 8일의 어버이날. 엄니 잔소리에 낚시터로 도망가신 아버지도 뵐 겸 한성으로 방향을 잡아본다. 판교 지나자 월요일 정오임에도 꽉 밀린다. 한강을 건너며 바라보니 강변북로도 만만치 않다. 에라, 모르겠다. 운전은 직진! 지갑에서 2천 원을 뽑아들고 남산1호 터널을 공략한다. 훌륭한 선택은 서소문까지였다. 아현동부턴 다시 지옥이다. 뽀샤샤님 말마따나 서울은 헬이다. 한편 헬레나 장님은 ‘그래도 지방러의 비애’를 언급하신다. 이런 서울에 아직 미련이 남으셨나보다.
신촌역을 끼고 도니 세브란스가 보인다. 헬-서울이라고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운전 중에도 편한 톡이 가능하다.
“해밀 방장~ 세브란스에 있으면 놀자!”
리톡이 바로 왔다.
“진료 2시에 끝날 듯”
응암동 집에 도착하니 엄니는 이미 상다리 부러진 밥상을 차려 놓으셨다. 이래서 서로 편한 계좌이체가 필요한 거다. 친정(?)이 좋은 건 다 내 편이어서다. 발 꼬고 앉은 밥상머리에서 수저질 대신 톡-질을 해도 맛난 찬을 밀어주실 뿐 입도 떼질 않으신다. 물론 쉰 넘겨도 철딱서니를 장착 못한 아들내미 폰을 흘깃거리며 요런 한소린 하신다.
“우리 둘째, 요즘 연애 허냐?”
콩나물 사이에 숨은 아귀-살을 뒤적거리며 파주 어쩌구 스틸 모먼트 저쩌구 확대 벙개의 바람을 잡는데 해밀 방장님의 톡이 올라온다.
“드라이브 까지는 그렇고, 길거리 미팅이라면...”
“야야, 밥 묵다 오델 가노?”
밥숟가락 들고 쫓아오시는 엄니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길거리 미팅을 위해 세브란스로 슝~
“해밀 방장! 연대 앞 거는 차 세울 데가... 이대 후문 쪽... 고가 밑 유턴...”
통화로 접선 장소를 알리며 기다리던 중 문득 스치는
시 한 구절과 희곡 제목 하나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 서정윤 ‘홀로 서기’
블라디미르: 내일 같이 목이나 매세. 고도가 안 온다면 말이야.
에스트라공: 고도가 오면?
블라디미르: 그럼 사는 거지.
포조: 세상에는 눈물이 일정 분량밖에 없어. 다른 데서 누가 울기 시작하면 (기존의) 울던 사람은 울음을 그치게 되는 거야. - 사무엘 베게트 <고도를 기다리며>
양동이 채혈 탓에 30분도 채우지 못한 길거리 미팅.
10킬로나 살이 빠져 셔츠가 더 헐렁해진 울 해밀 방장님.
연희고가로 빠져나오며,
일산으로 향하는 해밀 방장님의 붕붕이 꼬랑지에
꼭 들려주고 싶었던 시 한 송이
둥지 모든 식구의 마음과 함께 매달아 보낸다.
김진경 ‘낙타’
새벽이 가까이 오고 있다거나
그런 상투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겠네.
오히려 우리 앞에 펼쳐진
끝없는 사막을 묵묵히 가리키겠네.
섣부른 위로의 말은 하지 않겠네.
오히려 옛 문명의 폐허처럼
모래 구릉의 여기저기에
앙상히 남은 짐승의 유골을 보여주겠네.
때때로 오아시스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사막 건너의 푸른 들판을
이야기하진 않으리.
자네가 절망의 마지막 벼랑에서
스스로 등에 거대한 육봉을 만들어 일어설 때까지
일어서 건조한 털을 부비며
뜨거운 햇빛 한가운데로 나설 때까지
묵묵히 자네가 절망하는 사막을 가리키겠네.
낙타는 사막을 떠나지 않는다네.
사막이 푸른 벌판으로 바뀔 때까지는
거대한 육봉 안에 푸른 벌판을 감추고
건조한 표정으로 사막을 걷는다네.
사막 건너의 들판을 성급히 찾는 자들은
사막을 사막으로 버리고 떠나는 자.
이제 자네 속의 사막을 거두어내고
거대한 육봉을 만들어 일어서게나.
자네가 고개 숙인 낙타의 겸손을 배운다면
비로소 들릴 걸세.
여기저기 자네의 곁을 걷고 있는 낙타의 방울소리.
자네가 꿈도 꿀 줄 모른다고 단념한
낙타의 육봉 깊숙이 푸른 벌판으로부터 울려나와
모래에 뒤섞이는 낙타의 방울소리.
첫댓글 해밀 방장님,
들리시나?
둥지 식구들의 방울소리!
너저분하니 엉망인 상태였지만 세브란스 근처시라는 톡에 반가운 마음은 어쩔수가 없더군요. 어찌어찌해서라도 뵈어야겠다는 생각밖에. . 하늘이 주셨다고 생각해요. 안그럼 어찌 천안본좌와 일산거주자가 딱 그시간에 신촌에서 급 만날 수 있었겠어요. 😅😂😂
울 소프님 다음으로 뵙기 어려운 회장님을 뵈어 영광이었습니만,
뽀샤샤/헬레나/이종민/사랑/백설공주 님의 질투를 어찌 감당해야 할지. ^^
번개 번개 축하해요 ㅎ
🥳👏👏👏👏
울 소프님도 긴장하셔야 할 걸? 번개는 베를린에도 떨어질 수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