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과 아산을 남쪽 아래에서 잇는 623번 지방도.
금강산도... 먹고 죽은 귀신이... 선인의 말씀을 받자와
간판이 ‘기사식당’인 식당에 들러 여느 기사식당에나 있을 제육백반 대신 그냥 ‘백반’을 시켜본다.
밥&국으로는 점점이 박힌 노란 조밥에 찢은 명태와 MSG로 맛을 낸 허여멀건 뭇국,
찬으로는 엄마 찾아 삼만리 낯선 바다를 헤매다 눈먼 그물에 걸려 대가리와 꼬리 떼고 내장 발라내면 두어 술도 감당키 힘든 새끼 조기 두 마리, 배를 갈라 속살을 드러낸 가지무침, 뿌릴 바투 잘라 푸른 이파리만 남은 시금치나물, 얄팍하게 저며 정체를 은폐한 새-송이나물, 달달 볶아내 미끌거리는 미역졸가리, 그리고 눈이 감길 듯 시큼한 김치 한 쪽.
‘백반이 다 그렇지 뭐.’
딱히 맛날 것 없는 그렇다고 흠 잡기도 뭣한 식사를 마치고 향하는 곳은 역시나 한가롬 카페.
先客 든 카페엔 두런두런 사람 사는 이야기가 흐른다. 군에 간 아들놈이 곧 제대를 한다느니 농협은 연봉이 좀 그렇다느니... 안 해도 그만 못 들어도 그만인.
홀로 입틀막 책을 펼치고 있으니 열띤 담소 중에도 ‘저거 뭐하는 놈?’ 연신 흘깃거리는 눈치다. 맹탕 백수로 보기엔 쥐고 있는 시집 한 권이 께름칙해 결론은 유보한 모양새다.
‘한가한 님네들하곤...’ 학처럼 고고한 모가지를 뽑아 올려 장시간 책상다리를 유지하려니 뒷목부터 꼬리뼈까지 찌르르 전기가 오르는 게 여간 곤욕이 아니다. 주인장 입장에서야 홀로 궁상을 떨며 카페의 품위를 높이겠다는 가소로운 손님보단 도떼기시장이 되더라도 지갑을 채워주는 단체손님이 더 반가울 터, 대충 선비모드를 off하고 on 백수모드로 전환.
나면서부터 목청 큰 사람들이 있다. 내 목청도 원래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딱히 내세울 주장이 없어 평생을 보릿자루로 살다보니 더 움츠러들게 되었다. 이제라도 성능 좋은 스피커 하나 삼켜야하려나?
눈엣가시처럼 거슬리던 옆자리 손님이 백수모드로 전환하자 이야기꾼들은 눈치 볼 필요가 없어졌다는 듯 볼륨을 높인다. 하이톤의 아주머니가 처녀 적 은행 근무 때 침 바른 돈이 기백 억은 될 거라는 라떼신공을 펼치자, 걸걸한 아저씨가 당시엔 은행원이 최고였다고 맞장신공으로 화답한다. 저런 것이 바로 삶의 스킬! 혼자만 잘났던 낭만배달부는 더불어 사는 세상에 맞장구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해 허리 구부러지도록 배달-밥을 먹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저이들의 결론은 무얼까? 늙은 의사 시인의 시구가 마음에 닿지 않으니 이제는 일어나야 할 시간. 한적한 카페를 장터로 만든 이야기꾼들의 결론이 살짝 궁금해지긴 했지만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깔끔히 제초된 카페 안마당을 거쳐 담장으로 슬금슬금 오르는 햇살을 눈에 담으며
격정을 인내하진 않았지만, 분분한 낙화의 결별은 없었지만
2023 낭만배달부의 이른 봄나들이는 이쯤에서 마무리.
첫댓글 아직 봄이 아닌가 봅니다.꽃이 없는걸 보니....
그러게요. 혹시나...찾아봤눈디 없더라구여.
아직 추워요 ㅠㅠ 따뜻해지면 봄나들이 한번 더 다녀오세요 ㅎ
하긴 2월 초순에 봄 찾아 나서다니... 제가 좀 급하긴 했네요. ^^
미시간의 겨울은 많이 따뜻해 졌지만 봄은 4월은 되어야해요
맛있는거 드시면서 다니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