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에 합당한 삶
고린도전서 11;17-34 2019. 10. 27 (주일예배)
11장 2절에 보면 바울이 고린도 교우들에게 전통을 잘 지켰다고 칭찬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17절을 보니까 “이 일에는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이 일이 어떤 일입니까? 바로 성찬에 관한 일입니다. 성찬에 관해서 고린도 교회를 칭찬할 수 없는 이유는 교우들 안에 분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회가 처음 생겼을 때는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너무 커서 그것만으로도 감격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은혜 이 사랑을 나도 나눌 수 있을까’ 하면서, 자기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교회에 갖다 놓고 서로 필요한대로 갖다 썼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당시 사회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분명하게 구별되어 있었습니다. 로마인과 노예, 헬라인과 야만인, 남자와 여자... 차이가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만큼은 귀족이든 노예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구별 없이 서로 하나가 되어 사랑으로 섬기고 나누었습니다.
애찬을 나눌 때도 각자 도시락을 싸가지고 교회에 와서 그것을 함께 먹었는데, 많이 가져온 사람이나 적게 가져온 사람이나, 비싼 음식을 가져 온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심지어 아무것도 못 가지고 온 사람도 똑같이 기쁘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 자체가 주의 만찬, 즉 성찬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그 사랑이 점점 식었던가 봐요. 그러다보니까 애찬을 나누는 모습에서도 차별이 생깁니다. 부자들끼리 먼저 자기들이 가져 온 좋은 것을 먹고, 일하느라고 늦게 온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지 않는 겁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바울이 책망을 합니다. 22절 함께 봉독.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아멘. 서로 하나 되지 못하고 차별을 하니 칭찬할 수가 없지요. 좋은 것을 함께 나누지 않고 차별하면서, 함께 성찬에 참여하다니 얼마나 가증한 일입니까?
성찬의 의미 중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차별 없이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지요? 10:17 함께 봉독.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아멘.
1.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는 모두 (한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한 떡을 함께 나누면서 우리가 한 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주님의 몸인 한 떡을 먹으면서 실제로는 (하나) 될 마음이 없다면 이는 성찬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27절에 보면 이렇게 하는 것은 “주님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라 했습니다. 성찬을 하면서까지 죄를 지으면 안 되지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28절 함께 봉독.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아멘. 내가 다른 지체들과 하나가 되었는지, 자신을 먼저 살펴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만일 하나가 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성찬에 합당하지 않으니 성찬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지요? 하나 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주님 앞에 먼저 (회개)하고 서로 용서하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찬에 참여하라는 겁니다.
한 교회에서 오래 신앙생활 하다보면 모든 사람과 관계가 늘 좋은 건 아닙니다. “저 사람만 없으면 좋겠는데, 어디로 이사 안 가나?”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그럴 때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찢어질 수 없는 한 몸입니다.
[망치질을 하다가 잘못해서 오른손이 왼손을 쳤어요. 너무 아프지요. 그렇다고 왼손이 망치를 빼앗아서 오른손을 치는 법은 없습니다. 혹시 실수로 손이 다쳤으면, 온 몸의 지체가 하나 되어서 다친 손이 빨리 치료되도록 온 힘을 다 쏟습니다. 그리고 회복될 때까지 다른 모든 지체들이 그 일을 대신 합니다.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안에 혹시라도 맘에 안 드는 사람이 있다면 빨리 회개하고, 더욱 그 사람을 사랑하고, 신경써주고, 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를 (분열)시키려는 사탄의 계략을 이기고 하나 되어서 성찬에 합당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는 (주님)과 한 몸입니다.
우리끼리 하나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하나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인 이 떡을 먹는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와 하나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와 한 팀이 되셨는데, 누가 팀장하면 좋을까요? ① 내가 팀장이 되어야 한다. ② 주님이 팀장이 되셔야 한다. 물어보나 마나지요. (주님)이 팀장이 되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주님이잖아요. 29절 함께 봉독.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아멘. ‘주’의 몸을 먹고 마시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할 때, 손님으로 영접하거나, 힘센 하인으로 영접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마치 내가 주인이고 예수님은 힘센 하인인 것처럼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그러한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 했습니다.
오늘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텐데, 혹시 예수님이 주인이 아니라 내가 주인 된 삶을 살았다면, 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심을 다시 한 번 고백하고 선포합시다. 그것이 성찬에 합당한 삶입니다.
내일부터 특별새벽기도회가 시작이 되는데, 이번 특새 주제가 뭐지요? 다 같이 시작. “(작지만 큰 사람)” 우리가 작은데 어떻게 큰 사람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연약한데 어떻게 강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무능한데 어떻게 능력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그 비결은 예수님을 주인 삼고 사는 것입니다.
저 현수막의 그림이 참 마음에 들어요. 나는 작고 연약한데,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과 함께 하니까 크고 강한 자가 됩니다. 고린도후서 6:10, 함께 봉독.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아멘.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번 특새를 통해서 예수님을 진짜 여러분의 주인 삼고 따라가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작지만 크게 쓰임 받는 인생이 됩니다. 연약한 내가 팀장이 되면 패할 수밖에 없지만, 전능하신 주님이 팀장이 되면 백전백승할 줄 믿습니다.
3. (감사)하는 삶이 성찬에 합당한 삶입니다.
27절 봉독할까요?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아멘.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것은 주님의 몸과 피에 대해서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 성찬일까요? 무엇보다 감사함이 없이 성찬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Flatt이라는 신학자는 “예수의 죽음에 대해서 감사함으로 기념하지도 않고, 타인들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성찬에 참여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합당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Godet이라는 신학자는 “죄인을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감사함이 없이 참여하는 것”이 바로 성찬에 합당하지 않은 자세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성찬에 합당한 삶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또한 함께 구원 받은 (성도)들을 인하여서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본래 성찬은 그렇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함께 구원 받은 성도들을 인하여 감사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모여 떡을 떼고, 주님께서 주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잔을 마셨습니다.
마침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우리가 오늘 성찬을 하게 되는데, 먼저 구원의 감사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함께 신앙 생활할 수 있는 교우들이 곁에 있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행복해집니다. 특별히 주님으로 인해서 감사할 때 그 누구도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이번에 성도님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편지’ 쓰신 것을 읽으면서 저도 참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가정으로 인해서 감사드리고, 또 속회와 교회로 인해서 감사드리고, 또 기업을 지켜주시고 자녀들을 인도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정말 귀한 감사의 제목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태풍으로 인해 소출이 줄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곁에 계신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드리는 모습들을 보면서 더욱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해서 감사하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고난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상황에 관계없이 언제나 감사드리고, 이웃을 사랑하며 함께 나누는 성도들이 됩시다. 그리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성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