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의 오른뺨을 때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재판까지 걸어서 우리의 속옷을 가져가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친하고 가까운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는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요? 같이 걷자고 우리에게 부탁하는 상황이 아닙니다.
이것은 강요입니다. 강제성을 지닌 상황이지요. 그러니 천 걸음을 같이 걷지 않으면 보복이 이어지는 상황입니다. 이 또한 우리와 사이가 좋은 사람이 보여 주는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의 행동입니다. 우리와 친하고 가까운 사람이라도 우리의 오른뺨을 때리고 속옷까지 원하며, 천 걸음을 함께 가자고 한다면 우리의 기분은 좋지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와 좋지 않은 관계에 놓인 사람이 그런다면 어떨까요? 기분이 나쁩니다. 편안하고 행복한 상황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분 나쁘게 하고 불편하고 불행하게 하는 사람을 악인이라고 지칭하십니다. 그리고 이 악인과 맞서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며칠 전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행복을 걱정하시며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을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난감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행복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줄 알았던 우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니 황당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모습과 우리가 예수님께 바라는 모습이 이렇듯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고통스럽고 불편하게 만들려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바로 악을 이겨 내는 길임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십자가의 여정으로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겪는 불편함과 부당함, 그것이 바로 악을 넘어서는 길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