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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철 신임 원장의 뒤에는 늘 ‘최고의 거시경제·국제금융 분야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그래서인지 언론, 컨퍼런스 등을 통해 비춰지는 그의 모습은 항상 차분하고 냉철하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들여다 본 그는 달랐다. 솔직할 뿐 아니라 인간적인 매력이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KDI에 대해 말을 할 때면 눈빛이 반짝였고, 부드러운 표정과 말씨에는 힘이 느껴졌다. 새해를 여는 1월 첫째 주 금요일 오전, 냉철한 머리뿐 아니라 따듯한 가슴을 지닌 조동철 원장을 만나봤다. (대담: 김은총 『KDIans』편집장)
조 동 철 KDI 제 17대 원장
·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및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 KDI 수석 이코노미스트 겸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
· 美 Texas A&M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Q. 취임하신지 약 한 달이 지났습니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네, 임기 시작 후 모든 것들이 빠르게 지나왔습니다. 취임하자마자 연말이기도 했고, 서울 일정 등 행사도 많았고요. 동시에 각 부서의 업무보고도 챙기다 보니 지금까지 정신없이 보내왔네요.
Q. 원장님께서는 90년대 중반 KDI에 입사하신 후 KDI와 함께하신 세월이 27년이신데요. 그만큼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과거와 오늘의 KDI를 둘러싼 가장 큰 환경의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세종시 이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홍릉에서 세종시로 이전했다는 점에서 물리적인 환경이 많이 변했네요.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일하는 방식도 달라진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변화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체제를 꼽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KDI에 왔을 때는 우리 기관 자체의 ‘한국개발연구원법’에 의해 KDI가 운영되었는데, 현재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체제 안에 여러 기관과 함께하고 있지요. KDI 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크게 바뀐 외부적인 여건으로는 이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 내부적인 변화로는 KDI 역할이 이전보다 많이 확장된 것 같아요. 제가 처음 KDI에 왔을 때만 해도 연구부서의 연구기능 위주로 구성이 되어 있었는데요. 지금은 부설기관도 많고, KDI국제정책대학원도 생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KDI라는 브랜드를 함께 달고 있는 부설기관들과 역할이 크게 확대된 것으로 보입니다.
Q. 원장님께서는 연구기관, 학교, 정부 등을 두루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하셨습니다. 외부에서 바라본 KDI에 대한 평가나 시각은 어떤가요? KDI가 국책연구기관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국책연구기관으로서 KDI의 정체성이라고 한다면, 우리 경제·사회가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 지에 대한 ‘등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우리 KDI의 역할이고, 동시에 KDI에 요구되는 역할이겠습니다.그렇다면 우리가 그런 역할을 잘 하고 있는가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글쎄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우리 내부에서 늘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외적으로 보면 어떤 때는 더 많이 드러나고, 어떤 때는 조금 덜 드러나는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우리 경제나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하는 부분에 대해 사회적으로 큰 갈등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그 상황 안에서 KDI가 역할을 할 수 있던 것 같은데요. 최근 5~10년을 돌아보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자체에 대해서도 다른 의견을 갖고 있고,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죠. 몇몇 여론 조사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똑같은 사실에 대해서도 믿는 사람들은 믿고,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잖아요. 때문에 그 안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기관에 대한 사회적 욕구는 과거보다 더 커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신뢰의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KDI는 항상 진실로 객관적인 얘기를 하는 기관이다”라는 명성을 갖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부분 중 가장 중요한 한 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뢰에 기반한 KDI의 명성을 기본 바탕에 두고, 보다 객관적이고 분석적이면서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 경제·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계속해서 알려주는 기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KDI는 정부와 대화도 해야 하지만, 우리 연구의 메시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언론과 국민을 향해 전달해야 합니다.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KDI가 또 다시 큰 역할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고 체감합니다."
Q. 취임식뿐 아니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도 국책연구기관은 연구를 생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에게 잘 전달(유통)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을 강조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하신 말씀인지 궁금합니다.
KDI는 ‘상아탑’이 아니에요. 현실의 경제 사회와 항상 접목되어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정부에 많은 힘이 쏠려있었어요. 그래서 어떤 정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정부하고만 논의하면 실제로 많은 일이 이루어졌죠. 지금은 그때와는 다릅니다. 일반 대중이 지지하지 않으면 어떤 정책을 실현해내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KDI가 정부와 대화도 해야 하지만, 우리 연구의 메시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언론과 국민을 향해 전달해야 합니다.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KDI가 또다시 큰 역할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고 체감하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연구 결과를 잘 전달하고 국민과의 접점을 더 늘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출입기자단 간담회 때도 말씀드렸지만, 연구자들은 연구 내용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되나’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도 있을 텐데요. 연구자들은 본인의 연구 결과나 내용이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포함한 연구 내용을 일반 대중에게 설명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더 움츠러드는 측면도 있습니다.
좋은 연구를 잘 해놓고도, 그것이 우리 사회에 대단히 필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메시지가 사회에 전달되는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가급적 많이 독려도 하고 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보다 많은 국민들께서 어려운 이슈를 마주할 때,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KDI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되겠구나 하는 그런 인식을 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그렇다면 원장님께서 생각하시는 KDI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KDI가 국가와 국민에 어떤 존재이길 바라시나요?
사회에서 이런저런 의견의 분출이 있을 때 그것을 가장 권위 있게 정리해 줄 수 있는 기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기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국민 역시 그 역할을 기대한다고 생각해요.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겠지만,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 볼 때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편향 없이 가장 믿을만한 의견을 항상 제시하는 존재, 그런 기관이 됐으면 합니다. 과거부터 KDI는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아 조금은 고고해 보이지만(웃음), 그래도 말을 할 때는 앞뒤가 맞는 제대로 된 말을 하는 기관이라는 평판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미래의 KDI는 그런 기대를 더 많이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겠죠.
Q. 앞으로 KDI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KDI는 연구기관입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 다른 기능들도 많이 수행하고 있지만 그 근본은 연구를 하는 연구기관인 것이고, 연구기관의 핵심은 결국 사람이죠. 반도체 회사라면 시설 투자가 굉장히 중요할지 모르지만, 연구기관은 99% 인력 관리에서 기관의 경쟁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KDI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 동시에 순수 학문의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에 기여하기를 원하는 연구자들이 중요합니다. 그런 분들이 KDI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게끔 배려할 때 KDI만의 경쟁력이 유지되겠죠.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것이 우리 납세자들이 KDI를 먹여 살려주는 것에 대해 보답하는 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Q. 인터뷰 초반에 언급한 것처럼 오늘날 KDI에는 연구기능과 사업기능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기관 차원에서 연구와 사업기능이 함께 시너지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금 전 말씀드린 KDI의 연구기능으로부터 나온 결과물들과 기관에 대한 인식, 명성이 사업기능에도 흘러 들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기관의 모든 활동과 기능은 결국 그 기관에 대한 평판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죠.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게 한두 개가 아닐 텐데요. 그중 어떤 것들은 왜 반드시 KDI라는 우산 안에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경제정보센터, 공공투자관리센터, 국제개발협력센터가 있고 대학원도 있습니다. 각 부설기관의 기능은 다르지만, 모두 ‘KDI’라는 브랜드를 공유하고 있는데요.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 KDI 본연의 연구기능과 연계해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에 필요한 기능들이 설치·운영되어 온 것입니다. 따라서 본원과 부설기관의 연계를 강화해 시너지를 창출하고 부설기관 본연의 설립 취지에 맞게 발전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연구기관인 KDI가 연구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국민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면 부설기관들도 함께 그 명성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반대로 부설기관이 그곳의 신뢰와 명성을 잃기 시작하면 거꾸로 연구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애초에 각 기능 간의 그런 시너지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KDI의 우산 안에 들어온 것일 테니, 그 취지를 잘 이해하고 살리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본원과 부설기관의 연계를 강화해
시너지를 창출하고 부설기관 본연의 설립 취지에 맞게
발전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Q. 임기 동안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목표도 궁금합니다.
제 임기가 3년인데요. 3년 동안에 무슨 일을 이루기가 그렇게 쉽겠나요. ‘반드시’라고 하니까 살짝 부담스럽잖아요(웃음). 제가 앞서 말씀드렸던 여러 가지 측면에 대해 “아, KDI가 과거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것 같다” 하는 평가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것을 꼭 수치화해서 “우리는 여기까지 갈 겁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기는 어렵겠지만, KDI가 우리 국민과 정책 당국자들에게 잊히지 않고, 적어도 과거보다는 사회적으로 더 영향력이 있는 기관이 될 수 있게 노력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또 사람들이 KDI에서 더 일하고 싶어 하는 그런 직장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소박하다면 소박하지만 제가 가장 이루고 싶고, 성취하고 싶은 목표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소박하게 들릴지 몰라도 사실 그렇게 쉽지만도 않아요(웃음).
Q. 원장님께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삶의 좌우명이 있다면 함께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좌우명은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저는 평소에 솔직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요. 연구 결과를 말할 때도 솔직하게, 가리는 거 없이 말이죠. 그렇게 가식 없이 솔직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또 그런 솔직한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그런 것 같아요. 근데 보통은 사회생활을 하려면 싫어도 싫은 티 내지 말아야 한다고들 하잖아요? 저도 그래서 어떻게든 감춰보려 노력하는데, 그거 잘 안 되던걸요? 제 표정에 다 드러난다고 해요(웃음).
"KDI는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직장이어야 하고요.
서로 배려하고 이해해주며 편안한 분위기에서
더 일하기 좋은 조직 문화를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Q.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꾸준히 하시는 원장님만의 취미활동이 있으실까요?
취미는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아요. 젊었을 때는 운동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KDI에서 축구부를 한 10년 했어요. 근데 어느 나이대가 되니까 마음은 가는데 몸이 안 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리고는 더 지나고 나니 이제는 마음도 쉽게 안 가더라고요(웃음). 그 이후에는 골프도 조금 쳤고 요새는 넷플릭스도 보지만, 작년 7월에 손주가 태어나서 그때부터는 손주하고 노는 게 제일 좋네요. 저는 세종시로 이사 오고, 손주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손주를 못 보는 게 가장 아쉬운 점이긴 합니다(웃음). 피곤해서 아침에 늦잠을 자려고 할 때도 손주가 와서 깨우면 그게 또 너무 예쁘고 좋은 거 있죠. 오늘 금요일이니 퇴근하고 서울 올라가서 한 번 봐야겠네요(웃음).
Q. 개인적인 질문이긴 한데요,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원장님 어렸을 때 꿈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사실 노래하는 걸 좋아해요. 어렸을 때는 무슨 희망을 가졌는지 가수의 꿈을 꾸기도 했어요. 예전에는 대학가요제라는 게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대학가요제에 나가볼까도 고민했는데, 어느 순간 아마추어가 조금 잘하는 것과 프로들이 있는 세계는 확실히 차원이 다르다는 걸 느낀 것 같아요(웃음). 프로의 길을 간다는 게 인생을 다 던져야지, 그저 좋아한다고 취미 생활처럼 해서는 될 일이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노래는 폴 앵카의 ‘Crazy Love’라는 곡도 좋아하고, 요즘 집에서 가수 송창식 씨의 노래를 흥얼거리면 집사람이 청승맞다고 타박하면서 ‘요즘 노래’ 좀 배우라고 하네요(웃음).
Q. 끝으로 KDI 가족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KDI는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직장이어야 하고요. 더 좋은 직장으로 같이 만들어 가야 하겠죠. KDI에서 함께 일한다는 것에 더 많은 자긍심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직장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겠지만, 최대한 서로 더 즐겁게 생활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같이 생활을 해야 하는 만큼 구성원들끼리 서로 배려하고 이해해주며 편안한 분위기에서 더 일하기 좋은 조직 문화를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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