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공 산업·시장정책연구부 부연구위원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실제 모델로 유명한 앨런 튜링은 영국의 수학자, 암호학자, 컴퓨터 과학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튜링은 영국 암호 해독 기관 소속으로 독일군의 에니그마 암호기의 암호를 해독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의 암호 해독 기술은 연합군의 승리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영화에서는 보다 극적인 요소인 암호학자로서의 앨런 튜링만 부각되지만, 사실 그는 컴퓨터 과학의 이론을 발전시켰고 인공지능(AI) 연구의 개척자로서도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1950년 튜링이 발표한 ‘컴퓨터 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논문에서 그는 처음으로 기계도 인간처럼 지능이나 의식을 가질 수 있음을 가정해서 ‘튜링 테스트’를 고안해냈으며, 이는 현대 인공지능 연구의 초석이 됐다. 이 테스트는 기계와 인간을 구분할 때,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은 철학적인 문제로 관철되기 때문에 본질에 대한 논의 대신 시험을 통해 인간과 기계를 구별하고자 했다. 만약 이 테스트를 기계가 통과한다면, 기계는 ‘인간은 아니지만 지적인 것’, 다시 말해 지능이나 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그는 추론했다. 인공지능 분야에서 튜링의 기여는 많은 연구자와 개발자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인공지능 역사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튜링 테스트가 고안된 지 70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개발된 기술과 시스템 덕분에 인공지능 분야는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그 사이 눈에 띌만한 성과도 꽤 있었다. 그중 2016년 3월에 있었던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알파고 간의 바둑대결은 대표적인 인공지능 발전의 성과이다. 이 둘의 대결은 알파고의 승 리로 끝났고, 이는 보는 이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인류가 달에 착륙하는 순간에까지 비견되는 이 사건은 인공지능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계기가 됐다. 또한, 튜링의 상상력이 점점 현실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2022년 11월, 세상의 이목은 또 하나의 획기적인 성과에 집중됐다. 바로 인공지능 모델 ‘챗GPT’의 등장이다. OpenAI사에서 개발한 챗GPT는 그 등장과 동시에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출시 두 달 만에 월간 활성 사용자 수가 1억 명을 달성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고,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과거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세상에 나온 이후 지금까지 챗GPT만큼 놀라운 기술은 없었다”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챗GPT의 출현은 갑작스럽고 획기적인 일로 보이지만, 사실 지속적인 기술의 발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인공지능 세계에선 꾸준히 이러한 기술들이 개발되어왔다. IT기업의 연구소나 학계에서 개발된 기술들이 잘 다듬어진 서비스로 출시된 것이 챗GPT이며, 이것은 현재 인공지능 기술의 흐름을 대표한다. 단순히 하나의 소프트웨어로 보기보다는 동시다발적으로 개발되어온 기술 경쟁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 주목도만큼이나 챗GPT의 활용처는 실제로 무궁무진하다. IT는 물론 교육, 엔터테인먼트에도 응용할 수 있으며, 글쓰기나 미술과 같은 창작의 영역에서도 그 진가가 발휘된다. 하루에도 수천 개의 챗GPT 응용 후기가 각종 커뮤니티에 올라오고 있으며, 여러 기업도 챗GPT를 이용한 응용프로그램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물론 많은 사용자들의 경험이 쌓이면서 챗GPT에 대한 높았던 기대치가 일부 사그라들기도 했다. 여러 한계점이 노출됐고, 개선점들에 대한 논의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챗GPT의 불완전성이나 미생(未生)이 그것의 등장이 주는 의의를 퇴색시키지는 못한다. 챗GPT를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실망감이 들 수도 있지만, 챗GPT는 AI시대로 도약하는 시발점에 불과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구글이나 아마존, 바이두 등 유수의 IT기업들이 챗GPT와 비슷한 또는 이를 능가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을 앞으로 출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챗GPT가 인공지능 시대의 서막이라면, 이로 인해 시작될 앞으로의 변화는 미증유의 색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다만, 그 변화의 모습을 쉽게 예측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IT기술들을 일상에서 쓰고 있지만, 챗GPT를 필두로 한 인공지능 기술들은 분명 한 단계 더 나아가 있다. 특히, 응용범위가 매우 광범위하기 때문에 우리의 사고방식부터 일상까지 그 영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기존에 존재하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분류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창작이 가능하고 또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생각과 지식의 양이 달라진 것이다. 인간은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잠재 능력을 쏟아내 왔고, 그것이 역사가 되었다.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 기술들이 발전하고, 이 기술들을 활용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기술이 폭발적으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우리의 잠재된 능력을 끌어올려 적응할 것이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시대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럼 점점 가까이 오는 인공지능 시대에 개인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하나의 질서, 하나의 시스템에만 몰입돼 있으면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적극적으로 적응해보려는 태도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또한, 답이 뚜렷하지 않은 것이 인공지능 시대의 특징이다. 답이 없는 와중에도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생각과 시스템, 즉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용력이 도움이 될 것이다. 기술은 활용하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활용도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챗GPT에서는 방향을 알더라도 그 세세한 내용을 모를 때, 질문을 반복함으로써 점차 내게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선 ‘논리적인 추론과정’일 것이고, 또 하나는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발전시키려는 인간의 노력이 인공지능 시대에 경쟁력 있는 무기로 돌아오게 된다.
학습을 하는 체계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 기존에는 지식의 전달체계인 교육자 및 교재를 통해 학습하는 것이 중요했다. 답을 찾기 위한 사고방식에 익숙한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시대에는 다른 영역이 더 중요해진다.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여 정보를 제공하고 도와주는 ‘조정자’ 내지는 ‘관리자’의 역할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들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잘 이해하고 적절한 정보에 연결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나에게 맞는 조정자를 찾고 그와 잘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인공지능 시대는 거스를 수 없는 기술의 흐름이다. 이미 우리 앞에 와있고, 생각보다 쉽게 일상에서 체험할 수 있다. 많은 것이 변하겠지만, 그에 맞춰 우리는 잘 적응해낼 것이라 믿는다. 다만, 쉽게 취득하는 방대한 지식과 정보들 속에서 중요하지만 망각하기 쉬운 점은 지적하고 싶다. 많은 정보들을 잘 정리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양방향 소통이 중요하다.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글쓰기에서부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타인과의 대면 소통까지. 이러한 요소들은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여기에 더해 적기에 변화를 받아들일 열린 자세를 가짐으로써 개개인의 삶은 더욱 가치 있고 윤택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