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M 선교 통신 217호
동남아한센봉사회
양한갑 최영인 선교사
15주년을 맞은 동남아한센봉사회
저희에게 9월 30일은 매우 의미가 큰 날입니다. 15년 전, 2007년 9월 30일. 동남아한센봉사회가 설립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선교회를 세워주셨던 분은 서문부목사님(대구 애락교회), 이상붕목사님(부산 상애교회), 이광일목사님(여수 애양원교회)이셨습니다. 그 분 중에서 서문부목사님과 이광일목사님께서 이미 소천하셔서 세월이 더 빠르게 흐른 듯 느껴집니다.
창립 때부터 현재까지 15년 동안 든든한 선교의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분들이 너무도 많이 계셨습니다. 그 소중한 분들의 이름을 이 작은 종이 위에 다 기록하지 못함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2007년 창립 때부터 현재까지 15년 동안 끊어짐 없이 후원해주신 분들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는 김혜숙권사님, 서원식권사님, 이지희자매님, 김태화목사님, 이득수장로님, 황보숙집사님, 김정민목사님 (금란감리교회), 심현동목사님 (태촌성결교회), 최평호목사님 (신시도성결교회), 조양구목사님 (일산홍광교회), 한호목사님 (광주주월교회), 이원호목사님(소양성결교회)이 계셨고, 캐나다에서는 이영근권사님, 장동배장로님, 주윤재집사님이 계셨고, 미국에서는 고태형목사님 (LA 선한목자교회), 이혜경집사님 (달라스)이 15년 지기 후원자들이셨습니다. 다시 한번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선교회 이름도 아시아 나사랑 선교회(2007년)로 출발해서, 동남아 한센 선교회(2017년)로 개명했다가, 사단법인으로 설립되면서 서울시 규정에 따라 [선교]라는 용어를 쓸 수 없어서 동남아한센봉사회(2021년)로 다시 개명했습니다. 이사장님은 제1대 서문부목사님(대구 애락교회: 2007-2014), 제2대 이순창목사님 (서울 연신교회: 2014-2018), 제3대 정종원목사님(전남 장성제일교회: 2018-현재)께서 섬겨주고 계십니다.
2008년 1월에 필리핀 지부가 설립되었고, 딸라(Tala) 한센 마을에 Whitestone교회, Elim교회, Wisdomland 유치원이 설립했습니다. 2012년 9월에는 미얀마 지부가 설립되었고, 메얀청(Mayanchaung) 한센 마을에 New Hope교회가 설립되었고, 선한목자 선교센타와 생명의 양식(Bread of Life) 제빵소와 남녀 기숙사가 건축되었고, 사부탕(Sabuthaung)에는 약 9,000평의 농장이 마련되었습니다. 그 엄청난 사역들을 이룰 수 있도록 함께 해주셨던 모든 분들과 교회들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혼돈 속에 있는 선교지
필리핀(Philippines)
두테르테(Rodrigo R. Duterte)는 2016년 6월 30일에 필리핀 제16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법을 무시하고, 초법적으로 마약을 퇴치한다는 핑계로 10,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킬러들을 동원해 확실한 증거도 없이, 공정한 재판도 없이 총으로 무차별 사살했습니다. 그때 필리핀의 민주주의와 정의도 함께 사살되었습니다. 딸라교회 청년 가운데 2명도 길거리에서 사살되었습니다. 그들은 마약을 하지 않았던 신실했던 제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장례식을 집례하면서 그들의 관을 붙잡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두테르테와 함께 악몽의 5년을 보냈습니다.
필리핀 정부는 2020년 첫해 코로나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마스크와 백신을 확보하지 못해 마닐라 전체 도시를 봉쇄했습니다. 하루하루 벌어서 먹고사는 서민과 빈민들에게는 또 하나의 재앙이었습니다. 그들은 정부의 보조도 없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 처절한 생존 전쟁을 해야만 했었습니다. 딸라교회 성도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수차례 사랑의 쌀 나누기를 했었습니다. 그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성도들은 잘 견뎌주었고, 그들의 신앙은 더욱 더 탄탄해졌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마르코스 봉봉(Ferdinand "Bongbong" R. Marcos Jr.)이 2022년 6월 30일 필리핀 제17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취임 후,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미국, 일본, 한국 대사들이었습니다. 봉봉은 그 3개국은 필리핀의 변함없는 동맹국이라고 했습니다. 두테르테는 취임과 동시에 미국과의 동맹을 끊고 퇴임할 때까지 친중 정책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단 한 번도 미국을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르코스 봉봉은 친중 정책을 수정하고, 지난 9월 23일에 미국을 방문해서 바이든(Joe Biden)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흔들릴 수 없는 동맹국임을 천명했습니다. 필리핀은 다시 정치적, 경제적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습니다.
미얀마 (Myanmar)
미얀마의 코로나는 2021년 2월 1일에 발발했던 군부 쿠데타 속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쿠데타는 내전으로 비화하여 현재까지 2년째 교전 중입니다. 그 와중에서도 미얀마 선교는 많은 위기를 넘어오면서 잘 견디고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리안(Lian)전도사가 메얀청 선교를 든든히 지켜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군인들과 마을 동장의 협박 속에서도 그는 체포되지 않았습니다.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반정부 시위운동에 리안이 학생들을 데리고 나가서 시위에 동참했던 사진과 자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위기 속에서 살리기 위해서 고향으로 도망가지 않고 지금까지 메얀청 선교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믿음과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헌신입니다. 제빵소에서 빵을 굽던 형제는 쿠데타가 터지자 곧바로 고향 탄들랑으로 돌아가서 가족을 데리고 인도로 넘어가 지금까지 그곳에 있습니다. 리안의 부모들도 인도로 넘어가서 있습니다.
현재 선한목자 선교센타에는 29명의 학생들이 기숙하면서 신앙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이미 10년이 된 제자훈련 사역입니다. 모두 불교 신자들이었는데, 지금은 모두 크리스천들이 되었습니다. 지난 7월부터 개학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졸업한 2명 여학생이 간호사가 되기 위해서 간호양성소에서 간호사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3명의 남자 졸업생은 졸업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집으로 돌아가 부모의 일을 돕고 있습니다. 미얀마가 언제쯤 내전을 끝내고 안정된 국가로 나아가게 될 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더 내려가라!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는 항상 또 다른 부르심이 따릅니다. 선교사로서의 부르심은 한 번이지만, 선교를 위한 부르심은 제2, 제3, 제4의 부르심으로 이어집니다. 그 부르심에 민감하지 못하면 [자기식 선교]에 고착되고 맙니다. 선교지에서 제가 받았던 또 다른 부르심은 [더 내려가라!]는 부르심이었습니다. 한국과 캐나다는 분명 선진국이며 문명국입니다. 문화적으로도 상위 문화(High Culture)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화적으로 한 단계 내려가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필리핀으로 내려갔지만, 하나님은 더 내려가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이 미얀마였습니다. 10년 전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 받았던 첫인상은 “필리핀 한센인들은 미얀마 한센인들에 비하면 훨씬 축복받은 사람들이구나.”였습니다. 그처럼 미얀마의 상황은 필리핀보다 훨씬 더 처절했었습니다. 10년 전, 미얀마 선교를 시작했을 때 선교 재정은 준비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너에게 필요한 것을 내가 주리라.” 그래서 미얀마로 내려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미얀마에서 또 다른 부르심이 임하셨습니다. “친(Chin)으로 가라” 친 주(Chin State)에 53년 동안 갇혀 있는 50만 명의 크리스천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가고 싶다고 해서 언제든지 누구든지 갈 수 있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외국인은 절대로 갈 수 없는 [접근 금지 구역]이었습니다. 외국인이 가려면 미얀마 정부로부터 새 허가증을 받아야만 했었습니다. 믿음으로 제출했던 제 여권 위에 [허가] 도장이 찍힌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그 도장을 찍어주었던 사람은 이민국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외국인으로서 합법적으로 Chin을 방문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받아서 53년 만에 Chin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사람이 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지금까지 Chin을 일곱 번 다녀왔습니다. 그 일곱 방문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여기에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저에게 또 다른 부르심이 지난해 11월에 임하셨습니다. “친(Chin)을 품으라!”라는 것이었습니다. 군부의 쿠데타 중에 Chin 사람을 돕는 일은 군부를 대항하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특별히 그들을 돕는 일은 엄청난 선교비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11월 밍크 담요 선교도 4,000만 원이 모금되어 난민들에게 1,000장의 겨울용 밍크 담요와 긴급 비상 약품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4월에 또 다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임하셨습니다. “탄들랑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첫 반응은 “하나님, 거기까지 가야합니까?”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 속에는 늘 그러하셨듯이 “가라”하시면 가야만 합니다. 제 발걸음을 어디까지 내려가시게 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지난 15년 동안 동남아한봉사회 선교와 함께 해주셨던 모든 선교 동역 교회와 선교 동역자 여러분들에게 온 마음으로 감사, 감사,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