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가 돌아왔습니다.
◾양한갑선교사 건강 회복
양한갑선교사가 4개월 만에 눈 건강을 회복하고 돌아왔습니다. 어둡고 긴 터널을 뚫고 바깥세상으로 나온 기분입니다. 다섯 번째 동공 출혈로 지난 4월부터 왼쪽 눈 시력을 잃었습니다. 서울대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큰 효과를 얻지 못한 채 더 깊은 어둠 속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쪽 눈으로 5월 초에 미얀마 선교를 했고, 5월 말에는 라오스 선교를 했고, 6월에는 필리핀 선교를 했고, 7월 7일에는 김해제일교회 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해서 서울로 귀국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왼쪽 눈은 전혀 열리지 않았습니다. 글씨를 읽을 수 없었기 때문에 다섯 번의 설교를 모두 머릿속에 암기해서 해야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조마조마했던 사고가 부흥회 마지막 날에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날 새벽 집회 때 강단 위에서 실족하면서 계단 아래로 글러떨어졌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담임목사실로 이동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뒷목과 허리가 점점 굳어지면서 무거운 통증이 시작되었습니다. 곧바로 제 아내가 침으로 응급 처치를 했습니다. 현재 아내는 필리핀 한의대에서 마지막 학기를 남겨 놓고 있었기에 침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김해에 도착해서 짐을 풀 때, 제 가방에서 침과 대형 파스가 나왔습니다. 제가 아내 몰래 서울에서 챙긴 물품들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아내는 “말씀을 전하려고 온 양반이 뭘 한다고 침에, 파스까지 챙겨오셨데용. 아이구~~ 할아버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 그것들이 절대 필요한 도구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강단 아래로 굴러떨어질 것을 하나님은 이미 아셨던 것입니다.
집회를 마치고 안과 진료를 받기 위해서 7월 16일 서울대학병원으로 갔습니다. 진료 대기 중에 아내에게 부탁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에는 수술을 꼭 받고 싶으니 수술 일정을 멀리 잡아주면 8월 안에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의사에게 통사정을 해 보라고 했습니다. 세 가지 검사를 받고 진찰실로 들어갔습니다. 의사는 고개 인사만 간단히 하고, 모니터에 뜬 제 검사 자료들을 검토하더니 대뜸 “오늘 입원하실 수 있겠습니까? 내일 아침에 당장 수술을 해야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진찰실로 들어간 지, 단 10초 만에 들은 말이었습니다. 간절히 원했던 수술이었기에 당장 수술을 받겠다고 하자, 수술을 위한 추가 검사 네 가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추가 검사실로 이리저리 다닐 때, 무거운 불안감이 천천히 그리고 소리 없이 내려앉았습니다. “이것은 뭐지? 응급 수술이라고? 도대체 내 눈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모든 검사를 마치고 입원실이 배정되어 입원 병동으로 올라가니 놀랍게도 3년 전에 뇌종양 수술을 받고 입원했던 바로 그 같은 병실이었습니다. 저를 다시 놀라게 했던 것은 55동에 있는 간호사의 말이었습니다. “얼마나 급한 응급 환자이시면 뇌수술 환자들만 입원하는 저희 병동으로 오셨습니까? 조금 전에 급하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안과 병동에는 자리가 하나도 없으니, 신경외과 병동에 자리가 있으면 침대 하나를 급히 마련해달라고 말입니다. 일단 환자분을 받았지만, 저희는 안과 전문 간호사들이 아니기 때문에 안과 병동 간호사들과 통화하면서 잘 돌봐드리겠습니다.” 더 불안해졌습니다. 도대체 제 상태가 얼마나 응급이면 신경외과 병동에 억지로 꾸겨서 끼워 넣었단 말인가? 밤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간호사실로 가서 수술이 몇 시에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간호사는 수술실에 알아보고 연락할테니 병실에서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20분 후에 간호사가 와서 말했습니다. “오늘 수술 명단에는 환자분의 이름은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환자분들 사이로 삐집고 들어가야 하기에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이름을 부를 때까지 병실에서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2시간 후에 연락을 받고 수술실로 옮겨졌습니다. 영화에서만 보던 그 어마어마하고 눈부신 수술실에서 실시된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번개처럼 일어난 응급 수술은 저에게는 [비현실적인 특혜]였습니다. 정신을 차린 저에게 의사가 경고했습니다. “앞으로 2주 동안 세수와 머리 샴푸는 절대 금지됩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외출은 삼가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날 아침, 간호사가 와서 거즈를 풀겠다고 했습니다. 거즈가 눈에서 떨어지는 순간, 아름다운 아침 햇살이 제 두 눈 안으로 가득히 들어왔습니다. 4개월 만에 두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감격해 하는 저를 보고 간호사가 차갑게 말했습니다. “우시면 안 됩니다.” “네~~” 눈에 보호 안경을 채워주고 간호사는 나갔습니다. 현재 제 시력 상태는 큰 사물은 다 볼 수 있습니다. 사람, 책상, 의자 등등. 그러나 작은 글씨는 아직 읽을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다소 걸린다고 했습니다.
입원 3일 만에 퇴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양한갑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주셨습니다. 그동안 애꾸눈으로 미얀마선교, 라오스선교, 필리핀선교, 김해제일교회 부흥회까지 완주하게 하신 후, 저를 서울대병원으로 끌고 가셨고, 담당의사에게 “오늘 당장 이 환자의 눈을 다시 열어 주도록 해라.”라고 하신 것이 분명하셨습니다. 닫혀진 제 눈을 아무도 열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그 어려운 일을 너무도 쉽게 하셨습니다. 그동안 기도해주셨던 모든 교회와 성도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티나 치료 시작
필리핀 딸라교회 티나자매가 오른쪽 발목 위에 한센병이 재발하여 깊이 곪아가고 있습니다. 곪아서 뼈까지 썩어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당뇨로 인해 오른쪽 눈 시력까지 거의 잃어가고 있습니다. 티나의 집은 딸라교회 교인들의 집 중에서 가장 작을 것입니다. 3평 정도 되는 땅 위에 방 한 칸이 있고, 벽쪽에 부엌과 화장실이 있습니다. 심방 가면 앉을 자리가 없어서 서서 예배를 드려야 할 정도로 협소합니다. 그 작은 공간에서 남편과 장성한 네 명의 자녀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건축 노동자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티나와 남편 그리고 모든 자녀는 주일성수 크리스천들입니다. 분명 그래서였을 것입니다. 티나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셨습니다. 한국에서 티나의 소식을 듣고 그녀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은 ‘선한 사마리아인’ 권사님께서 티나의 치료비 전액을 후원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MRI 촬영도 이미 마쳤고, 나머지 검사 결과에 따라서 필요한 치료가 시작될 것입니다. 후원해 주신 권사님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라오스 선교 준비
한 달 동안 눈 회복에 집중하고, 8월 말에 라오스로 가려고 합니다. 학교 설립과 제자 양육과 11월에 있을 라오스 의료선교 준비 등등을 점검하고 의논하기 위해서 들어갑니다.
◾메얀청 선교센타 부엌 공사 마무리
메얀청 선한목자 선교센타 기초 보수 공사와 부엌 확장 공사가 잦은 폭우로 인해 자주 중단되어 현재 약 80%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지난번 지진으로 부엌 벽들이 심하게 균열 되어 공사가 커졌습니다. 남학생들까지 총동원되어 마무리 공사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메얀청에 떠오르는 다음 세대들
제게 일어났던 수수께끼 같은 일들이 하루 둘 풀어지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서울대병원 의사는 주사요법으로 제 눈을 치료하겠다고 고집했습니다. 그러나 주사를 맞아도 차도가 없었기에 두 번째 진료 때 수술을 원한다고 했지만, 의사는 두 번째도 주사요법을 선택했고 저를 지난 4개월 동안 어둠 속에 있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를 보자마자 “내일 수술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수술로 이틀 만에 닫혔던 눈이 열렸습니다. 너무도 쉽고, 너무도 간단한 일이었는데, 하나님은 며칠 전까지 애꾸눈으로 부흥회까지 인도하게 하셨고, 강단 위에서 떨어지게까지 하셨습니다. 그 모든 일들이 우연이었을까요? 수술을 받고 눈을 봉합한 채로 침대에 누워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위로해 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애꾸눈으로 만들었고, 그런 너를 불러내어 미얀마, 라오스, 필리핀 선교에 이어 김해제일교회 집회까지 하도록 했다. 그동안 내가 너를 잘 사용했다. 이제는 두 눈을 열고 다음 사역지로 가자.”라고 하셨습니다. 그 숨겨졌던 비밀을 풀고 보니 하나님께서 품고 계셨던 그 극비 작전들이 너무도 신비했었습니다.
7월 12일부터 17일까지 리안목사가 미얀마 지진 피해 지역 예난타 한센정착촌을 다녀왔습니다. 그때 리안이 메얀청에서 한 학생을 데리고 갔는데, 그 학생 이야기를 하려고 제 병원 이야기를 다시 한번 꺼냈던 것입니다. 메얀청을 떠날 때 리안은 분명히 저에게 혼자 예난타로 올라간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만달레이에 도착해서 보내온 사진들 속에는 메얀청 기숙사 학생이 있었습니다. 나잉린텟(Naing Lyn Thet: 16살)을 데리고 갔던 것입니다. 그 위험한 전쟁터에 그 어린 학생을 왜 데리고 갔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나중 보고에 의하면 미얀마 군인들이 그 학생을 체포해서 병력 보충을 위한 강제 징집을 하려고 했었다고 했습니다. 리안의 용맹한 대처로 나잉린텟이 극적으로 군대로 끌려가지 않았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어지는 다음 비공개 선교통신 271호에서 자세히 보고 드립니다.) 두 사람이 예난타에 머무는 동안 몸이 심하게 흔들리는 여진을 수차례 경험했고, 하늘에서 500발의 폭탄이 떨어지는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그 무서운 경험을 하도록 하게 했던 리안의 강제 징집(?)에 대해서 나잉린텟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때 깨달음이 왔습니다. 제가 4개월 실명이란 위기를 경험했던 것이 서울대병원 안과 의사의 고집 때문이 아니었고, 나잉린텟이 그런 지옥 경험을 하게 되었던 것도 리안의 무모한 결정 때문이 아니었고,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비밀 작전]에 의해서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진행되었던 일들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5월에 메얀청 선교를 할 때, 제가 리안목사에게 한 가지 제안을 강력하게 했었습니다. 선교센타에서 훈련받고 있는 32명 학생 가운데 목사로 헌신할 수 있는 후보자를 미리 발굴해서 그로하여금 일찍부터 특수 훈련을 받도록 하라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리안에게 물었습니다. “리안, 혹시 이번에 예난타까지 데리고 갔던 학생이 그 후보생인가?” 리안이 대답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신학생 후보자입니다.” 그 학생의 부모가 너무 가난해서 5년 전에 메얀청을 떠나면서 아들을 리안에게 맡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잉린텟은 리안을 “아빠”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내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양곤에 있는 신학대학에 입학해서 목사가 되는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리안은 목숨을 건 선교사의 삶을 보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고, 16살 학생도 목숨을 건 담임목사의 삶을 보고 자신도 목회자가 되겠다고 헌신하게 된 것입니다. 어린 다윗은 형들의 안부를 묻기 위해서 전쟁터로 나갔다가 생각지 않게 그의 인생이 뒤집히는 사건을 만났습니다. 그 전쟁터에서 다윗은 적장 골리앗을 만났고, 그를 죽였고, 이스라엘 제2대 왕으로 일찌감치 지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리안을 따라서 예난타 전쟁터까지 끌려갔다가 돌아온 나잉린텐의 특별한 경험 속에는 하나님의 비밀 작전이 지금도 [수행 중]임을 전하고 있습니다. [수행 중]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멈추지 않고 친히 당신의 비밀 작전을 실행하고 계시고, 그 놀라운 이야기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집필 중]이란 뜻입니다. 나잉린텐을 보면서 메얀청 선교를 이어 갈 다음 세대가 힘차게 일어나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그 놀라운 일들을 계속해서 보게 될 것입니다. 다음 장(chapter)에서는 또 어떤 놀라운 이야기를 하나님께서 써주실까요?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3)
기도제목
- 선교사의 온전히 건강 회복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 티나의 수술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 8월 라오스 선교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 메얀청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 필리핀, 미얀마, 라오스 현지 사역자들이 능력의 종들이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